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친구 에밀 졸라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마네, 「에밀 졸라」, 1868.



8장 6
(1865)



마네가 파리에 없는 동안 런던의 왕실 아카데미는 전시하기로 약속한 작품들을 되돌려 보냈다.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고통이 마네의 온 마음을 저몄다. 외국에서조차 그를 거부한 탓이다. 마음속에서 분노와 수치심이 계속 고개를 쳐들었다. 가까이에 있는 아내나 모친이나 할 것 없이 주변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나서서 마네를 위로하고 건강 상태를 살폈다.


마네는 심적 불안을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더욱 심약해져 갔다. 그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충격에 따른 견딜 수 없는 불안감만 샘솟았다. 정신적 충격마저도 한 방이면 치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심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괴로워하기만 했다.


하루 온종일을 두 다리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지내다가 결국 아틀리에로 가서는 세상을 향해 가래침을 뱉을 새로운 목표에 도전했다. 그리고 마네는 다시 카페로 향했다. 그러고는 얼마간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이 앉던 자리에 전혀 낯모를 인간이 앉아있는 걸 보고는 충격에 빠졌다.


모든 게 자신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 작자의 매력에 빠지든지 아니면 그를 이용하든지 둘 중 하나를 방법적으로 터득해야만 할 정도였다. 그 작자는 화가는 아니었다. 기자이면서 작가나 진보주의자 행세를 하거나 혹은 한물간 것들에 대한 옹호자 행세를 하는 작자였다.


우선 보기에 마네의 의견에 편을 드는 것보다는 친구가 될 경우에 훨씬 가까웠다. 그가 자신을 소개하자마자 마네는 그가 맘에 들었다. 에밀 졸라, 소설가이자 기자라!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꽤나 잘난 체하고 말할 때마다 묻어나는 남부 지방의 강한 억양이 섞인 말투를 감추려고 굉장히 애쓰는가 하면 머리카락에서 발끝까지 시골티가 줄줄 흐르는 인간이라고 평했다! 키가 작고 상체에 비해 두 다리가 짧았을 뿐만 아니라 올리브처럼 검고 단단한 인상에다가 상당히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벌써 마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마네를 본 순간 즉시 마네를 향한 저주가 섞인 온갖 비난들에 대해 졸라는 비판하고 나섰다. 졸라는 마네를 옹호하고 지지하기로 작정했다는 듯이 굴었다. 스캔들을 오히려 거꾸로 이용하여 명성을 떨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부당하고 불공정한 처사는 단칼에 처 없애버려야 명성에 손상을 입지 않는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졸라는 회화에 대해서 상당한 수준이라 여겨질 정도로 아는 게 많았다. 또한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다. 회화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난 건 둘도 없는 친구가 화가였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마네에게 매번 으르렁거리는 거칠고 전혀 세련된 구석이라고는 하나 없는 그 유명한 환쟁이였다. 그는 졸라처럼 액상프로방스에서 파리로 상경한 경우였으며, 폴 세잔이라 불렸고 마네가 내민 악수조차 거부한 화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에 이끌렸는지 그 주된 장면을 모사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에서까지 올랭피아를 다뤘다는 사실은 마네를 비웃기 위한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보면 스캔들 덕에 유명해진 마네에 대해 상당히 부러움을 느낀다는 방증일 수도 있었다.


Paul Cezanne, Moderne Olympia, 1873.jpg 폴 세잔(Paul Cézanne)이 마네의 올랭피아를 본떠 그린 「현대의 올랭피아(Une moderne Olympia)」, 1873-1874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엑스(액상프로방스)에서의 삶을 완전히 청산한 졸라는 마네 집과 게르부아 카페 근처에 정주했다. 졸라의 집은 바티뇰 구역에 위치한 트뤼포 거리에 있었다. 집에는 ‘과부 졸라’라 불리는 그의 모친도 함께 살았다. 또한 누구나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졸라와 내연관계였던 여인도 지나칠 정도로 자주 눈에 띄었다.


가브리엘이라 불린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있는 이 여자는 이미 여러 화가들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던 여인이었으며, 그들의 작품 모델이기까지 했다. 왕년에 린네르 제조공장에서 일했던 여인은 이제는 연인 사이가 된 졸라와 함께 카페에까지 따라나섰다.


“그녀가 질투심이 많지는 않나요?” 수잔이 물었다.


“그런 느낌이었소. 그녀의 세계에서는 카페에 오는 여자들치고 샘 많은 여자들이 대부분이오.”


“어떤 세계요?”


“당신도 잘 알잖소. 그녀의 세계를. 그런 유의 여자들만의 세계 말이오.”


수잔은 몹시 화가 났다. 그녀는 이제까지 카페에 웃음을 파는 저질의 매춘부들이 드나든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카페에 ‘정상적인’ 여자들이 드나든다면 왜 저는 안 되는 건데요?”


“왜냐면, 정상적인 여자들은 매춘을 하지 않기 때문이오.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곤 말이오.” 에두아르는 정색을 하고 아내의 말을 받았다. 아내가 마담 마네가 된 이후로 귀족 작위는 없었지만, 마네는 항상 그녀를 마치 귀부인처럼 품격을 갖춰 대했다.


