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7화
9장 2
(1867-1868)
1866년이 되자 마네는 눈 깜짝할 사이에 벨라스케즈로 되돌아갔다. 마네가 그린 제복을 입은 피리 부는 소년은 벨라스케즈 풍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는 르조슨느가 마네에게 자신이 통솔하고 있는 군대에서 애 띤 병사 연주자 한 명을 작품 모델로 적극 추천한 결과였다.
이 그림에서 레옹의 특징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가 않다. 레옹과 그림 속 모델을 꼼꼼히 따져본다면, 둘 사이에는 유니폼을 입은 차이밖에는 없다. 「피리 부는 소년」의 진짜 주제는 이처럼 아이의 얼굴에 드리워진 우수에 찬 표정에서 읽을 수 있듯이, 비밀로 감출 수밖에 없는 자신의 친자식에 대한 마네의 쓸쓸한 연민의 감정이다.
마네는 그림 속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서서 피리 부는 연주자에게 고상한 용모를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인물의 크기조차도 거실에 걸릴 작품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적당한 크기로 그렸다.
마네가 그처럼 적극적으로 밀어 부친 작품 모델은 다름 아닌 자신의 친자식인 레옹이었던 것이다. 어린 연주자에게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유니폼을 입힌 것도 알고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우수를 표현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이를 보고 장난감 병정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레옹을 각기 나이에 맞게 달리 표현한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네가 그린 「체리를 먹고 있는 아이」에서 레옹은 다섯, 여섯 살 된 어린애로 등장하는 반면, 「칼을 들고 있는 아이」에서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며, 「피리 부는 소년」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모습이다. 마네가 「피리 부는 소년」을 그렸을 때가 레옹이 14살 때였다. 그러나 그림 속의 아이는 그보다 절반쯤 나이가 어린 용모를 띠고 있다.
예술가가 지닌 사고의 중심에는 레옹이야말로 스스로 불행한 삶을 좇아 방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조차도 사라져 버린 기이하고도 비뚤어진 운명을 타고난 불쌍하고도 가련한 어린애로만 비쳤을 것이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은행 잡일 심부름꾼 사환으로 일하고 있는 아이는 도저히 아버지인 마네처럼 될 수 없는 운명까지 타고난 가난하고도 불쌍한 고아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생각의 한편에는 이 아이야말로 씩씩한 청년일 뿐 아니라 자존심이 강한 아이로 커가리란 부모의 바람 또한 자리하고 있다.
마네가 꾸준히 지속해가고 있는 일련의 작품 경향에 비춰볼 때, 그림 속에 등장하는 아이의 모습이야말로 부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훌훌 털어 던지듯 스스로 내밀한 삶에 대한 자백으로까지 읽힌다.
화가인 아버지는 극 중에 등장하는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와도 같다. 화가 자신의 아버지처럼 옷을 차려입고 등장하는……. 전자의 고립감은 타자의 고독감에 대응한다. 절대 표면에 나서는 일 없이 고독감만이 무언중에 흐르고 있다.
이 「피리 부는 소년」은 「비극 배우」와 함께 미술전람회에 출품하려고 제작한 작품이다. 애초에 작품 모델로 실제 인물을 구했는데, 햄릿의 주인공을 맡아 공연하던 저 유명한 연극배우인 루비에르가 그림 속 모델이 되었다. 그림 속 주인공이 된 지 두 달 만에 루비에르가 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작품은 결국 완성되지 못한 채, 소문만 증폭되고 말았다.
에두아르의 형제들도 그림 속 모델이 되었다. 각자 그들이 좋아하는 희곡작품의 작중인물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다 싶은 인물의 역을 맡아 포즈를 취했다. 화가는 재치 있게 그림 속 주인공에게 실제 이름을 부여하는 대신 「비극 배우」의 인물 초상을 그려 넣었다.
[1] 그림 속 인물은 햄릿의 주인공 역을 맡아 비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요절한 필리베르 알퐁스 루비에르(Philibert, Alponse Rouvièr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