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랭피아 이후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5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1865년 미술전람회에 전시된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세간의 반응을 풍자한 신문 삽화.



8장 7
(1865)



행복했던 덕분에 수잔은 더욱 다양한 열정을 지니게 되었다. 정신을 더욱 고양시킬 수 있는 재능과 야망을 동시에 꿈꿀 수마저 있었다. 마네가 카페를 전전하는 바람에 저녁마다 홀로 집에 있어야 했지만, 피아노가 있었기에 그녀는 마네가 집으로 어서 빨리 돌아오기만을 고대할 수 있었다. 수잔이 혼자만의 평온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었긴 하나 새벽이 될 즈음이면 반드시 귀가하곤 했기 때문이다.


1866-1867, Portrait de Madame Mane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마네 부인인 수잔의 초상(Portrait de Madame Manet)」, 1866-1867.


마네의 「올랭피아」가 초래한 불행은 회복 불가능한, 돌이킬 수 없는 시련이기만 했다. 작품이 초래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이후로 프랑스 전역이 지각 변동을 일으켰으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게 만들었다. 결국 「올랭피아」가 마네의 사적인 삶이든 공적인 삶이든 이전과 이후를 완전히 경계 짓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올랭피아(Olympia)」, 1963.


그 증거로 마네가 작품을 절대 팔지 않겠다고 작심까지 한 것을 보면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익명의 한 부자가 작품을 사겠다고 제의하자 마네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격을 제시했다. 오직 국왕이나 구입할 수 있을만한 가격이었다. 1만 프랑이란 가격은 결국 작가가 작품을 팔지 않겠다는 의도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마네에게 있어서 수호의 여신일지도 모르는 그림 속의 빅토린느는 마네의 삶에 군림하듯이 아틀리에를 굳건히 지키는 여인이었다. 아틀리에 입구에 들어서면 오직 그녀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녀는 마네의 운명을 주관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이 그림과 연계된 또 다른 작품을 제작해야만 했다.



그다음엔?



순박하면서도 선량하기만 한 인간이 취한 태도는 여전히 모호했다. 마네는 스캔들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그 스캔들을 일으킨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1864-1865, Un moine en prièr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기도하는 수도사(Un moine en prière)」, 1864-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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