마네의 비너스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8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줄리아 홀든과 오드리 볼드윈(Julia Holden and Audrey Baldwin)이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Olympia, 1863)」에 경의를 표하며, 2016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챔버스 241 갤러리에서 열린 I'm Your Fan 오프닝나이트 전시회 특별 라이브 이벤트에서 공연한 장면.



7장 9
(1864-1865)



디드로와 보들레르의 도움에 힘입어 에두아르 마네는 관전에 상당한 크기의 누드화를 출품할 것을 과감히 결정했다. 또한 그림과 중량감이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의도로 종교적인 주제에 입각하여 두 번째로 완성한 「모욕당하는 예수(Jésus insulté)」도 함께 출품할 것을 마음 다잡았다. 마네는 헤롯 왕의 병사들에게 모욕을 당한 예수와 같이 예술의 애호가들로부터 자신이 모욕당한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864-1865, Jésus insulté par les soldats.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조롱하는 로마 병사들에게 모욕당하는 예수(Jésus insulté par les soldats)」, 1864-1865.


마네는 항상 시각적인 솔직함을 고집했다. 흰 살결, 검은 피부, 흰색에 흰색을 더한 화면 구성, 밝은 색상 등.


세부 묘사에 있어서 열렬한 지지와 그에 상반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비너스 머리에 꽃을 꽂은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꽃이 난초과에 속한 꽃이냐 아니면 무궁화과에 속한 꽃이냐 하는 논쟁?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왜냐면 꽃이 너무 잘 그려진 탓이다. 그렇듯 마네의 그림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왜냐면 꽃들은 어떤 의도를 드러내고 있으며, 더군다나 그림에서 아주 강력하게 음란한 분위기를 띠고 있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흑인이나 고양이는 하녀와 검은 고양이 이외에도 또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이 둘은 바탕과 대조를 이루기 위한 어둡고 칙칙한 색상과는 거리가 멀다. 고양이가 커다란 등이 굽은 형태로 그려진 것은 또 무슨 이유에서 일까? 난삽과 독립의 상징이다! 하녀의 손에 들려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다발의 정체는 뭘 뜻하고 있을까? 관능적인 쾌락과 음탕함이란 금단의 열매이자 매음을 가리킨다.


비너스는 이 값비싼 선물을 무시하는 듯합니다. 엉덩이 위에 얹은 저 벌어진 손가락들 좀 보세요. 마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나요?” 모든 것이 오로지 마네를 공격하고 무너뜨리고자 한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네의 비너스는 하나의 그림이 아니라 성적 대상이다. 그녀의 몸은 불결하고도 추하며, 저속한,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불쌍하고 가련한 작업을 위한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중간 톤의 색조는 고려하지 않은 채, 모델의 경멸 어린 표정이나 구태의 원근법을 무시한 것 이상으로 빅토린느의 뻔뻔스러운 눈초리는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녀는 모든 수컷들에게 도전하는 듯한 인상에 가까우며, 더군다나 정면으로 남자들을 공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티치아노의 비너스나 고야의 알몸을 한 여인은 마네가 그린 여인과는 정반대로 관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네는 유일하게 비너스를 그리고자 작정한 것이며,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현대 여성으로 묘사된 마네의 비너스는 그녀에게 선물한 꽃다발처럼 옛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비너스들과는 무관할 뿐이며, 순간적인 성적 쾌락에조차 무심한 듯한 태도까지 보여준다.


53-1 Tiziano, Venus von Urbino, La Vénus d'Urbin, 1538 Musée des Offices, Florence.jpg
53-2 Francisco de Goya, Maja desnuda, 1790-1800, Museo del Prado.jpg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고야의 「벌거벗은 마야 부인」.


“재능만큼이나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보들레르는 마네 모친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그와 같은 위로의 말을 전할 정도였지만, 마네를 편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네가 어느 누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지 않은 것처럼 보들레르의 마음에 들고자 애쓴 경우도 없었다.


마네는 오로지 자신이 개발한 그만의 고유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한 것처럼, 그림의 주제들 역시 스스로 선택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바를 곧이곧대로 그림으로 옮기고자 고심했을 따름이다.


보들레르 또한 마네보다 콩스탕탱 기에게 더 우호적이었다. 아직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삽화가는 영국 신문사에서 삽화를 그리고 있었다! 보들레르는 경거망동을 할 정도로 병이 도져있었다. 정신마저 혼미해져 판단 능력마저 완전히 저하된 상태였다. 보들레르는 모든 면에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질적인 병은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고 고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빅토린느는 파리 여성들의 시샘을 한몸에 받는 전형으로 자리했다. 자유분방할 정도로 화면 가득 알몸을 드러낸 그녀의 몸은 이제 질투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그녀는 제2제정 하의 가장 유명한 모델이자 누구나 그녀를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대중의 열광을 한몸에 받는 처지가 되었다.


빅토린느는 이제까지의 모델들과는 정반대로 예술이 더 이상 고상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몸이 추할뿐만 아니라 그림까지도 저속하다고 여겼다. 그녀의 천하고도 상스럽기까지 한 표정은 그림마저도 저속한 것으로 보이게끔 부추겼다.


