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35화
5장 7
(1860-1862)
뒤이어 찾아온 여름은 행복하기만 했다. 아버지 오귀스트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쥬느빌리에흐에서 여름을 보냈다. 몇 달간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자 에두아르 마네는 거동조차 불편했던 두 다리도 정상을 회복했다. 새로운 위기는 결국 그로 하여금 거동조차 못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말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세 아들들에게는 맑고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는 것이 필요했다.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거의 벙어리 상태가 된 아버지와 떨어져 있는 것만이 가족들에게 유일한 돌파구로 비쳤다. 그러나 아버지의 두 눈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절규하는 눈빛이었다.
삼 형제는 수잔과 레옹을 데리고 오팔 해안가로 도망쳤다. 젊은이들 다운 발상이었다! 레옹과 으젠은 죽이 맞았다. 에두아르는 지칠 줄 모르고 그림만 그렸다. 귀스타브는 수상한 곳을 얼쩡댔다. 귀스타브는 얼마 전 변호사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수잔은 네 명의 철없는 사내애들을 귀애했다. 그녀가 레옹을 데리고 네덜란드로 떠나자 삼 형제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여행하면서 눈부신 아름다움에 넋을 잃어갔다.
파리로 돌아오자 마네는 새로운 아틀리에를 구해 이사했다. 자신에게 충실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번잡한 클리쉬 광장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아틀리에를 옮기고자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겼다. 수잔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부모의 집까지, 게르부와 카페에서 한 동네에 위치한 동료들이 작업하고 있는 아틀리에들까지는 5백 미터가 채 넘지 않았다.
마네의 삶은 바티뇰을 반경으로 한 지역으로 급선회했다. 빌리에 인근 기요 거리는 낯설기만 한 동네였다. 이 지역은 클리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연일 툭탁거리는 공사장 망치질 소리로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드넓은 땅은 황무지만을 연상케 했다.
마네는 어린 고양이들을 기르면서 레옹이 새로운 기분에 젖어들도록 기르고 있는 개들이나 더없이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산책에 나서기도 하고 혼자서 산책을 즐겼다. 애완동물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굳건한 것은 집안의 내력이었다. 마네는 수잔이나 레옹이나 둘 다 애완동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단 한 차례도 잊은 적이 없었다.
기요 거리에 안주하자마자 마네는 즉시로 완벽히 식이요법을 하듯이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는 절제 수술을 할 만큼 심각한 그 무엇이 있었다. 그는 작업에 매진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채였다. 하지만 미술전람회에 입상하고 메달을 목에 건만큼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그와 같은 약진이 앞으로 일을 술술 풀리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네가 기요 가에 아틀리에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준 친구는 미술전람회에 입상한 적이 있는 이름이 조셉 갈이라는 나이 많은 화가였다. 조셉 갈이 작품을 관전에 첫 출품한 때가 1842년의 일이었다. 이후로 조셉 갈은 어떠한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가난한 화가였으며,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조셉 갈은 늘 자신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가난한 화가가 밖에 나가고 없는 동안 마네는 그의 잠바 주머니에 슬그머니 돈을 찔러 넣어주었다. 마네는 그를 모델로 해서 「책 읽는 사내」를 그렸다.
마네는 부득이 기요 가에 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마네는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자족하면서 너무도 화목하면서도 온정이 넘칠 뿐만 아니라 부유하고 호사스러운 서로 다른 두 가정 사이를 오갔다. 마네의 나이 많고 가난한 동업자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요컨대 어머니나 으젠 그리고 프루스트만 하더라도 마네의 또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깜깜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기요 가에서는 친구들을 아틀리에로 불러들이는 일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아틀리에가 보잘것없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작고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만큼은 그림 그리기에 딱 좋은 실내를 이상적으로 환하게 밝혀주었다.
마네는 미친 듯이 작업에 몰두했다. 사립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것도 완벽하게 새로운 작품들로! 게다가 착한 고객이 그의 실력을 인정해 주면서 작품을 기꺼이 사주기를 바라는 잡화상들에게 두 세 점 작품을 팔 작정이었다.
