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2화
8장 4
(1865)
마네는 스스로 자신을 부추길 수 있는 용기마저 없었던 탓으로 더 이상 어떤 도약도 있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은 것만이 아니라 동료들에게까지 참담한 악영향을 미친 것 같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술전람회에서는 어느 비평가가 부주의한 판단으로 귀엽고 예쁘게 생긴 어린 여자 선원 아이를 그린 그림을 마네의 그림인 줄 알고 마네의 그림에 감동을 받았다고 떠들어대는 소동까지 일어났다. 작가의 이름이 똑같은 탓이었다.
모든 이들의 입살에 마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는 실수였을까 아니면 그 화가의 이름을 마네로 잘못 표기한 것일까? 그 때문에 마네는 더욱 부아가 치밀어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마네에게는 오로지 비극적 드라마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마네는 참을 수가 없었던지 자신의 이름과 같은 지방에서 활동하는 작가에게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전시장에서 그림을 철거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그게 누구든 무슨 작품이든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 작품과 관련한 스캔들 덕을 보려고 마네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로 말미암아 마네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럽고 추잡한 순간이 한시바삐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마네로서도 그 이상 더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비평가는 작가에게 긍정적인 평가로 일관했다. 마네와 함께 두 명의 다른 작가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른 화가가운데 한 사람은 휘슬러였는데, 휘슬러는 ‘서로 흉금을 터놓을 정도로 가까운 연인들’처럼 마네와 늘 같은 입장을 취해오던 사이였다.
다른 한 사람은 팡탱이었다. 팡탱의 그림 역시 스캔들을 일으켰다. 더군다나 「올랭피아」와 나란히 걸려있던 탓으로 스캔들은 더욱 증폭되어서 비웃음까지 샀다. 이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마네의 작품과 함께 한데 싸잡아 비난을 퍼붓는 결과를 초래했다.
식탁 위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는 여인을 둘러싼 남자들이 탐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보시라! 그림 속의 남자들은 다름 아닌 아주 절친한 친구들이다. 예술이 그들을 서로 굳건히 단결하게 만들어주었다면, 스캔들은 그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 두 화가를 호의적으로 평가해 준 단 한 명뿐인 비평가조차도 결국 최악의 평을 남기고 말았다. 미술전람회에서 최고의 화가는 다름 아닌 여류화가라고 결론을 짓는 바람에 모두가 이 여류화가가 누군지를 확인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관전에 몇몇 여성화가들이 작품을 출품하는 일은 관례이다시피였으며, 사람들은 이들의 작품을 얕잡아보기가 일쑤였다. 아틀리에에서는 여성들을 아예 받아주지 않았던 관계로 여성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남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직업에 속한 것인지조차 정확히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은 너무도 명백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하필이면 여류화가가 언급되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뽐낸 화가는 사실 젊은 여성이었으며, 1865년에 와서야 비로소 이 여성에게는 자신의 실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 비평가의 논조에 따르면, 관전에서 유일하게 탁월한 화가는 당연 이 여류화가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모리소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성씨 말고 이름 때문에 혼동을 일으켰다.
그녀의 두 자매 역시 이미 관전에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진짜 모리소가 누구인지 사람들은 헷갈려했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관전을 통과했고 마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 그룹의 눈에 띄었으며, 가족의 성씨를 작가의 이름으로 당당히 사용하는 영광을 누렸다.
모리소는 「올랭피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작품은 없다. 작품을 둘러싸고 일어난 잡음은 일반 대중의 착각일 뿐이다. 거칠기만 한 일반 대중은 입버릇처럼 너무도 쉽게 남의 결점을 비난하기를 즐겨할 따름이다. 그들은 마네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작가의 지적 수준을 이해하기엔 작품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이유로 작품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비평가가 최고의 화가라고 극찬한 여류화가가 마네의 작품에 대해 그처럼 평한 것이다! 마네는 단 한 차례도 그녀를 만난 적이 없었다. 루브르에 소장된 작품들을 복제하기 위하여 루브르를 드나들 때, 그녀와 처음 우정을 나눈 사람은 다름 아닌 누구든지 간에 소심한 태도로 일관했던 팡탱이었다.
루브르에서 마네는 처음으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그때 그녀를 가리켜 마네가 내린 판단이 정확했듯이, 또한 그녀의 그림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된 것처럼 그녀는 실제로 예술적 소양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교육받은 화가임이 틀림없었다.
또한 그녀의 마네에 대한 평은 자신의 입장에서 시험 삼아 이야기한 것이었겠지만, 어느 누구 한 사람 마네의 그림에 대해 그녀처럼 평한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평에 따르면, 마네야말로 관망자의 시선으로 「시종들」을 그린 벨라스케즈의 작품이 야기한 문제에 소금을, 그것도 아주 굵은소금을 뿌렸다는 것이다!
“작품을 접한 이들이 처음으로 겪게 되는 공포감은 매일 되풀이되면서 재생산된다. 이건 착각이 아니라 올랭피아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관람객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또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녀나 관람객이나 할 것 없이 마치 남의 성행위를 엿보면서 만족감에 빠지는 성적 도착자의 엿보는 이의 시선으로 치환된다. 그녀의 시선 앞에서 움쩍달싹 못하고 정지된 채로 있을 수밖에 없는. 그녀는 관람객이 화가의 등 뒤에 자신을 은폐시킬 수 없도록 고정된 시선으로 관람객을 지켜보고 있다. 올랭피아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자각하게 만든다. 엿보는 자로서 자신의 과오가 얼마나 중대한지를 모르는 채인 관람객을 도저히 가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듯이…….”
모리소는 미모도 뛰어났지만 마네의 작품에, 팡탱과 드가의 작품에 이끌려 그처럼 단호하게 작품 평을 내린 경우는 없었다. 그렇다. 드가와 마찬가지로.
마네는 모리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미술전람회가 폐막을 고하면서 고통과 번민에 휩싸인 마네는 그녀를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다. 따라서 그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떤 평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마네는 신문 잡지의 악의적인 허위 기사들에 대해서조차 사실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그저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작품에 대한 기사 논평을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의 지리멸렬한 궤주는 허허벌판에서 홀로 도망치는 격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불안에 휩싸인 수잔은 생 라자르 기차역에서 열차를 타고 불로뉴 바닷가로 떠나면서 기차 안에서 마네가 절대로 신문 잡지를 접해서는 안 된다고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인 귀스타브와 으젠에게 신신당부했다. 수잔은 심지어 어떤 남자라도 마네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서 마네에게 다가가 욕설을 퍼붓고 모욕을 줄까 봐 겁이 난 탓에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레옹과 마네 곁을 번갈아 지키며 주위를 살폈다.
불로뉴 바닷가가 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마네 주위에서 일어난 소동을 피해 달아나기에는 그리 썩 좋은 곳만은 아니었다. 미술전람회가 폐막된 지가 벌써 몇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문 잡지들은 연일 마네의 작품에 대한 악의에 찬 논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심지어는 마네의 신상을 들먹이면서까지 마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독설로 가득 찬 악평을 연일 쏟아내듯 입에 거품을 문 채 그를 물고 늘어졌다. 마네가 그토록 열망하던 명성은 하루아침에 악몽으로 끝나고 만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