앵그르의 베르탱과는 반대로 마네는 “유복하고도 부유하며 기세등등한 부르주아지의 붓다”로 불렸다. 만일 마네가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등장한 세력들에 대해 전혀 항거하지 않은 채, 그저 단순히 누드화만을 그린 것이라면, 이런 부류에 속하는 인간들이 빅토린느의 알몸을 그린 그림을 돈 주고 살 일은 만무했을 것이다.


43-1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La Grande Odalisque, 1814, Musée du Louvre.jpg 앵그르(Ingres), 「라 그랑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 1814, 파리 루브르 박물관.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들의 처지를 고려해 볼 때, 빅토린느야말로 당시 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상품으로서의 사회상에 대한 표현일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하다.


마네가 표현한 빅토린느는 참으로 다양한 역할뿐 아니라 다채로운 복장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남성으로 변장한 것은 물론 거지꼴을 한 가련한 여인에다가 귀부인의 모습으로까지 변신을 거듭한다. 마치 자신의 역량을 다 시험해 본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그림에 드리워진 윤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또한 그녀가 음탕하고 선정적인 포즈를 자발적으로 기꺼이 취했다는 걸 상상함 없이는 마네의 그림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지경이다.


일반 대중이 상상하기로는 마네나 빅토린느나 할 것 없이 두 사람 다 정상적인 인간의 행동을 넘어선 위법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그 두 사람을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판단했다.


심 넣은 볼록한 스커트 안에 걸친 밝은색 천으로 짠 속옷에 찰싹 달라붙은 여자 엉덩이를 쳐다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모든 이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게다가 남자로 변장하기도 하고 투우사로 변신하기도 하며, 살해당한 여인으로까지 변신을 거듭하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것도 격정적으로.


상류사회에 속한 점잖은 척하는 사내들일수록 외투 주머니에다 속바지 차림을 한 여인네들의 음란한 사진들을 찔러 넣고 다니던 시대였다. 이 여인네들은 그와 같은 강제 노역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비천한 거지들이었다!


모든 계급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그들의 남편 앞에서 적어도 슈미즈 속옷을 걸쳤다. 여자가 완전히 벌거벗는 경우는 오로지 매춘굴이나 병원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오로지 화류계 여자들이나 속바지 차림을 했을 따름이다.


마네는 「목욕」에서 자신의 예술의 부채를 펼쳐 보였다. 그가 흡입한 모든 걸 그림 안에다 다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고대 예술을 비롯한 르네상스 베네치아 예술을 다시 찾아 나선 그만의 독특한 내면의 시선들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목욕 또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Le Bain ou Le Déjeuner sur l'herbe)」, 1863. 파리 오르세 미술관.


보티첼리와 함께 초기 르네상스를 견인한 라파엘로에 대한 찬양은 그만의 숭배의 대상들을 완전히 벌거벗겨놓았다. 또한 쿠르베라! 그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르베는 식인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동시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마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 쿠르베로부터 영향받았다는 걸 인정한 사람은 없지만, 쿠르베로부터 받은 흔적은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이 쿠르베를 거부함으로써 은연중에 생겨난 무의식적 발상의 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Gustave Courbet, Le Sommeil (1866), Paris, Petit Palais.jpg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잠(Le Sommeil)」, 1866, 파리 프티 팔레(Petit Palais).


마네나 드가 또는 팡탱은 목소리가 크고 자기 본위적으로 이야기할 뿐인 이 덩치 큰 고지식할 정도로 순박한 사내에게 호감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좋아하지도 않았다. 마네는 자주 쿠르베의 그림들을 감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중얼거렸을 뿐이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그림 그리는 것 역시 필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네와 수잔이 처음 만난 뒤로 마네가 수잔을 그린 그림은 작은 크기의 4점이 전부였다. 하지만 마네가 완성한 걸작들 가운데 빅토린느라 여겨지는 여인을 그린 그림은 벌써 다섯 내지는 여섯 점을 더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직 확고한 결정을 내린 상태는 아니었지만, 스캔들이 점점 정도를 더해감에 따라 마네는 새로운 모델로 젊은 여성들을 필요로 했다. 늘 새롭게 모델을 구하고자 갈구했듯이, 그것도 항상 아주 젊고 발랄한 여자들로.


빅토린느란 이름이 야기한 소란과 소동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젊은 여자 모델들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이 모델들이야말로 이제 더 이상 그와 같은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강한 확신을 줌과 동시에 마네 자신에게조차 진정으로 위로가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들레르는 정확히 예견했다. 만일 지난해에 마네가 이제까지 그린 작품들과는 완전히 대조를 이루는 「비너스」를 출품한다면, 소동을 충분히 잠재울 뿐만 아니라 상탄의 대상으로까지 변모할 것이다.


다음 미술전람회에서는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알몸을 한 빅토린느의 상스러움에 환호를 내지를 것이 분명했다. 벌거벗은 몸으로 빅토린느는 아틀리에 벽 한쪽 구석에서 만인에게 공개될 것만을 기다려왔다. 그녀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관전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꿔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1866-1867, Le Matador saluan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관중의 환호에 답하는 투우사(Le Matador saluant)」, 1866-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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