온 파리에 활량으로 소문난 루이 마흐티네라는 사내는 눈병이 나서 어쩔 수 없이 화업을 접어야만 했던 왕년에 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다. 그는 관전 말고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작품을 전시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혀 굽히지 않은 고집 센 남자이기도 했다. 그가 2년 내에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일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보자고 계획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마침내 이탈리아인들의 대로 26번지에 현대적인 삶(La vie moderne)이란 상호를 단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또한 전시되는 작품들에 대한 호평과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한 달에 두어 차례 격주로 같은 제호의 잡지까지 발행하기로 계획했다. 콘서트도 열었다.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혁신을 외치면서 이를 위한 투쟁에 돌입한 마흐티네는 관전에 출품되지 않은 작품들만을 엄선하여 이들 작품들을 갤러리에 전시했다. 이로 인해 그는 결국 조형예술을 담당하는 행정부서에 소속된 공무원이 되기까지 했다.
루이 마흐티네는 마네에게 전시실 벽에 걸려있는 쿠르베 작품과 도비니 작품 사이 한가운데에 작품을 걸 것을 권유했다. 마네는 맨 처음 「책 읽는 사내」와 「체리를 먹고 있는 아이」 2점을 벽에다 걸었다. 한 달 뒤에는 두 작품이 걸려있던 자리에 「기타 치는 사내」를 전시했다. 유리창에다가 「놀란 요정」을 전시하는 기발함도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판화 판매상이자 두 사람 다 인색하기가 짝이 없는 구필이 그곳까지 찾아와서 몽마르트르 대로변에 그림 판매 일을 함께 하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찼다.
관전에 출품되지 않은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과 그와 같은 작품들을 판매한다는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이를 자축하는 모임이 디노쇼 아틀리에에서 개최되었다! 마네를 가장 탐낸 이들은 그와 같은 구역에 위치한 나바랭 거리에서 그림 판매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마네의 아틀리에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성대하게 자축연을 벌였다.
아틀리에에서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에 점차 한낮의 태양빛이 해쓱해지면서 마네는 아틀리에를 벗어나 ‘샹들리에 불빛에 소란스러운 분위기의 카페들을’ 찾아 전전했다. 호화찬란하기만 한 카페 토르토니 위층에서 마네는 일주일에 닷새가 멀다 하고 보들레르와 함께 식사를 했다.
두 사람은 정치적인 견해나 주장이 완전히 서로 달랐던 만큼 마네는 공화주의자였으나, 보들레르는 왕정주의자였다. 보들레르는 성병에 걸린 여성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주장했지만, 마네는 모든 여성과의 육체적 관계가 절묘하다 못해 감각에 쾌감을 일으키는 사랑 행위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아주 적나라하게 늘어놓았다.
한 사람이 여자에게서 소름이 끼치도록 심한 공포와 그보다 더 지독한 민주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낀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생기발랄하고 늘 멋진 여자를 꿈꾸는 듯한 말을 이어갔다. 그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가 설사 격렬한 토론과 같은 양상을 띨 경우라도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은 여전해서 대화가 중단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바드 카페에서 또한 카페에 매일 들르다시피 하는 단골손님들인 뮈세, 탈레랑, 로씨니 또는 고티에 같은 외교관과 예술가들이 서로 일제히 술잔을 맞댄 채 축배를 들었다. 동료들은 카페에 앉아있는 마네를 발견할 때마다 마치 그들의 우상이나 된 양 반갑다는 듯이 마네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클리쉬의 음침한 술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네는 카페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기요 가로 이사 오고 난 뒤부터 마네는 쉬지 않고 한숨 돌리고자 휴식을 취하는 법도 없이 그림 그리는 일에만 매달렸다. 봄에 「검을 들고 있는 아이」를 완성한 뒤로 마네는 다시 레옹을 그렸다. 대자이자 친아들인 레옹. 요컨대 이 절묘한 가족에 대한 몽타주는 저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들을 연상시키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위장술과도 같았다. 모두가 레옹을 걱정하고 있던 만큼 마네 역시 그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절묘하게 에둘러 묘사한 작품이었던 셈이다.
마네는 과연 생각대로 올바르게 밀어 부친 것일까? 묘사는 잘 된 것일까? 무엇 때문에 아이에게 진실을 말하고자 그렇듯 악착스레 달라붙어 온 생각을 비틀면서까지 아이를 그리고자 한 것일까? 혹시 이 그림은 어른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 의도를 지닌 작품은 아닐까? 이 작품 말고 다른 작품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이후에 두고 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