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6화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 피아노 치는 마네 부인, 1867-1868
9장 1
(1867-1868)
오 죽음이여, 해묵은 주재자여,
마침내 시간이 도래했도다! 닻을 올리자!
이 세계는 단지 우릴 지루함으로 지치게 만들 뿐이니,
오 죽음이여! 출항을 위한 돛을 펼치자.
- 샤를 보들레르
마네의 형제들이 어머님이라 부른 모친은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길 좋아했다. 남편이 저세상으로 떠난 이후로 그녀는 집안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즐거운 시간을 맘껏 즐겼다. 에두아르가 ‘그녀의’ 피아니스트와 결혼한 덕분이기도 했다. 하녀들 사이에서 에두아르 부인이라 불린 여인의 가장 큰 재능은 자신의 시어머니를 피아노에 심취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었다.
과부가 된 모친은 가까운 사이든 소원한 관계든 따지지 않고 지인들을 일주일에 두 번씩 가족 음악회에 초대했다. 초대받은 이들은 수잔이 연주하는 피아노곡에 맞춰 노래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들 친구들도 환영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음악을 감상하고 즐긴다는 조건하에서였다.
으제니는 팡탱을 편애한 탓에 팡탱이 자신의 집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기뻐했다. 맥을 못 추는 것은 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귀를 가진 에드몽 매트르도 마찬가지였다. 에드몽 매트르는 직접 연주를 할 정도로 음악의 애호가이기도 했다. 게다가 수잔의 친구들까지 가세했다.
단연 생트 세실 4 중단을 이끌고 있는 클로스 자매들이 으뜸으로 으제니 거실에 초대받았다. 이는 클로스 자매들이 앞으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행운의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 브라끄몽, 프루스트, 파리에 잠시 들른 뒤레가 얼굴을 디밀었다. 아스트뤼크, 뒤랑티, 스테방, 위레 신부, 이폴리트 르조슨느 장군과 그의 부인 발랑틴느와 그들의 조카인 바지유 등도 합석했다. 이들 모두는 각자가 그들 고유의 방식대로 사교모임을 즐기면서 사교모임을 더 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모임으로 키우고자 하는 야망도 점차 드러냈다.
열렬한 빅토르 위고의 숭배자들인 폴 뫼리스와 그의 부인처럼 레옹을 고용해 준 금융가 집안인 드 가(de Gas) 집안사람들도 초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드 가 집안사람들도 두 개의 긴 소파가 놓인 거실 한가운데에서 세레나데를 불렀다.
피아노 연주에는 수잔이 자주 초청받았다. 이는 마네 형제가 어머님이라 부르는 수잔의 시어머니가 자신의 며느리를 탐탁히 여긴 덕분이었다. 수잔은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의외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곤 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거실에서 화가 마네는 단연 인기스타였다. 마네는 으제니의 온순한 아들이자 수잔이 깊은 배려를 아끼지 않는 남편이긴 했지만, 일반 대중으로부터 비난과 욕설을 한몸에 받고 있는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 신세였다.
마네는 싹싹하고 섬세하며, 남을 잘 웃길 줄 알고 다정다감한 덕에 그를 대한 누구에게나 뚜렷한 인상으로 남았다. 이처럼 너무도 다른 마네의 두 모습 사이에 자리한 심연은 한 인물 안에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 마네의 양면이 공존했던 탓이다.
마네와 비교해 보면, 다른 형제들은 우스꽝스럽게도 아주 사소하고도 보잘것없는 일에 매달리는 형국이었다. 막내인 귀스타브는 잘나가는 법조인으로서 절대 신념이 흔들리지 않을 스타일이었다. 변호사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치적인 야망까지도 지니고 있었다.
사촌인 드주이와 힘을 합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귀스타브는 자신만의 왕국을 꿈꿨다. 그게 바로 로마법이었다. 그는 오로지 감베타와 서로 팔짱을 끼고 사이좋게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꾀어 공적인 일을 도모하고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들은 힘을 합쳐 새로운 연장들을 갈고닦으며 다가올 공화국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와는 달리 에두아르와 으젠 그리고 두 사람을 몹시도 따랐던 레옹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아늑한 보금자리의 평온함에 젖어 들어갔다.
어머님이라 부른 모친은 다른 어떤 자식보다도 에두아르를 귀애했다. 장남이야말로 그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처럼 여겨진 탓이었다.
결혼한 이후로 마네는 매달 아내가 아이를 갖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아내에게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바란 것은 지아비가 된 이상 공식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마네가 서둘러 아내의 출산 준비에 따른 아이의 옷가지까지 준비한 걸로 봐서 아이를 갖고 싶은 욕구가 비등해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지겹게도 완치가 안 되는 성병이었던 임질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의사인 시르데 박사는 그녀 역시 부부관계로 말미암아 임질이 옮아 더 이상 아이를 잉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수잔은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몹시 상심했다. 말 그대로 배가 부른 모습을 보란 듯이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좌절감이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상심은 커져만 갔다. 마네는 거꾸로 자신의 친자식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점차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늘어감에 따라 이를 한탄하기까지 했다. 친자식?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마네는 아이를 마치 색상환의 도표를 완성해 가듯 작품에서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교묘하게 은폐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옷을 입히기도 하면서 만인에게 아이를 보여줬다가 그들의 뇌리에서 금방 사라지게 만들기를 반복했다. 그가 자신의 걸작이 될 작품에서 아이를 형상화했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반증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 비밀로 부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마네의 뇌리 속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존재처럼 화폭에 번번이 등장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