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1화
[대문 사진] 오노레 도미에
8장 3
(1865)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어리둥절한 채 세상에 대한 환멸에까지 이른 마네는 자신에게 벌어진 악몽 같은 일에 대한 아무런 이해나 생각조차 없이 자신에게만 되묻고 있었다. 상황은 위중했다. 수잔이나 모친이나 형제들조차도 마치 공모한 것처럼 마네로부터 등을 돌렸다.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받을 만큼 친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루스트, 드가, 위렐 신부, 아스트뤼크, 팡탱 등 모두가 마네가 혹시나 ‘짐승 같은’ 짓을 벌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작품에 대한 반응은 기존의 미술전람회에서 당했던 수모를 또다시 받게 된다는 일종의 경종과도 같았다. 그런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모욕을 또다시 당할 수만은 없었다. 그런 모욕을 견뎌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정치인들뿐이었다.
그를 비난하고 작품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는 거센 물살은 전혀 멈출 기세 없이 점점 부풀어 올라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모욕과 수모를 견디며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술전람회가 폐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랭피아」에 대한 반응은 증폭되어만 갔고, 마네 역시 이 때문에 여전히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네는 결국 보들레르에게 도움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온갖 비난의 화살이 내게 우박이 쏟아지듯 마구 퍼부어지고 있소이다. 이처럼 흥을 깨뜨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소이다. (···) 나야말로 당신의 건전한 판단에 따르기로 했소이다. 왜냐면 여기저기 모두가 비난하는 소리만 들리는 까닭에 신경마저 날카로워져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처지라 더욱 그렇소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실수한 것만큼은 틀림없소이다.”
작품에 대한 참담한 반응이 마네의 온 신경에까지 미친 모양이다. 벨기에로 망명한 시인은 화가인 친구가 겪고 있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를 짐작했다. 하지만 마네가 그린 비너스가 야기한 소동에 대해 보들레르는 어떠한 유감스러운 태도도 취할 수 없었던 까닭이 내면에서 스스로의 존재감마저 붕괴해 가는 상태에서 화가인 친구를 위하여 어찌할 방도가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증오와 분노로 인해 그대의 명예가 더욱 빛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소. 샤토브리앙이나 바그너도 똑같은 경우를 당했으니 이를 귀감으로 삼으면 될 것 같으오. (···) 이는 그대의 예술이 점점 더 노련해져 가고 있다는 걸 예증해 주는 그 첫 번째 징후라 해야 할 것이오.”
시인의 기막힌 수사법에 따른 축하의 말에도 불구하고 마네가 즉각적으로 시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나 자신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도 명확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로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대체 뭔지, 나는 어느 파벌에 소속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마저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외다. 더하여 나는 그 어느 곳에도 가담하지 않았을뿐더러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외다! 아무리 사회가 나를 배척하더라도, 회화예술 또한 나를 저버리고 문명사회 역시 나를 배척한다 할지라도 말이외다.”
시인의 눈에는 마네가 그린 그림으로 말미암아 일반 대중이 그를 예술가로 취급하지 않는 듯한 모양새로까지 비쳤다.
마네는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가 없었다.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비록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라도 완전한 정신적 고독에 휘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보들레르는 마네에게 약간 지나치게 반응한 것을 후회하면서 이제는 한숨 돌리고 주위의 친구들과 함께 다른 일에 시선을 돌려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위로하면서 지인들에게도 마네를 위로하고 도와줄 방법을 강구해 보라고 권유했다.
“어떻게 그와 같은 불공평한 처사에 기쁜 마음일 수 있겠소! 불공정한 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에 대한 개선도 한시바삐 이뤄질 것이외다!”
모욕 따위를 꾹 참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비난의 물살이 너무도 거센 탓에 마네는 쉽게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이지적으로 판단해 보면, 마네는 예술가들의 신경을 건드릴 뿐인 빈정거림이나 야유 또는 모욕 따위 등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달랐을까? 보들레르는 충격에 빠진 마네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댈 수도 있고 심지어는 경솔한 행동까지 벌일 수도 있음을 멀리에서 직감했다. 그것도 프랑스와는 달리 마네의 작품이 일으킨 소동의 충격이 그렇게까지 증폭되어 전해질 수 없는 벨기에에서 말이다.
