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42화
[대문 사진] 파리 튈르리 공원
5장 14
(1860-1862)
빅토린느를 그리기 이전에는 마네는 기존의 대가들의 작품들을 모사한 것을 제외하면 주로 인물화만을 그렸다. 결혼을 전제로 한 「낚시」라는 작품과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 작품들 역시 예외에 속한다. 「늙은 연주자」나 완성 중인 또 다른 작품 「튈르리 정원에서의 음악회」가 이에 해당한다.
빅토린느를 계속 화폭에 담으면서 마네는 좀 더 진일보한 작품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화폭에 전대의 작가들의 작품을 베낀 듯한 묘사들을 살짝 가미한 것에 대해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마네는 전대의 대가들에게 진 빚을 어떻게든 갚고자 하는 생각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설사 그의 작품에서 혁신적인 기발함(모더니티)이 빛나고 있을지언정 그와 같은 마네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요인으로 자리할 수는 없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말할 필요도 없이 피아니스트를 사랑한 건 우연이 아니다. 마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 또 하나의 요소가 음악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늙은 연주가」와 함께 합창하는 장면을 담은 또 하나의 작품 「튈르리 정원에서의 음악회」는 이처럼 나폴레옹 3세에 의한 도시 개발로 느닷없이 살던 집을 빼앗기고 정처 없이 떠도는 이들을 동정하는 마음에서 그린 그림이다. 그것도 황제의 정원이라 할 수 있는 튈르리 공원에서의 음악회를 다룬,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한층 진일보 한 마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에 해당한다.
그림들은 누구나 알만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풍경 역시 누구나가 알 수 있는 장소다. 왜냐면 활량으로 정평이 난 마네는 이러저러한 곳들을 누비고 다닌 탓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작품에 다루어진 인물들은 무명씨이거나 적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아니다. 사람들은 마네와 으젠 형제뿐만 아니라 친구인 팡탱과 예전 아틀리에 동료였던 발르루아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마네 가까이에 문필가로 절정을 구가하고 있는 테오필 고티에가 있으며, 마네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에게로 달려올 언론사 기자인 샹흘뢰리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들은 모두 마네를 도울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 입장에 있던 또 다른 인물로는 피가로 신문사에 속한 기자 신분인 오렐리앙 숄이 있다. 비평가이자 시인, 화가 또한 거의 쌍둥이 형제처럼 닮아 너무나도 둘 사이가 가까웠던 자샤리 아스트뤼크도 있다. 뗄로흐 남작은 모두가 별것 아니라고 평가하는 스페인 회화에 관한 전문가다.
막 말을 트기 시작한 자크 오펜바흐는 1858년에 공연한 「오르페」가 스캔들을 일으킨 작곡가다. 그와 마주 앉아있는 그녀의 아내는 죽을 때까지 남편 곁을 지킬 것이다. 남편 가까이에 있는 르조슨느 부인은 바지유의 숙모다. 그리고 옆모습을 그린 인물은 둘도 없는 친구 보들레르다.
사교계 모임의 배경은 황제가 궁정에서 여흥을 즐길만한 장소로 조성한 황제의 정원이다. 그곳에서 사치스럽고도 호화로운 삶이 전개되고 있으며, 공원에서는 일주일에 두 차례 콘서트가 열렸다. 그곳에는 또한 악기를 들고 연주가들이 연주할 수 있는 정자 형태의 키오스크들이 이곳저곳에 설치되어 있어 멋쟁이들 또한 그곳에서 으스대며 음악회에 참석하곤 한다.
마네는 화창한 봄날의 오후 이른 시각부터 화구를 갖춰놓고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한편으로 「목욕」이란 작품을 그리고 있는 중이어서 이때 그린 그림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참담한 결과를 빚고 말았다.
이때 마네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았다면, 보들레르는 그를 지지하고 나섰을까? 추측하건대 마네의 그림을 가볍게 스치듯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네가 그린 그림에서 자신의 추한 모습만을 발견한 상냥하면서도 아리따운 브뤼네 부인이 소리 지르며 난리 피운 것처럼 보들레르 역시 자기 본위적인 판단으로 마네의 그림을 인물화라고까지는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마네가 그린 브뤼네의 초상화는 유화라기보다는 거의 캐리커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들라크루아가 마네를 가리켜 고대의 작품들로부터 착상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하자 마네를 단연 최고의 화가라 생각한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가 말한 진의를 이해하려 하지는 않고 그에 대해 강력히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만 봐도 그렇다.
기존의 그림들을 베낀 것이 확실하다면, 그건 표절한 거나 다를 바 없다고 보들레르는 생각했다. 마네는 시를 짓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네가 보들레르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해명하고자 한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과거는 분명 새롭게 활용될 수 있다고 마네는 말했다. 반면 과거를 잊거나 도외시하는 과오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것에 보들레르는 오직 경멸에 찬 어조로 화답했다.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과거란 마치 불행의 냄새처럼 연미복 꼬투리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것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마흐티네 같았으면 뭐라 했을까? 마네의 그림을 정기적으로 전시한 거의 유일한 ‘장사꾼’이나 다를 바 없던 그로서는 마네가 내린 판단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까? 마흐티네는 마네의 작품 「튈르리 정원에서의 음악회」를 그렇듯 너무나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탓에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유리 진열장 안에 넣어 전시했다.
