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8화
[대문 사진] 드가의 「서있는 마네」
9장 3
(1867-1868)
스페인을 여행하기로 작정한 이후로 마네는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스페인을 소재로 한 회화 작품들에 대한 의혹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되었다. 스페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극히 미미하나마 희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스페인을 소재로 작품을 그리는 것조차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던 탓이다.
기법 면에 있어서도 마네는 벨라스케즈의 화법의 비밀을 재발견한 탓에 몹시 기뻤다.
“바탕은 사라진 채, 완전히 검은빛을 띤 마치 실제 살아있는 듯한 모습을 한 선량한 이를 감싸고 드는 분위기만 느껴진다.”
그처럼 마네는 전율했다. 분위기에, 루비에르를 에워싼 채 감도는! 이를 너무 고전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나 「피리 부는 소년」은 관전의 심사위원들의 맘에 드는 행운을 거머쥐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만인에게 공개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전람회 심사위원들은 마네의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기에 마네의 동정을 염탐하기 위해 비밀 정찰대까지 풀어놓은 상태였다. 또한 이제부터는 무조건 마네를 심사에서 떨어뜨리고자 작정하고 나섰다.
거부한 것이다. 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마네의 작품을 심사할 필요도 없이, 아예 심사위원들이 지닌 권한으로 마네가 작품을 출품하는 것 자체를 막아버린 것이다.
어두컴컴한 미로와도 같은 숲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마네가 졸라를 고대하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러한 사정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졸라야말로 마네를 옹호해 줄 것이 확실했다. 적의로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혹시라도 그에게 닥칠 위험과 위협을 무릅쓴 채, 졸라만이 유일하게 마네를 지지해 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졸라는 곧바로 신문사에 오로지 마네의 탁월한 면만을 부각한 기사를 송고하기까지 했다. 졸라는 비난에 휩싸인 「피리 부는 소년」과 마주했을 때, 솔직히 감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상했던 대로 마네가 탁월하다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실제 「피리 부는 소년」은 기법 상의 놀라운 성공을 거둔 것이 사실이다. 전쟁의 공포에 의한 감정의 동요 상태가 절묘하게 표현된 작품이면서 더군다나 나이 어린 아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정체불명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담은 그만하시오. 지금은 중대한 시기이며, 예술계는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소이다. 미술전람회에 자주 작품을 출품한 쥘르 올차펠[1]이란 스트라스부르 태생의 화가가 몽마르트르의 자택 침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자살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는 세상을 등졌다.
심사위원들은 나를 떨어뜨렸다.
내겐 재능이라곤 전무했다.
고로 나는 죽어야 한다.
- 쥘르 올차펠(Jules Holtzapffel)
모든 예술가들이, 마네와 드가, 졸라의 친구들까지도 무겁고도 비통한 분위기 속에서 아무 말 없이 자살한 화가의 장례식을 지켜봤다. 잃어버린 생명을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아카데미 회원 한 사람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그들과 어울리려 하자 마네가 서있는 줄에서 마치 낯선 자를 내쫓으려는 위협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마디 말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그저 웅성거리며 술렁이는 인파에 어깨로 어깨를 밀치는 진풍경마저 벌어졌다.
아카데미 회원인 그를 쫓아버리고자 한 의도가 분명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이가 서로 연대했다. 그들 각자는 절망의 순간에조차 그런 급진적이고도 과감한 행동을 도모할 수 있었다.
예술이 공무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작품 심사와 검열에까지 가담한 자칭 예술가란 이들 공무원들은 그들을 규제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심사위원회까지도 무시하는 권한을 행세하고 있었다. 이 경우에 그들은 손에 피를 묻힐 게 뻔했다. 이른바 그들을 가리켜 공공연하게 암살자들이라 부른 까닭이 그 때문이었다. 하여 새로운 낙선작가들의 전람회가 공표되기에 이르렀다.
침묵만이 흐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서 시신을 담은 관을 덮은 천을 두른 끈을 잡고 있던 졸라는 마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갈까 생각하면서 두리번거리듯 마네를 찾았다.
마네가 이 출세 만능주의에 빠진 어린애 같은 졸라처럼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다는 점은 정확하지가 않다. 마네의 지나칠 정도로 예의 바르면서 정중한 태도는 졸라와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네는 졸라에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었다. 졸라로 하여금 꽁다민느 거리에 있는 집에 살림을 차리게 만든 것이다. 정원이 딸린 작은 단독주택이었다. 봄이 오면 솔직히 터놓고 흉허물 없이 내연관계에 있는 여인은 사내의 친구들을 다 한자리에 불러들일 참이었다.
흉허물 없는 그들 사이에서 마네는 아내를 동반하지 않은 채, 길쭉한 반장화에 모자 끝이 굴뚝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실크해트 모자를 눌러쓰고 억지웃음을 띠고 있다.
수잔은 졸라가 내연관계에 있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 한, 졸라의 집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네는 수잔과 맺은 약속사항들을 존중했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곧 자신을 올바르게 건사해 나간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1] 1826년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쥘르 올차펠(Jules Holtzapffel)은 1866년 미술전람회에서 두 점의 그림이 거절당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파리의 튀흐고 가(Rue Turgot)에 위치한 자택에서 마흔의 나이에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