보들레르가 쏟아낸 독설에 가득 찬 말들은 마네가 겪고 있는 고통을 덜어주라고 시인이 모든 걸 위임한 친구들의 표정을 한층 굳어지게 만드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마네는 심신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도저히 카페에 들를 수 없다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의 대로는 마네가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마네는 신중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모친과 수잔은 이런 때일수록 몸을 아끼고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고 마네에게 애원하듯 간청했다.
마네는 이제부터 무얼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을뿐더러 늘 하던 일들조차 생각나질 않았다. 침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탓에 늘 함께 하던 모든 이들에 대한 권태감마저 끼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지인들의 아틀리에에서 몇 발자국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자신의 모친과 아내가 있는 아파트만을 오갔다.
나날이 참담한 고통만이 계속되는 가운데 샹흘뢰리와 다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샹흘뢰리는 마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려는 마음에서 쓴 기사를 신문에 기고했다.
“마치 눈 구덩이에 빠진 사람처럼 마네는 들끓는 여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발견했다.”
어렸을 때부터 옅은 잠을 잘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선량한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신경 쇠약 증세에 마네가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다름 아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었고, 이러한 절망감은 그를 점점 황폐화시켜 갈 뿐이었다.
그 발병의 요체는 오로지 법학만을 공부하라고 강요하고 채근한 아버지에게 있었다. 그런 아버지 곁에서 마네는 자신에게 강제된 절박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는 일만이 살 길이라 생각한 듯, 오직 집 앞을 흐르는 세느 강만 멀거니 바라보곤 했던 것이다. 물 위로 떠가든, 물아래로 가라앉든 그건 염두에 둘 바가 아니었다.
마네는 자신이 강물에 떠내려 보낸 것에 대해 그 어느 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창녀든, 예수 그리스도든” 마음에 둘 바가 아니었다. 누구나가 마네가 그린 그림 속 인물을 바라봐야 한다고 그는 당연한 권리로서 요구했을 뿐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무얼 상실하기에 이르렀는가? 매음과 인간의 욕정과 성행위 뒤의 나른한 권태감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신의 죽음을 증거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을 뿐이다!
그렇다! 이 세상엔 모두가 존재하고 있고 당신은 매일 그걸 지켜보고 있다. 교회에서 또는 매춘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네가 그린 그림은 참으로 온순한 세상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그 진리는 회화로서 보여주기엔 적절치가 않다고?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발상인가?
이 사회는 남성에게 성적인 만족을 주기 위한 여자들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하는 일 또한 매일 벌어지고 있다. 마네는 그렇듯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것들을 다루었을 뿐이다. 매춘부든 그리스도든 고통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또한 그걸 그림으로 다루었다 해서 고통을 당해야 할 이유 또한 없다.
그림의 주제만으로는 마네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마네만의 고유한 기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네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처럼 마네의 화법은 전율할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색채가 투명할 정도로 너무 밝고 옅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색조들이 너무 심할 정도로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생경하기까지 하면서 너무 지나칠 정도이기까지 하다. 충분치 않은……. 반드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근거마저 없을 정도로…….”
마네의 기법은 스캔들을 일으킬만한 충분한 요인이었고, 도전적이었으며, 수치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그가 다룬 주제들만큼이나 최악의 상태를 택한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가 취한 범신론적 태도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여자의 얼굴 생김새나 꽃다발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미술전람회에 입상하고자 안달이 나 몸부림친 듯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다 마네와 같은 표현을 보여주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범신론적 표현은 예술에 대한 마네의 굳건한 믿음의 토로와도 같다.
