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39화
5장 11
(1860-1862)
두 사람 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환멸과 권태만을 느낄 뿐인 보들레르는 마네의 더 없는 동료이자 친구였다. 더군다나 마네의 눈에 비친 보들레르는 살아있는 가장 대단한 시인이었다. 더하여 마네는 앞으로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가장 탁월한 화가가 될 참이었고 그걸 의심할 이유 또한 없었다. 영광의 순간은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두 사람을 위한!
어느 겨울날 오후 보들레르는 자신이 함께 동거하고 있는 잔느를 데리고 마네의 아틀리에로 날아오르듯 달려갈 마음으로 자신의 동거녀에게 함께 동반해 줄 것을 힘겹게 설득하고 있었다. 시인은 겨우 발걸음을 내디딜 정도로 걸을 수밖에 없었던 동거녀를 어렵사리 소파에서 일으켜 세우고는 마네의 아틀리에에 함께 갈 것을 채근 대기 시작했다.
보들레르는 잔느를 굳이 마네에게 소개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보들레르가 그녀를 가리켜 “나의 고통, 나의 환희, 내 질펀한 동반자 이교도인 여인”라고 명명한 것으로 충분했다. 자신의 아틀리에에 들어서는 그런 그녀를 쳐다보면서 마네는 동료이자 친구인 시인의 시구를 떠올렸다.
리오에서 흑인과 백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 여성의 대단히 능숙하면서도 쉽게 쾌락에 빠져들게 만드는 성적인 유혹으로 말미암아 젊은 사내로서 심적인 동요와 흥분상태를 겪은 관계로 어느 정도 세상사에 통달하게 된 연유도 작용했다.
마네는 그런 그녀를 화폭에 담고자 달려들었다. 자신의 친구인 시인도 열망하는 바였다. 이전에 자신의 정부의 초상을 그릴 때도 그녀의 모습을 타락한 여인으로는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마네가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모델은 내내 포즈를 취했다.
마네는 매일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깨끗한 캔버스를 새로이 준비하여 다시 그림을 그릴 만큼 심혈을 기울여 작업에 매달렸다. 또한 모델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안 인내심을 갖고 계속 포즈를 취해달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보들레르는 잔느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안 내내 마네가 그리고 있는 초상화를 물끄러미 바라다만 볼 뿐 말 한마디 없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천벌받은 영혼처럼 저 멀리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림을 그리는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보들레르는 마네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는 동떨어지게 그리고 있는 것조차 마음에 언짢아하지 않았다. 그는 마네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없는 존재나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화폭에 그려진 그녀의 모습은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모습이었다.
보들레르는 마네가 사실과 다른 잔느의 모습을 그리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림은 보들레르가 아닌 마네가 보관하게 되었다. 보들레르는 자신이 잔느를 아틀리에로 데리고 온 것은 쿠르베가 똑같은 방식으로 그린 그림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그녀를 그려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잔느가 다시 힘들게 겨우 포즈를 취한 순간, 누군가가 네르발이 비에유 랑테흔느 거리에서 목매달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헐레벌떡 찾아왔다. 그 탓에 잔느 역시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은 모델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