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38화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잘 차려입은 기마병들(Les Petits Cavaliers)」, 1859.
5장 10
(1860-1862)
나폴레옹 3세 황제의 결혼식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스페인 풍이 유행되는 것에 더욱 활력을 불어넣었다. 카바레든, 전람회든, 쓰고 다니는 모자든, 여자들의 몸치장이든, 모든 것을 막론하고 스페인 풍으로 바뀌었다. 마네라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벨라스케즈는 이미 오랫동안 마네를 감질나게 만들고 있었다. 마드리드 궁정 극장에서 공연된 세비야 꽃의 여신은 안달루시아 극단과 더불어 파리에서도 무대에 올려졌다.
극단 단장은 남녀 무용수들이 실제 무대의상을 갖춰 입고 공연하는 장면을 마네가 화폭에 담고자 한다는 요청을 기꺼이 수용했다. 무용수들 가운데에는 파리 명사를 까무러치게 만든 롤라 데 발렌시아란 이름으로 불리는 아주 유명한 여자 무용수가 있었다. 기요 거리로 그들을 불러들이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여서 알프레드 스테방이란 체격이 거구인 플랑드르 화가가 자신의 아틀리에에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알프레드 스테방은 두 번씩이나 미술전람회에 입상하는 바람에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파리지앵이고 싶어 하던 인물이었다. 제르베와 함께 아틀리에를 꾸려가고 있는 화가 스테방은 작품의 주제가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우정에 찬 마음 씀씀이도 통이 컸다.
스테방은 마네를 흠앙하기 위한 일을 계획하고 일이 잘 성사될 수 있도록 만만의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 고무되어 갔다. 아틀리에 한쪽에 이젤과 캔버스를 설치하고 화폭에 너무도 황홀할 뿐인 무용수들을 그려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용수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무대에 설 때 입는 복장으로 갈아입고 그들을 위해 춤을 추는 너무나도 즐거운 광경만이 펼쳐질 참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재빨리 실행에 옮겨졌다. 그들은 일이 벌어지는 동안 카페에는 모습을 나타내질 않고 오히려 친구들을 아틀리에로 불러들였다. 아틀리에에서 아름다운 스페인 여자 무용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와 어울려 함께 춤을 추었다. 그녀들 가운데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도 섞여있었다! 마시고 술잔을 들고 축배를 하고. 마네는 즐거운 향연을 베풀고 무미건조한 시간을 보내던 마네는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때부 거리 18번지는 오페라 별관으로 변모했다. 그러다가 점점 수상쩍은 주점으로 바뀌어갔다. 오후에는 춤추는 무용수들을 화폭에 담고 모두들 모여 식전주 아페리티프를 마시는 시간에 그림쟁이들과 예술 애호가들은 물론, 잘 생긴 청년들과 특히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스테방 아틀리에를 꽉 채웠다. 얌전하고 새침한 모습과는 동떨어진 극단 무용수들은 황제의 궁정에서보다 훨씬 더 즐겁게 노닐 수 있었다.
몇 주간을 보는 이마다 익살맞다고 한 스페인 무용수들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완성한 뒤에 마네는 기요 가의 화실로 모두 8점의 그림을 가져왔다. 작품들 가운데에는 투우사가 소를 흥분시키기 위하여 휘두르는 붉은 천인 「물레타」를 다룬 작품을 비롯하여, 2점의 초상화 「마리아노」와 「롤라」가 있었다. 보들레르는 마네의 「롤라의 초상화」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시를 짓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분위기에 한껏 고조되어 주변의 모든 이에게 스페인적 열정과 광기를 선전하고 다니면서 (심지어는) 마네야말로 미래를 이끌어갈 천재적인 화가라고까지 극찬하고 나섰다. 이는 보들레르가 스스로 금기시해 왔던 누구를 찬양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펼친 최초의 사례가 되었으며, 그와 같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가 적어도 마네를 상탄한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회화에 대한 시인의 취향이 들라크루아에서 시작되어 콩스탕탱 기에서 완성되는 그 중심에 자신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네는 발견하였다! 콩스탕탱 기라니! 그는 확실히 매력적인 인물에 틀림없지만 화가라기보다는 언론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