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23화
4장 1
(1857-1859)
뇌리에 떠오르던 온갖 신기한 것들에
시선을 돌리고자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허나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다는
오직 바닷물로 나를 더럽히고만 있었구나.
- 아르튀르 랭보
좌절의 시간이 경종을 울렸다. 모든 것들에 대한 좌절이자 파멸이던가? 그렇지만은 않았다. 모든 것들은 아니었다. 다만 예술적 독립을 보장하던 것들에 대한 파국이었다. 마네는 여전히 그림에만 전념할 자유를 구하지 못한 채, 그만의 고유한 기법 또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대기만성이라고나 해야 하나,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도 모르게 종속되어 따라 하게 된 마치 덫을 놓은 것과 같이 은밀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은 채 자신에게 영향을 준 요소들을 스스로 떨쳐버려야만 했다.
마네는 자신도 모르게 기존의 인습적 관례들과 그와는 또 다른 기성 체계들을 추종하고 있었다. 그가 젊었던 만큼 조금 더 자신의 고유한 기법이라 확신했던 그러한 영향 관계들을 스스로 척결할 수만 있다면, 온전히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마네는 화폭에 자신이 목표로 한 주제와 구성에 합치하는 색채들과 색조의 조화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꾸뛰흐에 소속된 관계로 꾸뛰흐의 말에 따라 선생의 맘에 드는 그림을 그리고자 애쓴 결과였다. 불행한 것은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관전에 의한 미술전람회에서 세인의 주목을 받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분명한 건 아주 뒤늦게 서야 그와 같은 일이 왜 벌어지게 되었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스승이 좋게 봐주기를 기대했던 관계로 스승이 의도한 그림만 그린 탓이었다. 그리고/또는 전람회라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만 매진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오직 그것만을 목표로 매진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는 애착을 느끼고 있는 스페인 회화에 푹 빠져 나름 충분히 소화하고 있었으며, 조금도 지치는 법 없이 매년 여름마다 이탈리아로 가서는 이탈리아 회화 작품들을 모사하고 거리상으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관계로 그 어느 곳보다도 선호했던 네덜란드에 가서는 플랑드르 회화, 특히 렘브란트에 푹 젖어들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가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프랑스 회화 작품들도 빼놓지 않고 섭렵했다.
아니 그런데 무슨 연고로 아카데미는 마네가 출품할 때마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는 것일까? 그들이 애호하는 작품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마네가 그린 것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을 배척하기로 이미 결정한 것일까?
마네는 자신을 평가해 주길, 자신이 그린 그림을 좋게 여겨주기를,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 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해서 그는 자신을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점을 구별해 줄 것을 바라 마지않았다.”
하지만 마네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늘 동의를 구했던 이는 과연 ‘누구’였던가? 또한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사물들을 굳이 그리고자 했던 이유는 누구 때문이었는가?
마네가 아틀리에에 속해있는 이상 이 ‘누구’는 사부인 토마 꾸뛰흐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토마 꾸뛰흐가 강요한 구속과 속박의 멍에를 뒤집어쓴 채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멍에란 건 또한 무엇이던가? 1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마네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던 예술적 개념들, 규범들, 원칙들, 비판적 견해들, 지적들, 그에 더해 새로이 그릴 것을 요구하던 지시사항들…….
마네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스승과의 불화를 매일 겪고 있었다. 그의 불같은 성격으로는 이를 용인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스승의 견해에 동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6년 동안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로 점철된 시간 속에 에두아르는 매번 아틀리에 문을 쾅 처닫고는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동료들은 환호했다. 동료들은 에두아르보다 훨씬 우유부단하면서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을 뿐만 아니라 성격조차 까다롭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마네의 행동조차도 아틀리에 수장에 대한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따른 까탈이었음은 물론 그에 대한 일종의 항변에 불과했다. 마네는 그처럼 자주 문을 쾅 소리를 내면서 닫아버리고는 아틀리에를 뛰쳐나갔다. 또한 그럴 때마다 다시 스승 앞으로 돌아와서는 고개를 수그린 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면서 스승의 지도에 충실히 따를 것을 맹세하곤 했다.
그러나 꾸뛰흐는 너무 진부했을 뿐만 아니라 노쇠하기까지 했다. 노력을 통하여 얻은 성공이 오히려 그를 압살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화려한 성공 뒤에 그는 자신이 퇴조해 가는 것을 스스로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에 대한 평판이 잦아들면서 아예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이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는 완전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자신을 우상처럼 떠받들지 않는 이들을 철저히 경멸하던 그의 도도함조차 이제 누그러뜨림 없는 고립 속에 스스로 갇혀있는 꼴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나폴레옹 3세의 출현은 더 이상 그의 작품을 주문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황제가 존재하는 한 주문이 다시 이루어지리라는 마지막 기대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꾸뛰흐 또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제군주 이상으로 군림하지 않았던가?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화법만을 따르도록 강요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신랄한 야유와 파렴치한 짓마저 서슴지 않고 자행하던 가련한 족속이었을 따름이다. 그의 말투는 항상 거칠기만 했고 경망스럽기 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납기까지 했다.
어느 봄날 아침 몽마르트르 위로 떠오른 태양이 마치 감옥 같은 아틀리에에 더없이 찬란한 빛을 쏟아붓던 때, 마네는 꾸뛰흐가 자신의 작품에 수정을 가한 것을 곰곰이 바라보았다.
“바탕에 밝은 색조라고는 전혀 없군!
- 아침에 본 그 눈부시도록 파란 색조를 사용하란 말이야.
- 자신의 스승의 진가를 부정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스승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마네는 선생이 두 차례 연거푸 그에게 지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이 끝나지도 않은 가운데 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마침내 선생이 두 차례 거듭하여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품들을 그러모으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러고는 가능한 한 있는 힘을 다해 힘차게 문을 열어젖히고는 밖으로 뛰쳐나간 뒤 다시 문을 쾅 하고 닫고야 말았다.
그와 나는 이제 끝났다. 난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