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40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노베르 괴뇌뜨(Norbert Goeneutte), 눈 내린 클리쉬 대로.



5장 12
(1860-1862)



마네는 여전히 미술전람회에 출품할 (한바탕 전쟁을 벌일) 작품을 어떤 주제로 그릴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누군가가 그런 그에게 누드화를 한 번 그려보라고 권하였다. 아! 관전 심사위원들이 누드화를 바란다고? 그는 빅토린느 뫼랑에게로 눈길을 돌려 그녀를 슬쩍 훔쳐보았다. 그런 뒤 며칠이 지나 그녀를 루브르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조르조네의 「전원의 합주」라는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젊은 매춘부가 예술적 취향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넌 이 그림 속의 여인과 같은 자세를 취해야만 해.” 그는 그녀가 취해야 할 포즈를 정확하게 일러주었다. “조르조네는 어딘지 모르게 화면 구성에서 약간 빗나간 묘사를 한 것 같다.”


전시실 안에 걸려있는 작품들을 이리저리 살피던 마네는 라파엘로의 작품 「파리스의 심판」을 본떠 제작한 라이몬디의 동판화에 눈길이 갔다. 마네는 앞으로 제작할 대형 누드화를 위해 이 두 작품을 적절히 혼합할 것을 구상했다. 누가 앞으로 마네가 제작할 그림이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과 조르조네의 「전원의 합주」를 그처럼 절묘하게 합쳐놓은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림 안에다가 전원에 대한 내 기억을 부분적이나마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자세들을 다 담아놓았다!”


마네는 숲속의 잔디밭에 소풍 나온 인물들을 그리고자 구상했다.


“저기 좀 봐. 그들이 벌거벗은 몸만 하고 있다면.”


마네는 자신이 그릴 그림에서 동시대의 인물들인 남자들에게는 옷을 입히고자 구상했다. 반면 사람들이 벌거벗은 몸을 한 인물을 원하는 이상 여자들만큼은 누드로 그릴 것도 구상했다. 빅토린느 뫼랑은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젊은 여인은 저 멀리 배경 속에 자리할 것이며, 반쯤 벗은 옷차림으로 막 물에서 나오는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이다.


“목욕을 한다고?”


“안 될 게 뭐가 있어. 욕조가 없기는 하지만, 숲속의 빈터 잔디밭이야말로 진짜 목욕탕 같은 곳 아닌가? 맑은 공기를 쐬며 일광욕을 즐기는 야외야말로. 나는 그처럼 완전히 맑고 깨끗한 자연을 그리고 말 거야…….”


머릿속에 걸작을 어떻게 그릴 지가 점점 구체화되어갔다.


스페인을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들을 정리하는 가운데 마네는 「남녀 짝을 지은 두 쌍」이란 그림을 집중적으로 다시 훑어봤다. 이 그림은 그가 전원으로 펼쳐진 목초지에서 벌거벗은 채, 서로 나뒹굴고 있는 남녀를 조롱과 도발을 부추기려는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이 또한 벌거벗은 몸으로 등장하는 그림 속의 주인공 빅토린느에 의해 환기되는 광란 상태를 표출한 것이기도 했다.


마네는 그녀가 그를 부추기는 장면이 그려진 화폭에 눈길을 던졌다. 「투우사 마조 복장을 한 젊은 사내」로 변신한 그녀는 스페인을 소재로 한 작품임을 완벽하게 보증해 주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네의 동생인 귀스타브는 스페인 남부의 세비야 사람을 환기하는 복장을 한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옆에 자리한 여자는 마네가 빅토린느 뫼랑을 새로운 이미지로 묘사하고자 의도한 바대로 완벽하게 변신한 모습이다.


Le Bain ou Le Déjeuner sur l'herb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목욕, 또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Le Bain ou Le Déjeuner sur l'herbe)」 습작, 1863.


피곤한 줄도 모르고 마네는 그림에만 매달렸다. 보들레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스스로 예찬했다. 빅토린느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마네와 사랑을 나눴다. 마네의 모친은 저녁과 밤마다 마네에게 식사를 준비하고 수잔은 마네를 향한 애정을 표시하면서 남편의 감정을 누그러뜨려주었다.


비는 시간에 마네는 자신의 작품을 더욱 깊이 궁구하고 우정 어린 삶을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젊음을 꿈꿔서 무엇하랴? 그는 삶의 행복에 젖어 어쩔 줄 모르고 그가 그린 그림 또한 삶의 행복이 회복되었음을 입증해 주듯 완벽해져만 갔다. 그처럼 내면에서 샘솟는 빛이 그의 삶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1862년 9월 25일 아버님이라 부르는 부친이 단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않은 채,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오직 에두아르만이 상심에 젖어들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어찌 말할 수 있으랴! 다음 관전에서는 반드시 상을 받겠노라고 확신하는 가운데 오로지 아버지를 놀라게 해 주려는 목표를 내걸고 미술전람회에 출품할 작품 제작에 매진해 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드디어 아버지를 놀라게 만들 걸작을!


아버지의 죽음은 마네로 하여금 모든 걸 허망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아버지를 놀라게 할 일이 사라진 탓이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자신에게 의도한 빛나는 대성공에 대한 모든 바람을 거역하고, 말조차 안 들으며, 철없는 짓만 하던 과거 어린 시절마저 돌이킬 수 없게 된 탓도 있었다.


그는 이제 결코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조형예술 분야의 영광의 메달로 과거 아버지와 학교 성적을 놓고 다투던 과거의 기억들을 상쇄하는 일조차 없을 터였다.


실어증에다가 중풍까지 겹친 아버지는 어차피 관전에서의 입상을 축하해 줄 수 없는 상태이긴 했다! 어린 시절 공포의 대상일 뿐이던 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보지도 못한 채, 아니 그 존재조차 알지도 못한 채 운명하고 말았다.


모친은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직전 아들인 자신을 이해했노라는 말만 남긴 채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장남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세상으로 떠나고 만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마네 모친의 인물화(Portrait de madame Manet mère)」, 1862.


아버지는 세 명의 자식에게 밥벌이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만큼 넉넉히 유산을 남겨주고 떠났다. 마네는 뻔뻔스럽게도 파렴치한 방법을 동원해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런 뒤에 말 그대로 아버지의 유산을 다 탕진해버리고 말았다.


마네는 낭비벽이 심했을 뿐만 아니라, 사치와 방탕은 늘 돈에 쪼들리게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있는 것을 다 베풀면서 허세 부리는 걸 좋아했다. 그것도 급한 성격에! 4년 만에 금화로 8만 프랑을 쓸 정도였다! 옷차림이 우아했던 것도 그의 심중에 있는 사치스러움을 드러낸 것에 불과했다. 그가 사치와 낭비로 허비한 돈을 따져본다는 것 자체가 객쩍은 일에 속했다.


지출을 줄여 절약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던 어머님이라 부르는 마네의 모친은 자신의 사촌인 법조인이었던 쥘르 드주이에게 모든 재산에 대한 관리를 위임했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막 일을 시작한 젊은 변호사가 쥘르 드주이를 보좌하고 있었다.


쥘르 드주이는 자주 마네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 자신을 보좌하고 있는 젊은 변호사를 데리고 나타났다. 같은 변호사 협회 소속 변호사였던 레옹 감베타란 이름으로 불린 이 젊은 친구를 변호사이자 막내였던 귀스타브는 썩 마음에 내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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