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된 화가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8화

by 오래된 타자기


3장 4
(1851-1856)



세련된 멋쟁이의 삶과 화가로서의 삶, 그리고 수련생의 삶과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의 순종적인 삶을 마네는 다시 시작했다. 두려웠지만, 모든 게 다 잘 풀릴 거라 생각했다. 앞으로는 돈을 더 많이 벌어야만 했다. 마네는 아이를 부양하는 비용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돕고 싶었다.


에두아르는 아직도 스스로 아버지라는 자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역시도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였다. 아주 뒤늦게!


에두아르의 나이는 아이가 출생한 날로 스무 살 하고 6일이 지났다. 마찬가지로 수잔의 모친인 오마도 사위인 마네를 이해했다.


“곧 제대로 아버지의 역할을 할 것이니 사람들에게 좀 더 지켜보고 있으라 해라. 아이를 다섯이나 낳은 니 아버지는 두 아이가 생길 때까지도 아버지란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더구나. 로돌프가 8살이 되고 페르디낭이 막 11살이 되었을 때까지도 말이다. 그러니 아주 늦게 서야 아버지란 자각이 들 것이다. 아니 수잔 너에게는 어떤 면에 있어서도 그 친구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네 언니들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에두아르는 결국 으젠에게 이실직고하고야 말았다. 에두아르에게 있어서 제일 나이 어린 귀스타브보다는 바로 밑의 으젠이 더 사이가 가깝고 친근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아이의 삼촌이 되었어!”


이 두 형제는 부모에게 둘러대는 식으로 돈을 우려내어 살림 비용을 장만했다. 수잔과 아이에게 매일 드는 비용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 주려는 의도였다. 안타깝게도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았다.


꾸뛰흐 아틀리에에서 에두아르는 처음으로 선생에게 대들었다. 논쟁이 불씨가 되었다. 사실대로 그림을 그릴 것이냐, 아니면 사실을 승화시키는 차원에서 그림을 그릴 것이냐를 놓고 한바탕 격론이 벌어졌다.


에두아르는 승화시키는 걸 반대하고 나섰다. 세부 묘사에 있어서 실제보다 승화시키는 일은 단지 실체의 외양을 감추고 속이려는 짓과 같다고 그는 치부했다.


“사물들을 본연의 사물들이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과 사물들의 참다운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만이 내가 나의 예술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다.”


마네는 잘난 체하고 뻐기는 모델들 가운데 한 명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모델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취한 자세나 체격을 그가 매혹적인 형태로 그렸다는 걸 충분히 납득시킬 만큼 그림 속의 인물들이 자신들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드러냈다.


“정상적인 모습을 취해! 정말, 그리고 옷은 입도록 해. 난 네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을 그림 속에 담고 싶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그처럼 벌거벗은 사람과 늘 같이 있을 수 있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단 이야기야. 그러니 당장 옷 입어.”


“내가 행동한 것처럼 만일 네가 나를 그대로 그린다면 난 너를 메디시스 빌라로 데려갈 테다.”


“로마 상을 수상하는 따위는 그까짓 것 아무래도 상관없어. ‘고상한 주제’ 따위엔 아무 관심도 없어!”


마네는 그가 어슬렁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거리의 실 풍경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거리에서 맞닥뜨린 생생한 풍경과 풍경 속을 활발하게 동분서주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까지도 그리고자 꿈꿨다.


무슨 이유로 매번 한 물 간 고대 풍으로 그림을 그려야만 한단 말인가? 파리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속한 세계는 활짝 꽃 핀 세상이었다. 그는 단지 화병 속에 꽃들을 어떻게 꽂으면 더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꽃들을 보다 적절히 ‘정리하여 배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의 망막에 거대한 나무들이 가득 들어찬 숲으로 고정된 브라질은 노골적인 색조들로 그를 유혹한다. 게다가 적나라한 빛깔들은 그를 화나게까지 만든다. 그렇기에 그는 지나치게 태를 부리는 모든 짓들에 항거한다.


너무 지나치게 공들여 제작한 형상의 두드러짐과도 같은 너무나도 도식적으로 주조된 듯하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기교들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대담한 기법으로 다듬은’ 모든 회화 작품들에 똥칠을 가한다.


이런 유의 그림들은 고양이 수염을 그리면서 털들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묘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할 따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미술 실기를 지도하는 선생까지도 혹평하면서 비난하고 나섰다.


그날 선생과 제자 두 사람 사이의 언쟁은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졌다. 프루스트가 중간에서 에두아르를 말리려 애썼지만, 두 사람은 서로 욕설을 퍼부은 채, 인신공격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마네는 문짝이 부서지도록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가더니 아예 아틀리에를 떠나고 말았다. 다른 수련생들은 두 사람의 언쟁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단지 무언의 몸짓으로 마네를 동조하고 나섰다.


아틀리에를 나선 마네는 인근의 바드 카페로 가서는 아주 노쇠한 그림쟁이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좀 전의 흥분상태를 누그러뜨리고자 애썼다. 그러나 그가 꾸뛰흐 화실을 도망치듯 나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하면서 옆에 있던 그림쟁이들이 그를 동조하는 듯한 말들을 건네자 막연한 가운데에서 일부러 누그러뜨린 화가 다시 솟구쳤다.


마네에게는 아직도 부단히 갈고닦아야 할 것들이 남아있었다. 쓰라림이나 고초는 딱 질색이었다. 그는 카페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르 스위스 아틀리에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그가 일으킨 소동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새로운 얼굴들인 수련생들이 바글대면서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까미유 피사로라 불린 그림쟁이와 앙투안 기유메라 불린 아주 비사교적으로 무뚝뚝한 환쟁이가 아전인수 격으로 마네를 거들고 나섰다. 까미유 피사로는 스스로 과시하면서 뻐기는 유형의 인물이었기는 하지만, 화필만큼은 뛰어나 정묘한 기법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화가였다.


이 두 사람은 스케치들까지도 서로 간에 엇비슷해 보일 정도로 닮은 꼴을 이루고 있었다. 마네는 그들이 하는 말에 홀딱 빠질 정도로 넋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 말을 받아들이고자 애썼다. 이 친구들이야말로 마네와 동류 집단을 이룰 군생들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위해 술을 샀다. 한 잔, 두 잔, 석 잔…….


저녁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대놓고 그를 나무라면서 꾸짖었다.


“네가 한 어리석은 짓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에두아르는 자신이 벌인 사랑의 행각을 아버지에게 들킨 건 아닌지 가슴이 철렁했다. 더 큰일은 아이까지 낳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쏟아놓는 말들을 이모저모 뜯어보니 그와는 다르게 꾸뛰흐가 아버지에게 벼락같이 달려들어 자신의 행태에 대해 이실직고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아버지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아들을 두었다고 말한 게 분명했다.


아이구. 단지 그뿐인 게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고맙소. 꾸뛰흐! 그에 대한 보복이 이뿐이라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 내일 그를 찾아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성싶었다. 선생 앞에서 납작 고개를 수그리면서 저자세를 취하면 될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안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기꺼이 감수하겠노라고 자신과 약속했다. 다시 한번 고통보다 더 심한 두려운 감정이 가슴 저 깊숙이 물밀듯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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