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실패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72화

by 오래된 타자기


9장 7
(1867-1868)



마네가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본인만 모르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 같은 사실을 너무도 명백히 파악하고 있었다. 마네가 그리 탁월한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했다. 마네는 최근에 완성한 50여 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한 번 감상해 보라 전시한 것이지만, 주변에 몰려든 관람객들은 한곳에 모여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오직 화가에게 망신을 주려고 작정한 듯 야유하고 소리쳤다. 마네 자신이나 작품이나 할 것 없이 어느 것 하나 거들떠보지 않은 상태에서 중상모략에다 그를 헐뜯기만 할 뿐이었다.


요컨대 전시장을 찾은 이들의 숫자도 극히 적어 창피한 수준이었지만, 팸플릿을 사거나 들여다보는 이들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종국에는 그걸 공짜로 제공해야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쿠르베가 자신에 대해 자만심에 차 허풍을 떤 것보다도 훨씬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뒤엎고 스스로 몰락해 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던 심정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 되고 말았다.


더하여 어느 누구 한 사람 “이 사실주의를 견인하고 이끌어가고 있는 주모자이자 선동가 두 사람이 서로 연합하여 쿠르베는 리얼리즘의 교회를 세우고, 마네는 성당을 짓는” 일을 가로막고 나설 자 또한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두 사람의 예술은 점점 사실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마네가 고대한 건 참으로 거창하기만 한 것이었다. 실패는 확실했을 뿐만 아니라 참담한 결과마저 몰고 왔다. 그의 입지는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게다가 엄청난 빚이 마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네는 수많은 기대를 접은 건 물론이고, 자신의 운수와 재능을 믿은 걸 자책했다. 일반 대중은 오직 그가 일으킨 스캔들에, 그가 내뱉은 가래침에, 그가 쏟아낸 참으로 개인적인 울부짖음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를 전혀 거들떠보지조차 않았다.


마네가 뻔뻔스럽게 고집 피우며 자기주장을 일삼는 걸 지켜보다 보니 모두에게는 마네가 마치 법정에 출두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눈에 거슬리기까지 한 것이다. 마네는 참으로 홀로 온갖 경멸이 담긴 모욕을 감내해야만 할 처지에 이른 자신이 한탄스럽기만 했다.


한 방에 모든 것을 잡치고 만 꼴이었다. 전시장 공사가 늦은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아카데미 예술에 속한 이들의 전시에 맞서 개인전을 연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에게 대적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다만, 이 실패에 따른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참혹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작품 경향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자신의 의지만으로 독특하고도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가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고 인식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대체 어떻게 타인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여 자신이 살아있음을 생생히 증명해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시기에 걸쳐 팡탱이 그린 마네의 초상은 젊고 잘생긴 얼굴에다가 미술전람회에 입상한 영광의 순간을 재현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경우에는 찬사로 가득 찬 작품 평을 톡톡히 봤다.


다행히 급변한 정치적 상황이 늘 그렇듯이 마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동시에 비록 전시의 실패에 따른 중압감이 마네를 짓누르기는 했으나, 그저 단지 기분전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이때 발생한 정치적 사건은 중차대할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카페에서 전해 들은 정확한 분석에 따른 뉴스는 마네에게 사건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건이 발생한 며칠이 지난 후인 5월 22일이 되어서야 프랑스 언론은 나폴레옹 3세가 적극 추천하고 밀어붙인 멕시코 황제인 막시밀리 언니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언론이 전하는 살해당한 황제의 모습은 마네의 눈을 뒤집히게 만들었다. 이건 국가적인 수치였다.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한 치욕스러운 일에 해당했다.


마네는 사건을 접하자마자 바로 사건을 재구성한 일련의 작품 제작에 들어갔다. 그는 역사가의 영혼으로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역사화라 부르는 걸 거부했다. 그렇다면 시사성을 띤 현실 참여 작품이란 말인가? 차라리 현실 고발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고발하고, 그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모든 정치적 음모조차 거부한.


비록 졸라가 의무감에 사로잡혀 점차 마네를 옹호하고 지지하고 나서기는 했으나, 젊음과 향락을 함께 공유했던 둘도 없는 지인이라 할 수 있는 보들레르 또한 마네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부추기는데 한몫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상한 재능을 갖춘 시인은 너무나도 건강이 악화되었을 뿐 아니라 너무 멀리에 있었다. 벨기에에서 그것도 치매 증세까지 겹쳐 마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1867, L'Exécution de Maximilien.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막시밀리언의 처형(L'Exécution de Maximilien)」, 1867.


1867, L'Exécution de Maximilien 1.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막시밀리언의 처형(L'Exécution de Maximilien)」,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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