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34화
5장 6
(1860-1862)
관전이 마침내 마네에게 문을 연 것은 1861년의 일이었다. 「부모의 초상」과 「기타 치는 사내」가 관전 심사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보들레르는 그림 속의 기타 치는 사내가 오른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왼손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마네는 보들레르의 그 같은 훈수를 무시한 채 작품을 관전에 출품했다. 그 같은 세세함에 골머리를 앓을 이유는 없었다. 그건 오류가 아니라 회화 작품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묘사일 수 있었다! 관전이 작품을 받아들인 이상 더 이상 문제될 것도 없다. 이미 끝난 일이다. 그렇다고 여기면 될 일이다!
마침내 그만의 시간이 도래했다. 미술전람회는 마네가 출품한 작품들에게 훌륭하다는 평점을 매겼다. 그만하면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고 마네는 생각했다! 부모의 목에 수상 메달을 걸어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배은망덕한 자식이 드디어 아버지에게 기쁨을 선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불쌍하게도 아버님이라 부르는 아버지는 아들의 수상 소식을 달갑게 여길 정도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미술전람회 입상을 다 함께 기뻐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기쁨이었다! 그간 자신이 겪은 비참한 상황을 되새기면서 다른 이들의 형편은 어떠한지 살펴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게르부와 카페는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마네는 허풍 떨며 뻐기는 짓을 그만두지 못했다. 서른 살이 채 안 된 나이였다. 드디어 제도권 안에 속한 화가가 된 것이다. 그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잘 된 일인지 그가 받은 최초의 평가는 어찌 되었든 그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망신당할 일만큼은 면하게 해 준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지껄이든 이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가장 성스럽다고 여긴 가족 관계를 여지없이 발로 짓밟았다.”
“화가의 부모는 자식이 붓을 잡은 것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저주를 퍼붓곤 했다.”
“부모가 걸친 옷들이 오직 검은색인 단색으로 처리된 것은 존재 간의 고독을 주제로 다루었음을 예시해 줄 뿐 아니라, 이야말로 그림의 진짜 주제에 해당한다. 고독감, 서로 간의 인간적인 화합이 실종된 고독한 상태는 두 사람이 같은 화폭 안에 있지만, 서로 갈라선 채라는 걸 입증해 주고 있다.”
그건 거짓이 아니다. 이러한 정당한 평가는 테오필 고티에에 의한 것이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 발문에서 테오필 고티에는 마네의 「기타 치는 사내」를 극찬하고 나섰다. 테오필 고티에는 팡탱이나 휘슬러 그리고 카롤루스 앞에서조차 마네를 젊은 사실주의 화가들 가운데 최고로 뛰어난 기사라 칭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온갖 시련을 겪던 중에 마침내 찾아온 경사스러운 일에 기쁨에 젖어 어쩔 줄 모르는 동안 친구나 다름없이 지내는 보들레르는 침울한 생각에 잠겼다. 프랑스 학술원이자 예술원인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보들레르에게 시인이자 작가로서의 모든 권위를 박탈한다고 통보한 탓이다.
보들레르와 마네가 불한당처럼 한데 어울려 온갖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이미 세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던 그들의 회합 또한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그들은 판단했다.
고집 피울 줄밖에 모르는 당나귀 같은 족속들! 시인은 앞으로도 결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빌어먹을, 무슨 연고로 시인이 그와 같은 불한당 짓을 꾸밀 것을 계획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가 말이다.
스스로 자문하던 지인들은 시인에게 절대 누구에게 무엇 하나 탄원하거나 요청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오로지 마네만이 동료들이 그에게 입힌 갑옷과 투구를 챙겨 입고 시인과 함께 투쟁할 필요가 있다는 걸 절감했다. 그 어떤 부담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허약하고 나약하기만 한 친구를 도와줘야만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마네가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에 연루되어 있으며, 그를 짓누르는 강박관념이 점점 도를 더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네는 다시 한번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배척한 데에 따른 충격에 휩싸인 보들레르를 위로하고자 맘먹었다. 보들레르는 이미 이전부터 여러 다른 문제들로 극심한 불안 증세까지 겪고 있는 상태였다.
