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3화
2장 8
(1848-1851)
아틀리에에서 마네의 꿈은 아주 천천히 구체적으로 형성되어 갔다. 마침내 그는 한층 진일보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늘 그러했듯이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은밀한 삶이 그를 고갈시켜 갔지만, 그를 깨끗이 정화시키는 역할도 했다.
마네는 나날이 점점 더 성격이 날카로워지면서 사려 또한 깊어져만 갔다. 그는 울부짖고 싶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사랑에 매달렸다. 그의 천성에 비춰볼 때, 이 같은 사랑을 가족들에게 단 한 마디조차 꺼낼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아들의 장래에 대한 아버지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뒤로 아들은 아버지에게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나 어머니가 집안에 들인 피아노 가정교사를 사랑했노라고는 말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에두아르가 이름을 걸 만큼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했다. 아버지는 둘을 충분히 갈라서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야기, 자식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만들어낸 음모! 오라, 인정사정 보지 않고 칼로 내리치듯 두 사람을 갈라서게 만들 판결이 아버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온 가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심지어는 예전에 자신이 캐리커처로 그린 사라진 소녀처럼 그녀를 그녀가 태어난 곳인 네덜란드로 돌려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힘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능력도 벌써부터 깨닫고 있었다. 아버지는 거꾸로 둘이 얼마나 폭 좁은 생각으로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하였는지를 알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남몰래 슬그머니 수잔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그가 알고 있는, 세상에 자신들 두 사람만이 있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렬했던 탓이다. 은밀한 사랑, 금기의 사랑은 둘의 열정을 지켜주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빨리 둘이 갈라설 수밖에 없도록 그에게 귀찮게 여겨지는 구석도 없지 않았다.
에두아르는 잠자코 있었다. 그에 대한 대가이기도 했다. 그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상태를 열망했다. 그는 전에는 그렇게 쿵쾅거리며 심장이 뛰는 걸 느껴본 적이 없었다.
수잔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묻지 않았다. 그녀 또한 사랑의 감정에 취해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그녀는 다른 그 무엇을 꿈꾼 것일까? 그녀는 다만 이 거만한 부르주아지 프랑스 남자가 그녀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수잔 린호프는 아무 능력도 없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집안은 고향에서 대접받는 상당히 명예로운 가문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비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녀 말고도 위로 두 자매와 어리고 착한 두 형제가 있었다.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며 그들이 살아오던 방식을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개신교 신자들이었으며, 프랑스인들에 의해 신분이 나뉜 부류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신교인이라! 그런 연유로 부친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그저 수용할 수만은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녀는 에두아르를 사랑했다. 그런 가운데 1년 넘게 마네 집안을 드나들면서 그를 내심 이해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집에 들렀다. 그러했기에 거의 친한 한 집안 식구처럼 되어 누구보다도 그들을 보다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녀 또한 자신에게서 사랑의 불꽃이 발화되지 않기를 누구보다도 원했다.
그녀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21살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모친에게 쓴 편지에서 에두아르를 사랑하는 심정을 토로했다. 모친은 그런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수잔의 모친은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 것일까? 그렇다. 에두아르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벌써 그녀는 모친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그녀의 모친은 그녀를 수잔 할머니에게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게 했다.
그녀보다 나이가 어린 프랑스 남자를 사랑하여 둘 사이에서 난 아이를 키우면서 앞으로 그녀가 대체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수잔 할머니는 그녀보고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라고 조언했다.
기다려보는 거다. 출산을 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요컨대 늘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네덜란드 여인들은 생각했다.
수잔은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임신한 것에 미칠 듯 기뻐했다. 1851년 8월 확실한 건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그에게 알렸다는 사실이다. 에두아르는 듣고만 있었다. 단지 듣고만 있었을 뿐, 그게 뭘 의미하는지 전혀 깨닫질 못했다. 대답 대신 그녀를 껴안고 그녀 앞에서 무릎 꿇고 그녀를 정말 사랑한다고 반복해서 되뇌었을 뿐이다.
