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그리고 스페인으로의 여행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3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벨라스케즈의 첫 작품 「달걀을 요리하는 노파」(1618년).



8장 5
(1865)



정신적으로 너무 충격을 받은 탓에 마네는 도저히 손에 붓을 잡을 기력조차 없었다. 마네는 불로뉴 바닷가에서 여전히 무언가에 갇혀있다는 생각에 갑갑하고 지루한 느낌만 들었다. 해변의 숙소에 머무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골몰하던 마네는 자신이 일으킨 소동이 어느 정도 잠잠해질 때까지만이라도 스페인을 여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스페인은 파리와는 달리 그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온건하게 평가하는 분위기여서 몇 년간은 편안히 안주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와줄 친구들도 꽤 많았다.


비평가는 마네가 단지 “스칸디나비아의 땅거미가 질 때의 어스름한 황혼과도 같은 저 낯선 세상의 태양이 없는 풍경만을 그린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마네는 그처럼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스페인 예술의 생체 내에서 모든 것을 눈부시게 현혹시키면서 동시에 모두를 으스러뜨리는 파괴력을 지닌 저 독특한 스페인의 검은빛을 발견할 참이었다. 벨라스케즈가 작품에서 구현한 저 너무도 유명한 빛을 말이다.


마네가 발견한 빛은 스페인 예술에 대해 오랫동안 고심해 온 나름의 문제를 밝히는 일이기도 했다. 왜냐면 사람들이 그를 끊임없이 고야와 비교하고, 더 심한 경우에는 그레코와 비교하는 걸 서슴지 않을 때마다 그들의 논리를 뒤엎어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스페인으로 떠나려 하자 함께 여행을 떠나고자 했던 스페인에 정통한 아스트뤼크나 늘 여행하는 걸 꿈꾸던 샹흘뢰리와 스테방은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탓인지 그들과 함께 하려 했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그들마저 내게 진절머리를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낙담한 사내가 내린 결론은 “한시라도 빨리 스페인으로 떠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네는 서둘러 마드리드행 기차에 올라탔다. 이제야말로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가방 안에는 테오필 고티에가 펴낸 스페인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관한 해박한 예술비평 안내서와 함께 아스트뤼크가 마네에게 반드시 들를 필요가 있다고 추천한 장소들을 빼곡히 표기한 작은 책자가 들어있었다.


파리를 출발한 기차는 보르도를 거쳐 바욘느를 지나 부르고스와 바야돌리드를 거쳐 마침내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마네는 <파리 그랜드 호텔>에 짐을 풀었다. 투우 경기가 보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그에 대한 욕망을 억눌러 참았다. 드라마틱한 광경은 잠시 미뤄두고 저 무시무시한 빛을 찾아 나서야 하리라 생각했다. 그런 탓에 마네는 온 시간을 다 바쳐 벨라스케즈 작품들을 감상하고자 작심하기까지 했다.


투숙하고 있는 호텔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현대적인 건물이긴 했지만, 첫 식사를 시작으로 음식이 영 입맛을 겉돌기만 했다. 마네는 그 어떤 음식물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고픔은 점점 더해만 갔다. 색다른 음식을 시도하였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고약하게만 여겨졌다.


음식 향도 너무 강했고 너무 기름졌으며, 야채에 고춧가루를 섞었는지 맵기만 했고 생선과 고기에서는 상한 구린내마저 풍겼다. 모든 음식이 다 최악의 상태였다. 더군다나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이가 자꾸만 성가시게 굴어대는 바람에 신경이 쓰였다. 마네가 매번 시도하고자 음식을 시켰다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번번이 되돌려 보내는 걸 지켜보던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내는 마네가 물리친 요리들을 자기 테이블로 가져다가 게걸스럽게 먹어대곤 했다.


마네는 옆 테이블의 사내에게 조롱당했다고 느꼈는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사내를 혼내주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풋내기에 불과해 보이는 젊은 남자는 「올랭피아」 화가를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어이! 이봐요! 당신 말이야. 자꾸만 날 놀리는 것 같은데, 당신은 이 끔찍한 음식이 그렇게 맛있소? 당신 나 알아? 내가 여기에 무엇 때문에 와있는 줄 아느냐고? 당신 날 우롱하는 거야 뭐야?”


“아닙니다. 전 포르투갈에서 왔습니다. 그곳에서 아주 형편없는 식사 때문에 배고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테오도르 뒤레는 정중하게 대꾸했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그는 자신은 아주 맛이 뛰어나고 품질이 좋은 술들을 외국에 판매하는 판매상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는 자신의 집안에서 생산하는 술들 이외에도 코냑 같은 술들을 외국에 되파는 일을 배우려고 막 수습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던 참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생트 태생의 시골 청년은 이제 나이가 28살이었다. 마른 체구에 키가 컸으며 활달한 성격을 지닌 모습이었다.


마네는 자신의 편집광적인 기질 때문에 발끈한 것이라고 젊은 사내에게 사과를 구했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악평을 쏟아내고 있는 노도와 같은 여론 때문에 신경 쇠약에 걸려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는 설명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뒤레는 마네에 대한 소문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식사 자리가 두 사람을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함께 톨레도를 여행했다. 마네는 그러나 그곳에서 오로지 머릿속에 그리던 벨라스케즈의 작품만을 찾아다녔다.


고야와 마찬가지로 화가들 가운데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벨라스케즈의 작품들에 열중한 나머지 이를 찾아보고자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톨레도에서 벨라스케즈를 노골적으로 모사한 고야의 작품을 발견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마네는 스페인에서의 체류를 충분하리만큼 연장했다. 그리고 매일 뒤레와 함께 즐겁고도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늘 배가 고팠다. 바욘느를 떠난 지도 벌써 8일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과일 이외에는 거의 먹은 게 없는 상태였다. 마네는 파리로 돌아가면 젊은 뒤레를 파리로 초대할 거라고 약속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마네는 이제 더 이상 머무를 시간도 없거니와 기력도 다 고갈된 탓에 더는 무엇을 보고자 하는 욕망조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굶주림이 그를 괴롭혀댔다. 본의 아니게 단식한 지도 벌써 일주일째 되어가고 있었다! 영양을 충분히 보충 받기 위해서는 서둘러 프랑스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국경에서 세관 한 사람이 마네를 알아보고는 좌중을 향하여 소리쳤다. “이리 좀 와 보시오! 여기 「올랭피아」를 그린 화가가 와있소이다!” 역시 드가가 옳았다. 가리발디도 마네와 비교하면 유명세가 덜한 쪽에 속했다!


9월 중순, 사르트에 위치한 삼촌 푸르니에 소유의 바세 성에서 마네는 가족과 재회했다. 마네는 가족을 만나자마자 바로 자리에 몸져누웠다. ‘단식 투쟁’은 마네를 허약할 대로 허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 퍼진 콜레라 전염병에 걸린 탓으로 발열 증세까지 보였다. 병세가 심각했다.


공포심으로 말미암아 몸은 수척해져만 갔다. 일주일간 고열에 시달리면서 생과 사를 오갔다. 질긴 목숨, 또한 의심의 여지없는 분노심이 결국 마네를 되살려놓았다. 그는 되돌아왔다.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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