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70화
9장 5
(1867-1868)
처음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을 때, 마네의 대담한 표현에 놀라 극찬을 아끼지 않던 이들도 바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매혹적인 성격을 지닌 모네나, 늘 성깔을 부리는 세잔이나, 파리에 가끔 들르긴 하지만 누구보다도 마네에게 먼저 달려올 피사로와는 달리 한결같이 재능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던 이들이었다.
그들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일단 그들에게 문을 열고, 마음을 열고, 그다음엔 그림을 걸기 좋은 자리에 그들과 같이 자리를 적절히 배분하여 작품을 걸기만 하면 되었다.
고독하고 비참한 지경에 처한 마네로서는 그와 같은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오라, 마네는 그저 그들과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 것은 아닐까? 유파라기보다는 한 패거리를 이루면서? 그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을 것이다. 마네는 실제 저 마음속 깊이 무슨 무슨 유파(École)란 단어를 증오하고 있었다.
마네에게 작업하는 걸 보여달라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마네가 스스로 선선히 작품을 보여주고 사람들을 끌어들일 만한 당돌한 행동을 할 만큼 그가 중대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마네는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아틀리에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말 그대로 낙선한 작품들까지 자랑삼아 보여주었다.
“그들이 아틀리에에 또 한차례 나타나서는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결론을 내리더니 내게 말하기를 내가 그린 그림들이 그들 눈에는 마치 미친 짓같이 보이더라 하더군!”
브뤼셀에서는 토레가 또다시 마네를 편들고 나섰다.
“난 관학풍에 입각해서 그림을 그리는 저 힘자랑하는 헤라클레스들보다도 마네가 신들린 듯이 휘갈긴 초벌 그림 같은 그림들이 훨씬 맘에 든다.”
마네는 아내를 통해 알게 된 젊은 친구와 아주 돈독해져 갔다. 피에르 프랭이라 불린 이 젊은 친구는 수잔의 둘도 없는 짝꿍의 남동생이었다. 오라, 그 역시도 그림을 그렸으나 소심하게도 너무 완벽하게 그리려 하는 것이 문제였다.
프랭 남매는 마네 집안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피에르 프랭은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다. 클로스 오케스트라 단장은 4명의 여성 연주자들로 구성된 ‘생 세실 4중주단’을 이끌고 유럽 전역을 돌며 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제일 나이 어린 단원 한 명이 화니라 불린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이제 15살밖에 안 된 그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에 푹 빠진 피에르 프랭은 오로지 그녀밖에는 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도저히 그녀에 대한 사랑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수잔을 따랐고 마네 역시도 마찬가지로 좋아했다.
프랭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마네의 놀라운 면을 발견하면서 마네에 대한 상탄을 금하지 못하긴 하였지만, 프랭은 단 한 번도 마네의 좋은 친구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정말 우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프랭을 게르부와 모임으로 이끌었으며, 프랭은 그곳에서 자샤리 아스트뤼크와 운명적인 조우를 했다. 이 두 사람은 죽는 날까지 마네 곁을 지켰다. 마네 또한 이 두 사람의 든든한 지지를 필요로 한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