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5화
3장 1
(1851-1856)
모든 것 이전에 음악이 제일인 이유는
과연 그건 기수각을 더 멋지게 표현하기 위한 것,
대기 중에 리드미컬하게 파도치며 퍼져나가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무게도 없을뿐더러
형체 또한 없는 것이 음악이다.
폴 베를렌느
에두아르는 음악과 수잔을 열렬히 사랑했다. 수잔이 피아노를 칠 때마다 말 그대로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피아노 치는 걸 가만히 지켜보거나, 곤혹스럽기는 하지만 그녀가 함께 노래 부르고자 그를 이끄는 시간만큼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격정적인 순간이었다.
에두아르는 이보다 더 멋진 삶을 즐길 순 없으리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한 욕망은 음악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음악에서 샘솟은 욕망, 그녀가 노래 부르는 동안 그가 연주하고 싶은 욕망은 세상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마음에 호소하는 음악을 통하여 사랑을 노래할 수 있다지만, 사랑은 시들고 말 것 또한 틀림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그만두기를 원했다. 이 아르페지오들로 연주하는 것에 석회질로 침착되었을 뿐인 어떤 관망자의 어정쩡한 태도마저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 육체도 영혼도 녹아버리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듣기를 좋아하는 곡은 하이든이었다. 그가 맘속에 기억하고 있는 악장은 52번, 62번 소나타였으며, 무엇보다도 49번 소나타를 좋아했다. 아! 15번도…… 그녀는 그가 있는 앞에서 인색할 정도로 소나타들을 아주 일부분만 연주했다.
그녀는 그를 어떻게 하면 자극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의 욕망이 끓어올라 지속되게 만드는 법을 이미 터득한 것 같았다.
그녀는 슈베르트나 슈만을 통하여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배가 불러왔다. 건반을 누르기 위해서는 팔을 더 길게 뻗어야 했고, 건반을 두드리는 몸짓이 점점 더뎌지면서 손가락 놀림조차 예전처럼 민첩하질 못했다. 그를 위해 피아노를 치는 일 말고 다른 걸 해야 할 성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나날이 해가 짧아져만 갔다. 저녁은 너무 길어졌다. 그녀 혼자 있는 시간 또한 길어져만 가고…….
마네는 부모 집에서 저녁을 들고는 밤늦게 수잔을 보러 그녀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다. 그녀는 너무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살은 이미 찌푸려진 상태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을 죄는 듯한 불안이 심적으로 계속 그녀를 압박했다.
수잔은 이젠 집 밖으로조차 나가지 않았다. 너무 배가 불러온 탓에 이웃들의 시선을 감내하기도 벅찼다. 같은 구역에 사는 이웃들은 그녀가 아직도 시집을 안 간 처녀라고만 생각했다. 그녀는 집 안에만 칩거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집에서 기다려야 하는 날들 또한 계속되었다. 뜨개질하고, 바느질하고, 아기 옷가지들을 준비하면서 옷가지들은 완전히 하얀색이었다.
남아이건 여아이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다만 에두아르의 아이인 것만이 중요했다. 그녀는 수를 놓기도 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아이의 아버지이자 자신과는 연인 관계 사이를 오가는 존재라는 걸 벌써부터 깨닫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아이를 갖게 된다는 사실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출생이나, 태어나면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해, 또한 세 사람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오로지 찰나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순간에 집착했다. 마네의 예술에 있어서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태도였다.
마네는 오로지 화폭 위가 아닌 다른 어떤 곳에 구현될 세상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가? 그의 가슴속엔 수잔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 사랑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사랑이 분명했던가?
마네는 수잔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적이 있었다. 낯빛은 우윳빛에다가, 진줏빛 기다란 두 팔은 창백하기만 하고, 게다가 두 눈은 파스텔 색조에다가, 입술은 아름답게 가장자리가 감친 모습……. 그는 미친 듯이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여기까지는 음악 이외에 다른 갈등은 없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오직 하이든으로만 국한하였다. “슈만은 집어치워! 바그너도 확 부숴버려!” 수잔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할 때마다 마네는 소리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수잔은 피아노 치는 걸 삼갔다. 피아노 교습을 그만둔 이후로 어차피 손 감각도 무디어졌다. 그녀는 아무런 수입 없이 에두아르가 주는 약간의 돈과 그녀의 부모가 보내주는 돈만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수잔의 외할머니는 그녀가 출산을 하는 날에 맞춰 그녀를 보러 파리에 오겠다고 약속했다.
수잔은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걸 거부했다. 사랑하는 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녀의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그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매일 그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홀로되어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공포심마저 엄습했다. 닥쳐올 앞날만큼 불안한 건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점뿐이었다.
수잔은 그녀의 모친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뜨개질이나 바느질 또는 수놓는 일을 다시 계속했다. 상투적으로 일을 해치우지 않으려고 일을 원만히 수습하려 애쓰면서 돈을 조금씩 모아갔다. 수잔 역시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 속에 자라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네덜란드에 있는 외가 쪽으로부터 엄청난 모성애를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