보들레르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약간은 혼란스러운 상태를 호소한 바 있었다. “어리석음이란 날개를 퍼덕이며 정신 못 차리고 바람 속으로 날아든 꼴이라고 생각할 따름이야.” 마네는 보들레르의 광기에 찬 말에 공포감마저 느꼈다.
사랑하는 남자가 바그너를 좋아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수잔은 보들레르를 끔찍하게도 좋아하는 마네를 위해 두 사람이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를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좌석 두 자리를 예약했다. 그녀는 보들레르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게 된 직후로 그녀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돕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잔은 단지 보들레르에 대한 마네의 감정 상태를 통해 그 둘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정도였지만, 마네에게 있어서 보들레르는 단지 흠모의 대상을 넘어서 탄탄한 정신적 지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네는 보들레르를 어떤 방법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마네는 친구인 보들레르를 우선 오페라로 데리고 갔다. 포도주와 아편에 절어 산 탓인지 오페라 홀에서 보들레르는 몇 번씩이고 졸기만 했다.
자신의 작품에 쏟아진 신랄한 악평에 기분이 손상될 만큼 더럽혀진 드가였지만, 그에게는 행운이 따랐는지 먹고살기 위해 작품을 팔아야 할 정도로 곤궁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가는 자신의 이름에 붙은 귀족 출신임을 뜻하는 드(De)를 없애버리겠다고까지 작정했다. “성씨에 붙는 귀족을 뜻하는 단어는 관전에서 여러모로 불리할 뿐이다”라고 드가는 이미 표명한 바 있었다.
드가는 독신으로 모든 살림을 도맡아 일하는 가정부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늘 친구들과 더불어 밖에서 식사를 즐기곤 했다. 설사 그가 부유하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와 같은 삶의 방식을 고수할 스타일이었다. 동료들이 궁핍함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뒤에야 드가는 비로소 절약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생각에 눈을 뜨게 만든 이가 동료 중에 제일 가난한 피사로였다. 드가는 그와 같은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있던 마네로서는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불평 부당함을 모르는 채 있을 수만은 없어 불같은 열정으로 공화주의적 신념을 키워갔다.
또한 삶의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척도가 붕괴된 브라질 같은 나라들을 여행하기도 했다. 라틴 아메리카 흑인 원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확실히 경험한 뒤로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똑같이 행운을 걸머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드가는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현실적 상황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단지 부르주아란 허울 좋은 이름뿐 몰락한 귀족 대우를 받는 것에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겨워했을 따름이다!
성씨 앞에 붙는 귀족임을 뜻하는 드(De)와 성씨에 해당하는 가(Gas)를 붙이자 성이 단일한 단어인 드가(Degas)가 되었다. 이로써 자신의 집안이 운영하는 은행 이름과 구별이 되었다.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직전에 마네의 화실에 젊은이들이 들이닥쳤다. 마네의 「기타 치는 사내」에 홀딱 빠진 소심하면서도 상당히 쾌활한 성격을 지닌 젊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미술전람회에서 마네의 그림을 접하자마자 이에 심취하여 마네야말로 자신들이 마음속으로 고대하던 작가라고 여겼다는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그 말을 꼭 전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대표하여 자신들이 찾아왔노라고 덧붙였다.
