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파(École)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앙리 팡탱 라투르(Henri Fantin Latour)가 화폭에 담은 바티뇰 예술가 그룹(Ecole de Batignols), 1870.



9장 4
(1867-1868)



거의 무명이나 다를 바 없던 지난해와는 달리 신문에 기사를 다루기 시작한 졸라가 「올랭피아」를 옹호하고 나섰다. 졸라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마네를 거들려고 애썼다. 아첨이든 추종이든 마네와 영합한다는 점에서 졸라에게 두려울 건 없었다.


졸라가 마네의 몇몇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 건 확실하지만, 오후 긴 시간 동안 마네가 자신이 작업한 것에 대해 긴 설명을 늘어놓은 지도 여러 차례이건만 졸라가 마네에 대해 이해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드가가 졸라에 대해 “행실이 바르지 못한 부르주아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투로 그를 화나게 만들려고 애쓰는 위선자일 뿐인” 인물이라 판단하고 늘 졸라를 경계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음식을 가리듯 까다롭게 구는 지지자들을 너무 많이 가까이하고 있었다. 졸라는 아직 어렸다. 이제 그의 나이 26살에 불과했다. 또한 이제까지 죽도록 노력하여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았을 뿐이다.


폴 뫼리스가 발간하는 신문에 졸라는 미술전람회 개최에 따른 일반적인 전람회 분위기를 전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또한 다른 신문에는 마네를 꼭 집어서 그를 옹호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졸라가 처음으로 현대 미술을 다룬 기사였다.


“만일 당신이 좀 더 리얼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개개의 오브제들은 다 작가의 의도에 따른 것입니다. 올랭피아의 머리는 아주 놀랄 만한 입체감을 주는 바탕 화면과는 영 동떨어져있으며, 꽃다발은 아주 경탄할 만한 섬광을 발하면서 동시에 신선한 느낌마저 주기까지 합니다.”


졸라는 이미 자서전적 소설을 출간한 바 있었다. 그가 간행한 소설 『끌로드의 고백』은 세잔에게 헌정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가 쓴 소설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졸라는 문학비평과 미술비평을 오가면서 화려하게 문필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갔으며, 다음에 펴낼 소설에서는 마네의 영광을 다루고자 구상하기까지 했다.


졸라는 꽉 막혀있는 출구를 확 뚫어줄 수 있는 진짜 확실한 술책까지도 의도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볼테르를 철저히 파고들었다. 마네는 칼라스 사건과 동일한 경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졸라는 아주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제도권에 속한 기관에 의해 모욕당하고 개 취급을 당함으로써 헤어 나올 수 없는 고독에 빠진 자를 지지하면서 옹호하고자 논쟁을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 마네는 과부이자 고아이며 라 바흐의 기사로 등장한다. 마네는 심사위원 개개인에게 호명당하는 모욕을 당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다. 마네는 예술과 방법론 모두를 파괴하고 허물어뜨린다. 그것이 마네를 위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자신을 옹호하고 나선 이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이해가 전무한 것 같아 마네는 쉬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어떻게, 무엇 때문에 그림을 그렸는지, 화가가 그림에서 일화적인 요소를 삭제한 까닭이 뭔지, 그림의 내용을 뒤섞고 흐린 까닭이 뭔지, 그림의 분위기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내용에 부합하는 어떤 색조를 고집했는지 등을 열거해 갔다.


마네는 상대방이 자신의 작품 평을 좀 더 근사하게 써주기를 기대하면서 졸라에게 자신의 온갖 기법들에 대한 베일을 하나하나 벗겨갔던 것이다. 졸라가 미술 비평 용어를 숙지하고 있을 정도로 이 방면에 자질이 뛰어나면서 실력을 갖추었다면, 마네와의 대화에서 그가 사용한 시적인 의미나, 문체에 대한 이해, 아름다움에 관한 취향, 우아한 어휘를 사용하는 독특한 화법에 정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졸라가 좋아한 건 단지 착색 석판화였을 따름이다. 졸라는 자신의 형제나 다를 바 없는 세잔의 얼굴에 그만 먹칠을 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졸라가 쓴 글은 촌스러운 데다 세련미와는 담을 쌓은 건 물론이고, 이른바 ‘사실주의 회화’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껄끄러운 예술적 취향까지도 노골적으로 은폐시키는 상당히 거칠기만 한 글에 불과했다. 사실주의 화가들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주제들을 미화할 필요조차 없었다. 오직 짧은 단 한 마디면 충분했다.


마네는 졸라의 논조를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 있는 기사를 써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더군다나 마네가 새롭게 창안한 그만의 새로운 회화 유파에 열정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것에 만감이 교차하기까지 했다.


유파(École)라! 그것도 마네가 그 새로운 그룹의 수장이라고?


마네를 따르는 문하생들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홀로 있는 사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졸라는 마네가 유파를 창안해 내고 문하생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 매혹적인 바르비종 파 추종자들은 아직 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나올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숲에서 나오자마자 결국 서로 보조를 맞춰 함께 행진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은 서로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라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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