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6화
3장 2
(1851-1856)
전투가 벌어질 찰나였다. 마네 가족은 최근에 보나파르트란 이름으로 바뀐 거리에 위치한 그동안 정들었던 건물을 떠나 몽 따보흐 거리에 위치한 재해를 입은 것처럼 음침하면서 널따란 아파트로 이사했다. 황제가 살고 있는 궁전이 자리 잡고 있는 튈르리 정원에서 몇 발자국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다!
이사를 한다는 건 무엇보다 짐을 추리고 정리하고 내던져버린다는 걸 의미했다. 에두아르는 이 같은 일들에 동원되었다. 반면 수잔은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갔다. 가슴이 죄는 듯한 불안감마저 가중되기 시작했다. 분만이 가까워졌다.
수잔이 아이를 낳기 전전날에 모친이 막내와 함께 네덜란드로부터 도착했다. 외할머니 역시 외손녀인 수잔과 상봉하여 두 손으로 손녀를 붙잡고 흐느꼈다. 수잔은 몸을 이리저리 요동치면서 이를 악물고는 흐느껴 울었다. 수치심과 두려움과 아픔이 끊이지 않고 그녀를 울먹이게 만들면서 좀처럼 놓아주질 않았다.
출산이 임박한 딸을 돌보던 모친이 지쳤는지 저만큼 떨어져 앉아있는 어린 아들 로돌프와 교대했다. 그녀들이 파리에 온 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이사를 하느라 부모에게 징발된 신세인 에두아르는 수잔의 얼굴을 보러 갈 시간조차 없었다. 아니 그녀의 가족들 앞에 모습조차 보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에두아르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수잔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같은 시각 수잔은 혼자가 아니었다.
마침내 밤이 되자 에두아르는 집을 탈출하여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인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 없었다.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몇 달 동안을 끊임없이 서로 끌어안고 뒹굴던 곳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남아있질 않았다.
텅 빈 공간. 그녀는 사라졌다. 마침내 모든 게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흔적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가슴을 죄는 듯한 불안감에 에두아르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에두아르는 수잔의 모친이 그녀를 데려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들은 네덜란드로 돌아갔을 테고, 에두아르를 다시 보는 것조차 금지하였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이웃집 여자가 그를 안심시켰다. 새벽에 인력거들이 찾아와서는 짐과 함께 그들 가족을 싣고 어딘가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사를 한 것이다! 그녀 역시도.
그걸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걸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어디로 이사할 것인지를?
수잔이 살고 있던 초라한 셋방은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어린 동생이 함께 머무를 만한 장소가 못되었다. 더군다나 에두아르 역시 아파트로 들어올 것이며, 아이 또한 새로이 태어날 참이었다.
린호프 부인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클리쉬 장벽 인근의 새롭게 조성된 구역에 위치한 생 루이 거리에 있는 방 다섯 개짜리 아파트를 세냈다. 호사스러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삼대에 걸친 세 여자가 각자 방 하나씩을 쓰고 나머지 방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방으로 사용할 심산이었다.
거실엔 식탁이 놓이고, 또한 서재로도 사용되며, 피아노 연주가 있을 시에는 음악 살롱으로 바뀔 참이었다. 린호프 부인은 이삿짐을 나를 짐꾼들을 주문하고는 그들과 함께 같은 날에 출발했다. 굴뚝 청소부들은,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바로 옆집에 사는 굴뚝 수선공들은 수잔을 작은 2륜 포장 짐마차 위쪽에 앉히려고 그녀를 옮겼다. 그리고 모친은 한시도 배가 불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딸 곁을 지켰다.
딸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할머니와 어린 페르디낭은 삯마차를 타고 할머니와 어머니와 합류했다. 퐁텐느 오 르와 거리에 위치한 셋방에서 시작된 통증은 짐마차에서도 계속됐다. 전혀 혼잡하지 않은 새벽에 그것도 새로이 거처를 옮긴 새 집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행운을 모두가 고대하고 있었다.
짐마차에서 내려진 수잔은 이삿짐을 나르는 짐꾼들에 의해 임시방편으로 만든 들것에 실려 텅 빈 아파트로 옮겨졌다. 출산이 임박한 탓이었다.
플랑드르 지방의 강건하고도 용감한 딸인 수잔은 단 한 마디 비명도 없이 아이를 낳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 곁에서 여자들 모두가 분주히 출산 후 정리를 하는 동안, 수잔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사내아이를 낳은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수잔은 딸아이를 낳을 거라고 상상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아직도 누덕누덕한 아이를 흐뭇해하면서 막내인 로돌프에게 ‘조카’에 해당하는 아이를 안겨주었다. 이는 수잔 어머니의 사려 깊은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 막내에게 새로 태어난 아이를 안겨줌으로써 형제애를 확실하게 인식시키려는 의도였다.
“여기선 아무도 우리를 알지 못한다. 다만 수잔의 아이가 아니라고만 말하면 될 것이다. 바깥세상 사람들에겐 내 생애에 마지막으로 아이를 낳았노라고 말할 참이다!”
불안에 못 이겨 에두아르가 거의 광분 상태에 빠져있을 때, 그들을 다시 찾아 위로하면서 아이를 보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달려들 듯이 다가갔을 때, 그를 바라보던 여인은 그가 사랑한, 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여인이었다.
그들 주위로는 그가 기대한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더 잘된 일이 그들 모두가 그가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잔을 아끼는 이들이었으며, 그렇기에 훨씬 나은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런 연유로 새로 태어난 아이의 혈족 관계를 들먹이자마자 갑자기 에두아르가 대뜸 아이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앞으로 장모가 될 부인은 진정으로 사위가 될 에두아르를 껴안아주었다. 장모는 그렇다. 내일, 낼모래, 아니면 다른 어떤 날을 정해 사위인 에두아르가 딸인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결단코 자신이 낳은 친딸인 수잔과 결혼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언제? 그에 대해 에두아르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에두아르는 아직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언제라고 아버지가…….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가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고 더 이상 그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에두아르는 정말 진심으로 수잔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다가가 그녀들을 두 팔로 껴안았다. 그녀들은 자신들 집안의 예쁜 딸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젊은 남자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만 보았다.
수잔에 대한 사랑이 아름다운 품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란 점에 대해 수잔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무슨 이유로 에두아르를 의심하고 그가 맹세한 바를 믿을 수 없다고 했을까? 그가 아직까지도 그녀와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작용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행동으로 보여줘야만이 그녀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