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음악회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2화

by 오래된 타자기


2장 7
(1848-1851)



처음의 신선하고도 벅찼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모든 이유가 사라지면서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가 수련생으로서의 삶을 급격하게 방향 틀게 만든 요인은 바로 그의 삶에 끼어든 모래 알갱이 같은 존재였다. 에두아르 마네는 자신이 품고 있는 야심을 극도로 숨기기 위해 이제는 예술 애호가 인양 행세하기 시작했다.


모친이 그렇게도 독려하던 집안에서의 음악회는 우연찮게도 자식들에게 음악을 익히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었다. 이때 고용한 네덜란드 태생의 젊은 여성 피아니스트가 바로 에두아르의 삶에 끼어든 모래알 같은 존재였다.


기질적으로 온화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마저 띤 그녀는 마치 그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신중하게 자신의 책무를 다하면서 늘 따뜻한 미소 또한 잃지 않았다. 이러니 어찌 수잔 린호프란 이름을 지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루벤스처럼 당당하고 통 큰, 렘브란트처럼 저 깊이로 파고들며, 베르미어처럼 부드러운, 프란츠 할스처럼 유쾌한 그리고 특히나 심성이 착한, 누군가처럼 착하기만 하고 다정다감하며 상냥한 인물의 전형이었다.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걸 듣다 보면, 그녀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깃들어 있는 듯이 여겨지기까지 했다. 마치 프란츠 리스트가 지나가다가 개인적으로 에두아르가 살고 있는 집에 들른 것만 같았다.


부모는 파리에서의 음악회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주기 위하여 하늘이 그녀를 보내준 거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녀는 주로 으제니가 애호하는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하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노래도 잘 불렀다. 그녀가 연주한 슈만의 곡은 에두아르의 심금을 울리면서 영혼을 말갛게 빚어놓기까지 했다.


그녀는 모차르트를 연주하다가도 낭만파 음악으로 갑자기 선회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4일을 으젠과 귀스타브 그리고 으제니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켰다. 매번 그녀의 홀릴 듯한 매력에 온 집안이 술렁거렸다. 귀스타브만 제외하면 나머지 두 사람은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확실했다.


막내인 귀스타브는 아버지의 이상을 좇기로 작정했는지 그 지긋지긋한 법학을 공부하는데 매진했다. 그러자 괴로움, 고통이 뒤따랐다. 점점 공부하겠다는 집념마저 시들해졌다. 기진맥진한 막내가 피아노 연습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에두아르는 피아노를 한 번 쳐봐야겠다고 맘먹었다. 피아노 가정교사를 건드려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가 들으면 충분히 이상야릇하게 들릴 이야기를 모친인 으제니는 늘어놓기도 했다. 행복한 자유의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음악을 들을 만한 상당한 수준의 귀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녀가 주장하는 바였다.


그 행복한 자유의 바람은 수잔이 거리마다 구역마다 온 도시에 불게 만든 것이었다. 더하여 아이들 가운데 제일 나이가 많은 장남의 마음을 뒤흔든 바람이기도 했다. 그녀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고장에서 흡입한 자유 그 자체였다.


에두아르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와 수컷 다운 왕성한 본능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녀에게 얼어붙어 꼼짝 못 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그녀에게서 벗어났을까?


에두아르보다 2살이나 더 많은 젊은 여인은 최근에 그가 건드리고 다닌 창녀들과는 차원이 다른 두 눈에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야릇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선량했으며 기막힌 여자였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거나 피아노를 칠 때에 그는 강직 경련을 일으킬 정도였다. 아우인 으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어느 것도 이 창조물의 독창회에 빨려 들어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버리는 것을 방해하거나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


정상적으로 볼 때, 중산층 부르주아지 집안의 자식인 그의 일과는 아틀리에 수련생으로 하루 종일 작업과 씨름을 한 연후에 매일 저녁 같은 시각 같은 테이블에서 깨끗이 씻은 손과 잘 정돈된 머리를 하고 저녁을 들었던 관계로 한가하게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면서 여흥을 즐길만한 틈이 없었다.


꼭두새벽부터 꾸뛰흐 아틀리에에서 한줄기 빛에 그림 그릴 모티프를 구한 다음 허겁지겁 아침식사를 한 연후에는 루브르로 달려가서는 마음을 움직인 그림들을 모사한다. 베네치아 유파들 가운데 틴토레토를, 네덜란드 유파 가운데 유독 그가 좋아하는 렘브란트를, 마지막으로 스페인 회화에서는 벨라스케즈의 그림을 복사한다.


