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린느 뫼랑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37화

by 오래된 타자기


5장 9
(1860-1862)



거리를 오가면서 스무 살 남짓한 거리의 여자와 오다가다 수없이 부딪힌 덕분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는지 마네는 공공장소이긴 했지만 이름도 모르는 창부에게로 접근해 갔다. 그녀가 상당히 예뻤을 뿐 아니라 매혹적이기까지 했기에 호기심마저 발동했다. 비록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으나,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만 할 것 같은 결단력도 작용했다.


마네는 그녀에게 다가가 작품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할 마음의 준비를 이미 끝마친 상태였을 뿐 아니라 팔레트를 펼칠 준비 또한 이미 끝마친 상태였다. 그의 재능으로 볼 때, 그녀가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지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다.


이런저런 생각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여자의 눈빛은 이미 그러마 하고 말하고 있었다. 남자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표정을 띤 여자의 두 눈에는 영양결핍에 시달린 탓인지 어린 시절의 상흔이 깊게 패어 있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그녀는 오직 모든 꿈이 완전히 뒤죽박죽되어버린 오늘을 살고 있었다. 존재하는 것만이 그녀 삶의 모든 것을 구현한다는 듯이.


창녀, 매춘부, 애첩? 아직 그렇게 말할 단계는 아니다. 바람기 있는 여자 또는 음습한 곳만 찾아다니는 여인? 내일은 그리될 수도 있으나 아직 오늘은 다하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어떻게 하리라 작정한 건 없었다. 그녀는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 될 뿐이었다.


그런데 포즈를 취하라고? 어떤 포즈? 그건 그녀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바였다. 그녀는 단지 남자인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물을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표물이란 마네란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그녀는, 이름이 빅토린느 뫼랑인 여자는 마네가 생각 속에 그리던 모델이었다.


아무 거리낌 없는 표정을 지닌 얼굴에다가 눈빛도 차갑지 않고 단호한 모습에 아무런 꾸밈이 없는 날 것 그대로인 아름다움. 옷차림조차도 전혀 꾸밈이 없으며, 여리고, 꿋꿋하며, 날씬하고, 악센트를 준, 유연한 몸놀림을 연상케 만들었다.


머리카락은 다갈색에 금발이 섞여 있으며, 검정 바탕에 갈색을 띤 눈동자와 우윳빛 같은 흰 살결은 창백하기만 하고 가느다란 손목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태도에 달콤한 미소, 무언가를 언약하는 듯한 표정은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마네는 더 이상 그녀에게서 어떤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느꼈다. 이미 많은 걸 그녀에게서 발견한 탓이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빅토린느 뫼랑(Victorine Meurent)」의 초상, 1862.


빅토린느 뫼랑은 빠른 시간 내에 기요 거리를 오갈 수 있었다. 그녀가 사는 집이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간혹 그녀는 아틀리에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녀는 이사 오자마자 화가의 친구가 된 고양이들 가족과 한 식구가 되었다. 또한 자주 마네의 모델들과 함께 했다.


회색 또는 검정고양이들은 온 공간을 다 차지한 듯 휘젓고 다녔다. 레옹이 기르는 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수잔이 살고 있는 집에 예쁜 얼룩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고양이는 곧 새끼를 낳을 참이었다. 마네는 고양이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장식적으로 묘사했다. 벨라스케즈가 그린 그림처럼.


그때 수잔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레옹이 기르는 개들은 고양이 새끼들을 양자로 삼았다. 고양이들은 자유를 상징하는 형상들로 묘사되었다. 거기에 개들의 형상 또한 더해졌다. 예술의 자유에 대한. 그리고 점점 그의 화신(아바타)으로 자리 잡아갔다. 마네가 고양이를 더는 다시 묘사하지 않겠다 작정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다가 고양이를 그려 넣고 있었다.


에두아르 마네, 「스페인 풍의 옷을 입고 누운 젊은 여인」, 1862. 마네는 이 그림에서도 한쪽에 고양이를 묘사했다.


마네는 고양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빅토린느 뫼랑에게도 똑같은 걸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고양이들을 그렸다. 고양이들은 왔다 갔다 했다. 그가 마음 내키면 언제든지 고양이들을 그릴 수 있었다.


마네는 일종의 열병을 앓듯이 빅토린느를 그렸다. 열병은 다른 걸 해야 한다는 생각을 싹 지워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다행인 것은 항상 목이 말랐던 보들레르가 매일 찾아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엔 루브르 앞의 튈르리 공원을 산책했다. 보들레르는 이야기를 하고 마네는 스케치를 하고. 훗날 그림으로 완성하기 위한 습작이었다. 마네가 꿈꾸는 건 오로지 관전 심사위원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릴 대작을 완성하는 것뿐이었다.


마네는 오랫동안 스케치북에 공들여 묘사한 튈르리 공원에 관한 주제를 고심하여 구상하면서 그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마네는 새벽부터 일찍 또다시 그가 잊고 있던 빅토린느에 관한 환상에 빠져들었다.


