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대부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9화

by 오래된 타자기


3장 5
(1851-1856)



가족들이 잠들자마자 곧바로 마네는 집을 나섰다. 어쩌다 보니 아무도 모르게 생겨난 자신만의 가정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한밤중에 나선 걸음은 그렇듯 철모르고 방긋방긋 웃다가 젖을 빨며 잠드는 아이를 돌보고 있는 여인네들이 있는 규방으로 향한 길이었다. 천성적으로 다정다감한 여인네들로부터 에두아르는 마치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도 된 듯이 아이를 돌봐야만 했다.


눈에 비친 아버지와 스승 꾸뛰흐의 부성애에 입각한 표정에서 오로지 반감만 키워갈 뿐인 에두아르는 감정의 부침을 거듭하면서 오직 그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푸는 어머니 같은 여자들의 보살핌 속에서만이 진정한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마네는 자신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어느 것 하나 알지 못한 채였지만, 오직 열정을 다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수잔과 그녀의 모친이 단지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에 차 반겨주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리에베 오마아테에만 해도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음 띤 얼굴로 반겨주는 것만으로도 할머니의 한없는 사랑마저 느끼게 해 주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주름살 속에 새겨진 듯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식의 무조건적인 수용을 의미할 뿐인 할머니의 태도를 접하면서 더군다나 자신을 다정다감하게 지켜보기는 할머니의 태도를 뭐라 딱히 설명해야 할지 마네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생 루이 가에서 마네는 자신이 낳은 자식을 들여다보면서 아이가 자신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기 레옹은 가느다라면서 기다란 팔다리에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귀하며 코까지 자신을 쏙 빼다 닮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쉿!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조차 없다. 아이가 그를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아이가 태어난 연후에 에두아르는 오마와 수잔과 으젠으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아이를 양자로 삼으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은 에두아르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아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잔과 결혼할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었을까? 장차 먼 훗날에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뭐라 이야기할 것인가? 아이에게 아버지가 없다고 말할 참인가?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아이에게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에두아르야말로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자신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아주 까다로운 인물이었다고? 아버지가 아무 해결 능력도 없이 그저 사랑만을 즐겼을 따름이라는 사실을 아이로 하여금 알게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시의적절하지 못한 처사는 아닐까?


“아이로 하여금 나야말로 그 애의 대부라고 믿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린호프 집안의 동의를 거의 억지로 어렵사리 얻어낸 에두아르는 단정 짓듯 말했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레옹은 에두아르를 가리켜 대부라 부를 것이다. 아이가 영세를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때가 되어 영세를 받으면 그뿐이었다. 매일 성유를 바르며 축성 받는 꿈을 꾸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리될 수 있을 것인가?


린호프 집안사람들과 마네 집안사람들은 한 동네에 가까이 살고 있었다. 모두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가기엔 사태가 너무 꼬여버렸다. 누구나가 어린 시절에는 화급을 다투는 일만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탓에 생명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지켜보는 가운데 밤잠을 설치는 일이 다반사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무관심은 너무 안이할 따름이다.


할머니의 자손이란 걸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집 밖에서 놀도록 내버려두는 일이다. 집에만 있으면 아이는 실제 어머니가 누군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볼 것이다. 이 불쌍한 아이와 더불어 살아가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얼기설기 꼬일 대로 꼬였다. 점점 더 아이에게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 힘들게만 여겨졌다.


대부라고? 대부라 참 그럴듯하군! 에두아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뿐이었다니 앞으로 그의 생애에 있어서 그런 태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제 아버지와는 다른…….


에두아르는 아이에 대해서 어느 것 하나 갈망하는 게 없었다. 아이를 위해 열심히 무엇인가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단지 두 팔에 아이를 안고 있을 뿐이었다. 오로지 두 팔에 아이를 안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쉬어야만 하기에 다른 사람의 팔을 찾아 헤매 다녔다.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걸 시도한 적도 없었다. 그는 아이를 사랑했지만, 아버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생각한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에워싸고 있는 여자들과 어린 로돌프는 그 앞에서 감격해했다. 그렇듯 에두아르를 확실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에두아르를 이끌어온 아버지의 음험하고도 강고한 쇠고집은 어린아이가 당연히 꿈꾸는 세계를 짓밟았다. 그뿐만 아니라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되새겨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에두아르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위해를 가했다.


그런 탓으로 그는 남편으로서 또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온당한 삶조차 꿈꿀 수가 없었다. 그는 단 한차례도 자신에게 아이가 생길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직 자신은 예술가가 될 거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이 벌인 은밀한 사생활을 전혀 다른 것으로 치환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는 절대 비밀에 부쳐야만 할 정도로 새로운 시련이 뒤따랐다.


그가 터득한 수법 이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어머니에게만큼은 비밀을 털어놓아야만 할 이유 또한 존재했다. 어머니만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온 힘을 다해 자신에게 닥칠 불행한 사태를 저지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비밀이 지켜진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그건 어머니가 남다르게 처신하고 있는 것에서 증명되었다. 몇 년째 모친은 남편 오귀스트가 병들어 누워있음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것만 갖고는 가능치 않을 일이었지만, 그녀는 병원에서 남편에게 방을 따로 쓰라고 하는 걸 무시하기 어려웠다.


병원에서 확인해 준 남편의 병명은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운 관절염인 류머티즘이었다. 점점 더 병이 악화되어 중풍에 시달릴 정도였다. 지금으로서는 오직 성질만 부리는 남편을 달래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남편의 실제 병명을 사람들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러웠다. 사람들이 남편을 무시하고 나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으제니는 정말 과묵한 여자였다. 주위에서는 그녀가 곧 파멸에 이를 것이란 이야기마저 무성했다.


수잔을 사랑함으로써 에두아르는 그만의 방법으로 어머니한테 복수한 격이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도 도전장을 내민 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그가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라는 건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어머니에게 모든 걸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에두아르는 얼마나 미루고 있었을까? 레옹이 태어난 지도 벌써 두 달째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수잔이 무슨 이유에서 피아노 교습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는지에 대해 속 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또한 자신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음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으제니는 에두아르와 마찬가지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에두아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으제니는 향후 20년간 일어날 일들을 마음속으로 그려봤다. 하지만 무엇을 하기에 앞서 절대 비밀을 지키는 게 급선무였다.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 한 사람 알아서도 안 된다. 네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하였다고 비난받기에는 네 나이가 너무 젊고 앞길이 창창해. 내게 베르나도뜨가 물려준 유산이 조금 남아있다. 네 아버지와의 공동 재산에서 빼내 쓸 수가 있다. 네 아버지는 돈 씀씀이가 헤픈 사람이 아니야. 외려 아주 인색한 사람이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진 않았겠지? 네 형제들한테도?”


에두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친은 자신의 손자를 돕기 위해 적금을 헐었다. 모친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고 다시 명랑해진 에두아르는 다시 패기 발랄한 젊은 남자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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