끔찍한 일은 작품이 전시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느닷없이 갤러리에 난입한 침입자가 진열장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강제로 탈취한 뒤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을 그저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어처구니없는 강도 짓 같은 폭력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마흐티네는 이러한 짓이 단연 옆 사람의 잠을 방해하고자 하는 잠버릇 나쁜 사람의 소행이라 생각되었을 뿐, 다른 이유는 전혀 생각나질 않았다. 미친놈들은 도처에 있기 마련이다.
마네는 자신의 「음악회」 그림이 무언가를 도발시킬 만한 선동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동시대적인 진부하고 속된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발상이 빚은 당연한 결과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3일이 지난 3월이 되어서야 겨우 도둑맞은 작품을 되찾아 전시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황당한 사건에 마네는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진 탓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며칠이 지난 뒤 유리 진열장에 홀로 전시되던 「음악회」는 손이 닿을 수 없는 아주 높고 먼 자리인 전시장 천장 바로 밑에 걸리게 되었다. 손쉽게 탈취할 수 없도록 마흐티네가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예술가가 지나치게 현실적인 태도를 견지한 탓에 그의 작품에 그처럼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마흐티네가 마네 자체가 스캔들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납득하기 시작했다. 마네가 스캔들이라고? 그는 오로지 명예를 얻어 존경을 받고 마침내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하여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를 꿈꿨을 따름이다. 벨라스케즈는 그 대표적인 화가였다.
마흐티네의 그 같은 불순한 의도에 대경실색하여 심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마네는 동료들의 따뜻한 시선으로 어느 정도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동료들만이 오직 마네의 작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어떡하면 그에 대해 진정으로 감탄의 말을 전할 수 있는지 또한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해마다 때만 되면 마네를 비롯하여 동료들 모두가 각자 세 작품씩 관전인 미술전람회에 출품했다. 모두가 미술전람회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동료들이 각각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마네는 하찮은 소문에도 동정을 살피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마흐티네 갤러리가 작품을 엄선한 끝에 작품을 일반 대중 앞에 전시한 것이지만, 그에 대한 대중의 반동적인 반응에 상당히 놀란 경험 탓으로 마네는 모든 이들이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미술전람회가 그들에게 통보할 결과만을 학수고대하거나 심사 결과를 적잖이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네가 그린 「음악회」가 아틀리에에 돌아왔을 때에도 마네는 그림을 되찾았다는 기쁨에 바라보고 또 바라봤을 따름이다. 「음악회」가 온갖 소란 법석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자신의 그림이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그림에 대한 보들레르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보들레르는 이 그림 또한 화가가 늘 그리던 방식에 입각해서 완성한 또 하나의 작품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또한 마네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리 현대적이지도 않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콩스탕탱 기가 전하는 현대적이지 않다는 시인의 말에 격분한 마네는 보들레르야말로 무엇인가에 심취되어 있으며, 매력이 넘치며 관대함을 갖춘 것만큼은 틀림없으나 짐짓 태를 부리며 아양을 떠는 그야말로 동전 두 닢에 개혁과 혁신에 앞장설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음악회」는? 「음악회」가 최신 유행에 따른 멋을 추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선 멋쟁이들인 부게로나 메소니에, 꺄바넬이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고풍스럽지도 고전적이지도 않다고는 말할 순 없지 않을까?
“자네의 음악회가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였다고?”
쏟아진 비난은 마네로 하여금 동료들을 새롭게 떠오른 우상들로 여기고 있음을 아주 못마땅한 어조로 공격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마네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작품을 그린 것일까? 그것도 파리 풍으로? 마네는 그림에서 시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대신 순간적이며 덧없는 영원함을 담으려고 시도했다.
마네는 자신이 애타게 갈망하는 목표에 다가가지 못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직 스캔들만을 일으켰을 뿐이다. 그건 마네가 결코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그는 오직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적 진리가 색채와 빛에 있음을 꿈꿨을 따름이다. 또한 그는 「음악회」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한층 근접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보들레르는 안타깝게도 마네의 그와 같은 의도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시인은 더욱 병약해져 가고 있었으며 극심한 고통까지 겪고 있었다. 보들레르는 젊음을 되찾을 나이가 아니었다. 잔느하고는 여전히 관계를 단절한 상태였다. 시인의 어머니의 환심을 사려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모친은 그런 자식조차 받아들이는 걸 거부했다. 보들레르는 이제 누구에게 매달려야 할지, 어찌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젊은 마네는 그답게 더 자주 보들레르를 충분히 먹여 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가 않았다. 보들레르에게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맵고 쓰고 신랄한 독설로 가득 찬 요리를 먹일 필요가 있었다. 보들레르는 마네에게 자신이 처한 지옥의 고통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단 어딘가로 떠나야만 한다!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지옥의 구렁텅이든 하늘이든 저 알 수 없는 심연의 끝까지 헤엄쳐서 빠져드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보들레르는 그와 같은 말로 친구들을 끊임없이 겁박했다. 하지만 자신이 목표로 한 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만일 보들레르가 마네를 지지하고 옹호하고자 했다면, 그건 자신만의 방법에 따른 지극히 간헐적이면서 그리 심대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네와 함께 지옥 속으로 빠져들고자 기대한 것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