튈르리 공원에서의 점심 식사 후에 이탈리아인들의 대로에 있는 카페들을 잠깐 들렀다가 오후에 기요 거리로 되돌아오면 아틀리에에 있는 모델을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화가를 기다리는 동안 모델은 여느 여자들처럼 집안을 청소하면서 정리정돈을 하듯 아틀리에를 깨끗이 청소하고는 화구들을 정리했다. 마치 그녀의 집인 양 반쯤 벌거벗은 옷차림으로 화가를 맞이했다. 그러고는 화가를 껴안고 소파에 나뒹굴었다.


여자는 그가 자신을 ‘기쁘게 만들어주지’ 않으면 아예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만들 거라고 누차 말했었다. 그녀는 그가 사랑을 나눈 뒤에는 더 멋지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납득시키는 데에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빅토린느 뫼랑은 작품의 모델로 포즈를 취하지 않을 때에도 마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포즈를 취하는 모델 일 말고도 그녀는 제2의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새로 캔버스를 준비하고 솔들과 붓들을 빨아놓으면서 아틀리에 흩어져 있는 화구와 잡다한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곤 했다.


그녀는 남자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기도 했으며, 아주 멋진 부인처럼 차려입기도 했다. 그녀는 확실히 변신에 능한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기타를 치는 아이로도 변신했고, 마네가 매번 그림을 그릴 때마다 이에 걸맞은 참신한 모델로 변신을 거듭했다. 마네는 그리고 또 그리고 서로 다른 그림들을 제각기 시작한 것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모든 그림을 완성할 시간이 없었을 따름이다.


마네는 아주 환한 빛 속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빅토린느와 장난질을 쳤다. 그녀 역시 그를 끌어안고 입 맞추면서 장난을 했다. 하지만 그를 놀리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녀가 고대하던 사람은 바로 그와 같은 남자였다. 그녀가 이야기할 때마다 마네는 그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매번 고민했다. 그녀는 완벽한 모델로서의 모든 자질을 다 갖추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화가인 마네가 늘 찾아 헤매던 모델일 수밖에 없었다.


천성적으로 악마의 모습을 한 그녀는 배우가 되겠노라는 야망을 품고 언젠가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고 있었기에 그가 온갖 변덕을 부리는 짓에도 쉽게 순응할 수 있었다. 강한 인내심을 지닌 것은 물론 그녀는 천부적으로 이해심을 타고났는지 마네의 모든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자신의 화가가 원하는 포즈를 예상하고는 그에 어울리는 포즈를 취할 정도였다.


에두아르 마네, 「거리의 여가수」(오른쪽, 1862)와 「투우사 복장을 한 젊은 사내」(가운데, 1863), 「투우사 복장을 한 빅토린느」(왼쪽, 1862).


언젠가는 한 번 부모의 지인으로부터 초상화 주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브뤼네라는 젊은 기혼여성의 초상화를 제작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담 브뤼네는 기요 가의 마네 화실로 찾아와 포즈를 취했다.


마네는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이 그가 본 대로 마담 브뤼네를 그렸다. 그녀를 미화하려는 의도 또한 추호도 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진솔하게 바라본 인물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을 뿐이다!


완성된 그림을 본 마담 브뤼네는 마치 추악한 자신의 모습이나 본 듯이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러대며 흐느껴 울었다. 당연히 그녀의 남편은 마네가 황당무계한 그림을 그렸다고 판단하고는 그림을 빼앗아 내팽개쳤을 뿐만 아니라 그림 값 또한 지불하지 않았다. 흥! 그까짓 일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스스로 불만을 표시할 마네가 아니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브뤼네 부인의 초상(Portrait de Madame Brunet)」, 1860.


마네는 이 초상화를 간직하고 있다가 샤르팡티에 아틀리에에 전시했다. 그러자 브뤼네 일가는 초상화를 가리켜 비난을 쏟아냈다.


“쳇! 그깟 마네의 아들놈 같으니라고. 그것도 그림이라고 그리다니. 빌어먹을 저속한 그림이나 그리는 주제에!”


세상 논리란 예나 지금이나 진솔한 것마저도 한낱 저속한 것으로 간주하기 마련이다.


결코 아쉬워할 필요조차 없었기에 마네는 다시 빅토린느 뫼랑에게로 돌아갔다. 그녀야말로 함께 잠자리를 하는 것 이상으로 그에게 화폭에 매달리도록 열정을 부추겼다. 물론 그녀는 그의 정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본질은 모델로 함께 하고 있는 이 여자야말로 그 어떤 여자도 대신할 수 없는 마네의 유일한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렇듯 마네가 이전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진정으로 화폭에 담고 싶은 인물이었다.


수잔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마네의 아틀리에에 들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마네는 세상에서 제일 수수께끼 같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수잔은 마네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알 도리조차 없었다. 화폭에 담긴 인물이 그와 같이 아주 강력하게 모든 면에서 자신의 남자를 구속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설사 마네가 모든 여자들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는 장난삼아 연애나 즐기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도 이런 점에서 모델과 마찬가지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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