그들이 바라던 화가라! 심정적으로 과감하게 그와 같은 작품을 그렸다는 사실마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작정한 화가를 오히려 칭송하기 위해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젊은 층이 찾아온 것이다! 「기타 치는 사내」는 그처럼 대단한 작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기법을 보여주는 말 그대로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보들레르가 젊은이들을 마네의 화실로 데리고 온 탓이었다. 그를 위로하고 도움을 준 것에 대해 약간이나마 보답을 하겠다는 발상에서였다. 동료들까지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그들이 모르는 편이 나을 뻔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마네는 동료들의 혁명적인 태도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더군다나 동료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떻다는 둥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제기랄! 그가 슬그머니 엿보고 있는 것까지 그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마네가 어떡해서든지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고자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마네를 찾아온 젊은이들은 어떤 소속감도 없이 그저 자유분방하게 살아가고 있는 보헤미안들에 불과했다. 분명한 건 팡탱이 그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보들레르의 두 친구들 또한 그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와 어울리려면 돈이 필요했다. 뒤랑티는 아무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속해있던 예술계에서 어떤 입장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가 능력이 있고 없고 간에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었다. 샹흘뢰리는 매력적이며 재능까지 갖췄지만 거의 잊힌 인물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브라끄몽만이 마네에게 유일하게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만이 마네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비로소 자각한 화가들 가운데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네 편을 들 수 있는 인물이었다.
교회 실내 내부 장식을 하며 살아가는 알퐁스 르그로는 어릿광대 짓을 하며 이상하게 생겨먹은 모자까지 쓰고 다녔다! 젊은 예술가 그룹에 속한 화가들 가운데 가장 근사한 차림이었던 카를루스 뒤랑은 마네에게 무조건 오케이였다. 착한 화가였으나 팡탱처럼 식인귀같이 잔인한 쿠르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스타일이 문제였다.
마네가 마지막 관전에 작품을 출품할 때까지 쿠르베는 그들의 신이었다. 그들은 매일 순교자들의 식당 겸 카페인 브라스리를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신은 주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을 독차지하고 앉아 혼자서 일방적으로 주절주절 떠들어대고 있었다.
쿠르베는 무시무시한 말을 서슴지 않는 독설가이기도 했다. 아무도 그의 독기를 품은 말에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폭풍우가 몰아치듯 떠들어대다가 핏대를 올리며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마네를 따르겠다고 그곳까지 몰려온 젊은이들은 쿠르베 앞에서 마네를 대신했다. 이제 모든 걸 때려치운다고? 마네는 매캐한 연기로 혼탁해진, 시끄럽게 떠들썩한, 먼지투성이며 아무 쓰잘데없는 말다툼만이 난무하는 이탈리아인들의 대로에 위치한 카페들을 떠나지 않았을뿐더러 친구들을 저버리지도 않았다.
쿠르베의 화실에서 파리의 이러저러한 화가 지망생들은 모두 거저 공짜 술을 얻어먹고 있었다. 이들 보헤미안들은 나이 어린 매춘부들에게 앞다투어 시나 그림을 헌정하려고 난리를 피우는 족속들이었다.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남자를 다루는데 능수능란하기만 한 여자들은 이름조차 없이 니니, 티틴느 또는 계란프라이(납작한 젖통)라 불렸다. 그녀들은 뜨거운 밤을 함께 지새울 손님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자들이었다. 고맙지만 사절.
마네는 그들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신은 혁명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마음 또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 그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러대며 자신을 힐난하는 온갖 험담들이 들려왔다.
마네는 오로지 “자신들이 제의한 것을 어떻게든지 거절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는 둥, 스캔들만을 일으키고 싶어 할 뿐이라는 둥, 판을 흩뜨려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만을 취하려 한다는 둥” 온갖 말들이 무성했다.
마네는 언젠가는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어느 날 자신의 얼굴에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아주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마시고 먹기만 한 탓에 너무 이른 나이에 피둥피둥 살만 쪘다.
마찬가지로 마네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이의 말을 귀담아들을 여력조차 없었다. 자신의 사생활 폭로 취미야말로 자신의 재능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마네는 생각했다. 자신을 가리켜 ‘남보다 특출한 재능을 타고난 라파엘이며, 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화가’쯤으로 여긴다는 사실에 흥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