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4화
2장 9
(1848-1851)
마치 알을 품고 있듯이 자신의 모든 시간을 다 바쳐야만 하는 생활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열광적으로 매달릴 짬은 있었다.
1851년 12월 초 부모 집에서 수잔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오가면서 새벽 동이 틀 때까지만이라도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그 역시 군대가 점령한 거리에서 신음하는 인민의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인민! 거리에서 이를 악다물고 무장한 군대는 발포 명령만 기다린 채 인민을 위협하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두 갈래로 나뉜 길 가운데 그의 집에 인접한 길을 택해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 숨을 곳으로 마침내 찾아들었다.
하지만 에두아르는 폭동으로 변질된 엉뚱하면서도 낯선 기류를 느낀다. 그가 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일들을 이야기해 주려고 잠들어 있는 으젠을 깨우기까지 한다. 그는 다시 변장을 하고는 꾸뛰흐 아틀리에를 향해 길을 나선다.
아틀리에는 온통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카푸친 대로에서 총을 쏘는 것 같았어! 총들이 파리지앵을 향해 있더라고. 아틀리에는 금방 웅성대는 소리로 들끓었다. 뜨거운 피에 영혼이 순수한 젊은이들은 그들의 혈기가 끓어오르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쿠데타에 항거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새로이 선출된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국왕이기를 원했다. 또한 이 인간은 정말 사악한 짓을 벌이고 말았다. 파리의 인민을 향하여 대포를 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마네와 프루스트는 이러한 참담한 광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말았다. 폭동이 일어난 거리에서 그들 또한 수비대 기마병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으면서 통행조차 제지를 당했다.
폭동 진압 군인들은 산탄총을 발사하면서 거리 이곳저곳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들을 치우려고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에두아르는 무장한 군인들에 맞선 이들이 보병대원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날 앙토냉과 에두아르는 재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목숨마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가까스로 라피트 거리에 위치한 화상 가게 문이 빙긋이 열려있는 덕분에 힘차게 문을 밀고 안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목숨을 구했다!
한참 뒤에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에 그들은 새로이 총을 발사하는 걸 목격했다. 푸아소니에 대로 길바닥에 배를 대고 바짝 엎드린 다음 대포 소리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이유 없이 체포당한 뒤에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풀려나자 두 사람은 비로소 공포가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실감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12월 한 달 동안 파리 온 거리들은 광분 상태에 빠져있었다. 마네는 더 이상 무엇에도 열의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 시기 동안 열광하지 않으면 끔찍한 경우에 처할 일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틀리에에 소속된 학생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몽마르트르 묘지로 갔다.
그곳에는 끔찍하게도 총을 맞고 쓰러졌거나 사형을 당한 젊은이들의 시체가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공포가 온 거리에 엄습하던 날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시체 무더기들, 무더기를 이룬 시체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짐짝처럼 취급당하고 있는 인간 존재들, 거기에는 학살당한 모든 시신들이 한데 뒤섞여있었다.
마네는 프루스트 곁에서 꼼짝 않고 팔과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시체를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렇게나 많은 시신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체들은 공포에 입이 뒤틀린 모습이었으며,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거나 공포로 말미암아 부들부들 경련과 발작을 일으킨 흔적이 역력했다. 시신들은 한결같이 공포에 절은 표정들이었다. 사형에 처해진 시신들, 말라붙은 피딱지들로 가득한 얼굴들, 팔다리가 꺾여 늘어진 채…….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네는 호주머니에서 수첩과 필기도구를 꺼내 들고 누군가의 얼굴을 그린 다음 그림을 박박 문질러 지우고는 다시 그리고 지우면서 마음에 찰 때까지 시체들의 표정을 수첩에 담고만 있었다. 원한에 사로잡혀 앙갚음을 하려고 덤벼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이상 날을 세우고 시신들을 쳐다볼 뿐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학살을 주도한 이들에게 대항하여 공포심에 절은 표정과 치욕과 증오에 사로잡힌 모습을 여실히 증거해주듯, 여기저기 흩어져 도망치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고, 겨우 피하려다가 붙잡혀 신체가 잘려나가기도 하고, 머리가 잘려나간 시체도 있고, 신체가 잘게 잘린 탓에 여기저기 흩어진 시체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살해된 자들은 전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쌓여있어서 제대로 구분조차 쉽지 않은 탓에 전체적으로 시신의 표정을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시체에 아주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런 일이 있은 연후에는? 막무가내로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구금되고, 추방당했다. 그것도 프랑스 도처에서.
요컨대 어느 누구도 쿠데타에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황족 대통령이 스스로 황제라 칭했을 때도 어느 한 사람 놀라지 않았다. 폭동이 일어난 틈을 타 여세를 몰아서 황제 즉위식까지 치러졌다!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한 루이 나폴레옹이 자유 평등 박애에 입각하여 세워진 공공건물들을 모두 다 없애버리려 할 때도 어느 누구 한 사람 이에 반대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나라는 피폐해져만 갔다. 프랑스 인민 또한 마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파리가 상처를 입고 파괴된 뒤에야 한 해가 막을 내렸다. 이듬해 파리는 재빨리 공사장으로 탈바꿈했다.
황제의 수하물 가운데 하나가 오스만 남작이었다. 그는 파리를 완전히 새롭게 하고자 낡은 것들은 다 부숴버리라고 명령했다. 파리를 새롭게 설계하기 위해 모든 걸 밀어붙이는 것이 금방 허용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파리 곳곳에서 일어난 인민 봉기 탓이었다.
마네와 프루스트는 지칠 줄 모르고 걸어 다니면서 그들이 사는 도시를 익혔다. 튈르리 가에 자리 잡은 우아한 테라스들로부터 종묘원 거리에 이르는 아름다운 폴란드라 불리는 구역에 자리한 빈민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새롭게 조성된 인도를 걸어 다니며 발로 익혔다.
이렇듯 파리 길들이 새롭게 조성된 것은 우아를 떠는 짓에 한몫하던 두 사람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새로 산 구두를 신고 온 파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포장된 도로 덕분에 새로 사 신은 구두가 진창에 더럽혀지는 일도 없었다. 이처럼 혁신과 쇄신에 기뻐하는 자들이 단지 기혼여성들만이 아니었다.
빅토르 위고가 벨기에로 망명한 것이 알려지자 마네 가족은 전통을 중히 여기는 부르주아지들과 부자들이 모여 사는 세느 강 좌안 부촌에서 강 건너편으로 이사했다. 세느 강 우안은 가난한 이들과 예술가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사하자마자 마네 집안 형제들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특히 아틀리에와 가까워지자 장남이 제일 먼저 반겼다. 사랑하는 여인의 출산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