그녀는 그에게 출산에 따른 의견을 물어보았을까? 아이를 키우는 문제여서 그녀 혼자 결정할 수 없어서였을까? 그녀는 그가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는 것이 답답했을까? 그는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가 원하는 모든 걸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더군다나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거의 광분할 듯이 사랑에 빠져있는 상태여서 에두아르는 다시 그녀와의 잠자리를 즐겼다. 사랑이 너무 흘러넘쳐 적어도 자유 의지 따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입 맞추고 껴안고 그녀의 몸에 자신의 몸을 눕혔다. 그는 아마 분명히 그녀와 결혼할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그걸 약속하겠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녀와 결혼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피아노 가정교사로 밥 벌어먹고 살아가고 있는 이 어린 개신교인인 네덜란드 여자와 19살에 결혼한다?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를 죽일 듯이 펄쩍 뛸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는 어머니가 속닥거리는 걸로 봐서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사랑의 감정을 그리고 임신했다는 사실까지도 말할 만큼 그는 어머니를 좋아했지만 때를 잘못 선택했다. 그는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이 수잔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모든 걸 잊어갈 테고 그는 오로지 도망칠 곳만 생각하면 되었다!
에두아르는 어정쩡하게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규약들을 완벽하게 하나로 통합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임신 사실을 숨기기로 결심했다. 또한 은밀하게 두 사람만의 삶도 시작하기로 했다. 수잔은 연인이 왜 그러는지를 이해했다. 그들의 사랑이 싹튼 그 광분의 상태에서 그녀는 이렇게 사랑이 끝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들을 위해서는 오직 결혼만이 능사였을까?
그는 19살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세 존재들의 가장이 된다. 두 사람이 꾸민 은밀한 가정에서. 그걸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대성당으로 달려가서 누구도 지켜보는 이조차 없는 가운데 처음 열렬히 기독교 신자가 되려 했던 것처럼 사랑을 확인하는 거다.
사랑에 미치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법.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만 제외하고. 그는 그녀를 이끌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전에 먼저 가면을 쓰고. 아무도 두 사람만의 열애를 눈치채도록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
어머니마저도 모르게 제공한 사랑의 행각을 말이다. 맞다. 모친. 수잔을 처음 집으로 데려온 이가 바로 어머니였다. 그는 장남이고 으젠보다 먼저 피아노 교사를 유혹했으며, 그녀와 즐겁게 피아노를 치면서 서로 마음이 통해 장난에까지 빠져들고……. 신기하게도 이 모든 것이 동시에 그것도 한꺼번에 시작된 것이다.
에두아르는 모친과 얼마나 오랫동안 거리를 유지하려 했던 것일까? 그는 어머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렇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무 일렀다.
가을에 수잔은 피아노 교습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왔다. 처녀이면서 임산부였던 그녀는 엄격한 가톨릭 중산층 집안에다가 곧이곧대로 그녀의 부풀어 오른 배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임신했다는 건 시집 안 간 처녀들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오직 여자만이 잘못을 저지른 이로 간주되는 세상이었고, 그 같이 부끄러운 사실을 숨겨야 할 사람도 오직 여자들이라 생각하는 세상이었다.
분만을 3개월 정도 앞두고 있었기에 에두아르는 그녀를 양육할 방도와 집세를 지불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수잔은 그를 믿었다. 그의 양친은 자식이 어떻게든 도와줘야만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또 능히 그럴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이 기구한 운명에 처한다면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 아이가 태어날 것? 그건 문제가 없다. 다만 너무 길뿐이다. 3개월씩이나 남아있다.
사랑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순간 그는 약간 솜씨 좋은 그림을 그린다. 그것도 밤에 그린 그림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그가 화폭에 목탄을 그어대는 중에 몸이 부풀어 오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의 그림 속 변모된 여인의 모습들에게서 아이를 배고 있다는 낌새를 전혀 눈치챌 수가 없다. 그는 어느 상황조차도 예정해 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부족할 게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수잔의 온화한 모습에서는 불안해하는 모습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가 될 거를 전혀 자각하지 않은 것일까? 그게 정상이다. 뭐 대수로울 건 없다. 모든 게 알아서 정리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