그가 놀라움으로 두 눈을 지켜 뜨고 바라본 그림들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18세기의 대가들인 부셰, 와토, 샤흐댕 등. 다음엔 이탈리아인 대로에 줄지어 들어서 있는 최신 유행의 카페들을 향해 줄달음친다. 그는 이곳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예술가들과 교유한다. 그런 와중에도 리오에서 처음 경험한 육체적 쾌락을 좇아 여자들과의 덧없는 만남을 배가시켜 가지만, 한결같이 싸구려 여자들만 쫓아다니는 꼬락서니다.


Winslow Homer, Copistes du Louvre en 1867 (1).jpg 윈스로우 호머(Winslow Homer), 「루브르 복제화가들(Copistes du Louvre)」, 1867년 작.


집안의 착한 자식으로서 너무 과중한 일과는 그를 미치게 만들었고, 술에 절게 만들었으며, 원래의 모습을 잃게 만들었다. 사랑 또한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그를 잘게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한번 꽂히면 뭐든지 미친 듯 달려드는 버릇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이러한 광적인 열광 상태가 더 극성을 부린다는 걸 그 자신만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스 신들의 기상천외함처럼 그의 행동 역시 상궤를 벗어난 것이리라.


마치 에두아르는 난생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에 빠진 것처럼 피아노 교습이 있는 동안 여신에게 그의 정념의 불꽃을 확인시켜 주고자 진력을 다했다! 그녀를 볼 수 있는 건 일주일에 4번으로 정해져 있었다.


다섯 번째는 매력이 넘치는 으젠에게 넘겨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심각히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형제들과 함께 어머님이라 부르는 자신의 모친이었다. 아버지조차도 어머니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얽혀있지는 않았다. 또한 귀스타브는 시간이 없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열심히 피아노 교습에 임한 다음, 에두아르가 완력으로 그녀의 정조를 빼앗을 것 역시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버텼다. 한 주 한 달. 그녀는 저항해야만 했다.


그녀는 완강히 버티고자 했다. 그러나 정확히 성 실베스트르 밤에 그녀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공격은 상당히 집요했으며, 또한 에두아르는 유혹적이면서 동시에 그녀를 납득시킬만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가 쏟아놓는 말은 진정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온갖 덫과 유혹이 판을 치는 대도시에서 홀로 살고 있는 이 젊은 네덜란드 여성의 몸을 요구하고 있다는 자체가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성탄절 전날 밤, 그녀는 에두아르의 타오르는 욕망의 불길에 순순히 몸을 바쳤다.


에두아르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는 잘 생겼고 심오하며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면서 그녀의 가슴에 와닿는 말들만 늘어놓는다. 그는 젊지만 먼 곳까지 여행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사납거나 잘난 체하거나 건방져 보이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그녀를 무척 좋아하고 있다. 10년 단위에 속한 1850년 그날 밤 한 젊은 남자의 일방적인 사랑의 열정은 상방 간의 갑자기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로 바뀐다. 은밀하게 그들은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조차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 속으로 얼떨결에 휘말려 들어간 열렬한 사랑의 열정에 몸을 던져버리고 만다. 그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감정을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수잔이 소설책을 읽는 동안 에두아르는 여행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간에 똑같은 감정의 격렬함을 느꼈으며 생각마저 공유하고 있었다는 듯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연코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도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바로 그런 순간에 이르렀다. 그리고 매일 새롭게 되풀이되었다. 매일 밤 그녀를 찾아가기 위하여 집 담장을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가능치가 않은 이야기다. 매일 새벽마다 그녀를 그림 그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역시 가능치 않은 이야기다.


피아노 교습은 갑자기 뚝 중단되고 만다. 그는 더 이상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위하여 단 2초도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피아노를 더 잘 치기 위해서는 줄곧 피아노 건반을 눌러대야만 한다. 그가 아끼는 그림 속에까지 등장하는 이 플랑드르 여인은 그에게는 여신과 같은 존재다. 그는 스무 살이 채 안 된 나이다. 여신은 기꺼이 그를 향해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는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이것저것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한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그는 여전히 그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반복되는 일과에서 어느 것 하나 빠뜨리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 모든 것 가운데 수잔이 더해졌을 뿐이다. 더없이 황홀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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