수잔은 자존심이 상해 몹시 화마저 치밀었다. 마네와 결혼한 이후로 일부러 남편에게 무엇을 강요하거나 한 일은 없었다. 사회 계층에 발을 내딛기가 수월치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마네는 그녀를 실질적으로 사회 계층에 진입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도 그녀는 카페에 드나드는 것이 금지되었다. 남편과 팔짱을 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이 자신에게 하던 방식대로 그에게 일격을 가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게 자유로웠고 자신을 족쇄로 채울 수 있는 건 그 어느 것도 있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예술가 본연의 기질과 누구보다도 강한 자주적인 의지가 그녀의 정맥에 흐르고 있었다.


네덜란드 여자로서 그녀는 그녀의 활동을 위해서도 자유로운 존재일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뇌리 속에 그처럼 자유란 단어는 항상 자리하고 있었으며, 자유를 갈망할 때마다 그녀는 온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그녀는 계층 간의 금기들을 아주 몰상식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마네가 졸라가 데리고 사는 여인에 대해 정확히 판단한 바로는 그녀가 졸라에게 늘 공손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간혹가다 그림쟁이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그녀와 여전히 은밀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Gabrielle.jpg 화가의 아틀리에에서의 가브리엘


가브리엘은 졸라에게 자신의 천성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졸라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란 이야기는 모두 다른 이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서민 계층의 사생아, 꽃가게 점원, 직물 제조 공장의 노동자, 세탁일을 하는 여자(직업을 가리키는 용어는 늘 경멸적 의미가 내재해 있기 마련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잃어버린 고아… 가난, 사랑의 결핍, 원치 않은 임신, 태어난 아이의 유기, 몇 번은 운 좋게 행운이 따라서 의과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을 사귄 덕분에 남자가 그녀의 생활비를 대주기도 하고, 또 어느 땐가는 저녁에 먹을 빵을 사기 위해 재봉일을 하고, 또 어느 때인가는 화가들의 모델을 서기도 하고… 그리고 저 수평선 너머 미래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배고픔, 질병, 병원은 당대의 멜로드라마 단골 주제였다.


미사여구 따위는 가당치 않다. 날개를 퍼덕이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향해 공격적으로 뛰어들고자 이름까지 가브리엘로 바꾸었다.


화가 그러나 금융가의 자식이었던 세잔은 그녀를 단지 모델로만 대했지만, 그녀는 아마도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세잔은 사람들이 적극 추천한 검은 머리띠에다가 밝은색 짧은 속치마를 입은 직업여성을 모델로 삼았다.


성 잘 내고 성미가 급할 뿐만 아니라 소심하기까지 했던 세잔은 부득이 엑스와 파리를 수없이 오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친구인 앙투안 기유메에게 그녀를 떠맡겼다. 놀기 좋아하던 그 역시 화가였지만 자신이 주인공 왕 노릇을 하는 축제 파티에 항상 그녀를 동반하고 다녔다.


Madame Zola par Le Lievre.png 으젠 르리에프브르(Eugène Leliepvre)가 화폭에 담은 가브리엘


바티뇰 지구 클리쉬 광장 주변에서 가브리엘은 목신으로 군림하다시피 했으며, 그녀가 사는 집은 일종의 매춘굴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대담하게 행동하면서 어떠한 일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곧잘 경솔한 태도마저 보인 탓에 왕년에 내의류 제조 공장에서 일하긴 했어도 자신을 세탁일이나 하는 여자 따위로 취급하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따귀를 올려 부칠만큼 억센 여자였다!


Auguste Renoir et son modele Gabrielle.jpg 오귀스트 르누아르 모델 시절의 가브리엘


졸라는 이 여자에게 홀딱 반했다. 그가 호의적으로 그녀를 대하자 그녀 역시 그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현저해졌다.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는 사이여서 졸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녀를 동거녀라고만 소개했다.


두 사람은 서로 같은 야망을 지니고 있었다. 궁색한 처지에서 벗어날 방법만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서민 계층에 속한 신분이었지만 우아했으며, 비웃음을 살만했지만 격식을 차릴 줄 알았고, 교양이 있어 보였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가 넘쳐났고,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성적으로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육감적인 몸매를 한 덕분에 이 대단한 여자는 역시 대단한 남자를 위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나 다를 바 없었다. 이 여자가 졸라로 하여금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도와준 것도 다 그런 데서 연유했다.


가브리엘과 졸라는 야망이 서로 같았던 것처럼 가난과 궁핍에 관한 생각을 서로 공유할 정도로 같은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비천한 여인과 아티스트, 이 두 사람은 호텔에 가구를 들여놓듯이 들여놓은 과부로 살고 있던 졸라의 모친인 마담 졸라와 함께 한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Madame Zola, Alexandrine Zola en bicyclette par Zola.png 졸라가 촬영한 갸브리엘, 졸라와 결혼한 이후론 알렉상드린느라 개명했다.


집은 작았지만 온기가 흘러넘쳤다. 더군다나 왕년에 내의류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여자는 음식 솜씨마저 뛰어나서 그녀의 애인으로 하여금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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