혹자들은 마네가 미술전람회에서 주목을 받으려고 “권총을 발사” 하듯이 가증스러운 그림들을 출품했다고 마네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의 젊고 패기에 찬 동료들조차도 「올랭피아」에서 마네가 자신의 정부의 몸뚱어리나 어깨에 두른 숄뿐만 아니라 침대 시트에 이르기까지 온통 희뿌연 한 하얀 색조로 표현한 걸 보고 아연실색하기까지 했다.
작품의 구성은 완벽했다. 기법 상으로 얼굴을 붉힐 만한 요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 마네를 탁월한 화가나 불굴의 노력을 기울인 장색으로 볼 수 있겠는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공간 구성과 독특한 색조를 보여주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세간의 마네를 향한 빗발치는 욕설과 무차별적인 공격의 눈사태에 휩쓸리고 말았다.
마네는 바깥에 나가고 싶어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공공장소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디서든 충격적인 논쟁에 휘말려 상심하기 일쑤였다. 중압감은 점차 가중되어 분노의 감정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마네는 자신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술전람회 조직 위원회가 경찰력을 요청해야만 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말을 듣고는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마저 복받쳐 오열을 쏟아내기도 하고 분격한 마음에 너털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제는 「올랭피아」가 무력에 의한 보호를 받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난동을 부리는 위험천만한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명목으로 아카데미 조직 위원회는 미술전람회가 끝나는 날까지 줄무늬 옷을 입은 경호원들과 군 수비대까지 고용해야만 하는 고충을 겪어야 했다. 경호원들은 작품 양쪽을 지키고 서서 느닷없이 그림을 찢으려 덤벼드는 예술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문화 파괴주의자들과도 같은 무지한 이들의 공격을 제지하고 나섰다. 웃을 수조차 없는 해괴하고도 망측한 일들이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마네는 점점 초췌해져만 갔다.
미술전람회가 열린 뒤 8일 동안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마네의 전 작품을 전시하고 있던 꺄다흐 갤러리에서 단지 두 점 만을 제외하고는 여덟 점의 작품을 그에게 되돌려 보냈다. 자신의 주변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지독한 유황냄새처럼 코에 확 끼쳐왔다. 그의 이름만 거론하면 마치 무슨 불행한 일이라도 곧 벌어질 듯이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결국 마네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검열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뿐인 비난의 희생물이 되고 만 격이다.
이젠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조차 사라져 갔다. 더는 아틀리에에 가는 일조차 없었다. 오로지 집에만 머물면서 거나하게 한 잔 걸치고 싶을 때만 겨우 레옹을 동반하고 외출했을 뿐이다. 마네는 봄날의 파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수잔과 어울려 콘서트에 가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금방 잠에 빠져들어 졸기만 했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카페를 찾는 일도 점차로 줄어들어갔다.
동료들의 정황은 여전할까? 드가는 자신이 그린 「오흘레앙의 참극」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면, 마음 온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는 마네에게만큼은 작품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심사였다. 봄 내내 환각을 일으킨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나지막한 소리로 마네를 옹호하고 나선 드가를 어느 누군들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피사로, 드가, 모네, 그리고 누구보다도 팡탱이 마네를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늘 주저하고 망설이는 태도로 말미암아 어느 누군들 팡탱이 「올랭피아」와 그걸 그린 작가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그룹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는가?
수잔은 마네에게서 어떤 불길함이 감지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마네가 한가하게 빈둥대며 소일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네가 빈둥대다가 아주 가끔씩 기요 거리에 있는 아틀리에에 간 까닭은 전에 그린 그림들을 흔적 없이 없애버리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맘에 들지 않는 작품들을 유화용 나이프로 이리저리 찢어발기다가 그도 성에 안 차면 갈가리 찢어버린 후 태워 없애기까지 했다.
그는 과거에 그린 작품들에게까지 손을 댔다. 모친에게 선물한 그림이나 아내에게 준 그림들까지 손을 댄 탓에 이를 말리고자 형제들이 중간에 나서서 제지해야만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1] 드가는 친척들이 살고 있는 미국의 뉴올리언스에 발생한 참극을 중세 전쟁에 빗대어 이 그림을 완성하였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