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죽음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73화

by 오래된 타자기


9장 8
(1867-1868)



마네는 오팔 해안으로 향했다. 가족과 함께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보다 앞서 나다르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풀레-말라씨스와 휄리시앙 로프스와 함께 벨기에의 나뮈르로 향했다.


브뤼셀의 커다란 거울이란 뜻을 지닌 호텔로 보들레르를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보들레르는 꼼짝 못 하고 누워있어야만 했을 뿐 아니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처해있었다. 더군다나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정상적으로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보들레르의 침상 곁에는 환자의 병명이 적혀있는 진단서가 부착되어 있었다.


“문학인, 모든 걸 종합해 볼 때 뇌출혈로 인한 반신불수가 분명함.”


보들레르가 누워있는 침상 곁에는 스테방 형제들이 보들레르의 모친인 73살 된 마담 오픽이 호텔 방에 누워있는 아들을 찾아올 때까지 지키고 앉아있었다. 보들레르는 아직 의식이 있었다. 모친은 그런 자식을 벨기에에서 파리로 옮기는 게 낫다고 판단하여 6월 29일 아들과 아들의 친구인 아르튀르 스테방과 함께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보들레르는 온통 흰 머리카락에 핏기 하나 없는 앙상하고 초췌한 얼굴에다가 반신불수의 몸으로 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는 상태에서 파리로 다시 돌아왔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었기에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물치료 전문의인 뒤발 박사 병원으로 긴급 이송한 뒤 병실에 입원했다. 병원은 엘로 대로 인근의 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침상에서 꼼짝 못 하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던 모친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절감하고는 옹플뢰르로 되돌아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를 지인들이 대신했다. 나다르, 방빌, 샹흘뢰리, 아슬리노 그리고 마담 사바티에가 연달아 보들레르의 머리맡을 지켰다.


하지만 시인은 점점 말을 잃어갔다. 실어증 환자, 그는 단지 두 음절밖에 발음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두 음절을 길게 끊어서 겨우 두 마디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랄 만큼 정확히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이었다. “마 네 ~ 마 네”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이지만 뭔가를 가리키는 듯이.


병원의 방문자 대기실에는 피아노가 말없이 상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들레르가 마네라 부른 것은 곧 피아노를 가리킨 것이었다. 나다르는 마네의 그림 두 점을 보들레르가 누워있는 침상 바로 전면에 걸어놓았다. 꽁스탕탱 기가 마네의 그림을 한 번 보라고 보들레르를 이리저리 달래 보아도 병세가 짙어갈 뿐인 보들레르는 멀거니 창밖의 정원만 내다볼 뿐이었다.


묵주신공을 바치듯 “빌어~먹을” 소리를 연발하는 중에 보들레르는 “마 네”라고 정확히 한 자씩 띄어서 발음했다. 마네가 이젠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고? 그제야 지인들은 말뜻을 이해했다.


시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나다르는 마네가 어서 빨리 여름휴가를 끝내고 돌아오기만을 고대했다. 실패를 잊기 위해 마네는 불로뉴 바닷가로 떠난 것이었지만, 으젠 부댕을 찾아가기 위하여 트루빌에서 친구인 프루스트를 만나고 있었다.


보들레르가 아프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마네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있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보들레르가 누워있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마네는 어처구니가 없어 잠시 말을 잃고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잔느는? 보들레르의 동거녀였던 잔느가 자리에 없었던 탓이다.


잔느가 바티뇰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마네는 그 길로 잔느를 찾아갔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녀는 보들레르를 다시 만나는 걸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죽어가는 보들레르를 지켜보기에는 너무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단지 가슴속에 위대하고 멋진 시인의 자화상만을 간직하고 싶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녀로서도 더 이상 그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만큼은 끝내 털어놓지 않았다.


상심한 마네는 수잔과 함께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갔다. 수잔은 그런 마네를 이해했다. 환자 대기실에 놓여있는 피아노 앞 팔걸이 없는 연주용 의자에 앉은 수잔은 자신이 편곡한 바그너의 작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자신이 편곡한 음악이 맘에 들었는지 곡 전체를 항상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수잔은 악보도 없이 마음속에 새겨둔 곡들을 연주했다.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마치 음악에 취한 사람처럼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이 연주하는 곡에 도취하기 위해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잔이 연주를 중단하자 보들레르는 빌어~먹을 이란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또한 마~네라는 말도 내뱉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시인의 침상 곁에서 지인들은 그녀가 연주하는 걸 지켜보았다. 보들레르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그녀의 손가락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연주한 지도 어느덧 5시간이나 되었다. 그런 그녀를 보들레르는 열렬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단숨에 흘러간 탓에 수잔은 피곤한 줄도 몰랐지만, 에두아르는 그만하면 됐다고 판단한 듯 시인에게는 내일 다시 오마 약속하고 수잔에게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자고 권했다. 그 사이에 수잔 대신 피아노를 연주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다르는 마담 폴 뫼리스를 서둘러 찾아갔다. 피아노가 곡을 쏟아낼 때, 보들레르의 표정에 생기가 돈 것으로 봐서 피아노가 연주자 없이 홀로 쓸쓸하게 놓여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죽어가는 이는 이제 더 이상 음악과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를 홀로 고요한 침묵 속에 내버려둬서는 안 될 일이었다. 수잔은 바그너의 음악을 그처럼 강렬하게 그녀와 함께 공감하고 있는 시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동안 스테방은 시인의 모친인 과부 오픽을 병원으로 다시 오도록 그녀를 설득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모친은 아들의 종부성사를 위해 신부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고는 의식을 잃은 아들 머리맡에 조각상처럼 앉아서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보았다.


수잔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손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연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잠자는 시간은 불과 한두 시간 남짓 불과했다. 그러고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녀는 연주했다. 시인이 좋아하는 바그너의 음악을. 그녀는 시인의 최후의 순간을 지켜보고자 했다. 마치 시인을 위해 기도하듯이, 그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원하듯이. 그녀는 시인이 마지막 숨을 내쉬듯 「라인 강의 황금물결」을 정확한 박자에 맞춰 연주했다.


마네는 그런 아내를 지켜보고, 마담 오픽은 기도하고, 나다르는 죽어가는 시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계속 찾아오고 있는 동료들과 지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문설주에 기대어 서있었다. 모두들 연주를 계속하고 있는, 멈출 줄 모르는, 고집스럽게 계속 피아노를 치고 있는 수잔을 놀랜 듯이 바라다보았다.


8월 31일 시침이 막 정오를 향해 가는 오전 막바지에 샤를 보들레르는 숨을 거뒀다. 시인은 이제 더는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수잔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연주를 했다. 그는 숨쉬기를 멈췄으나 그녀는 연주하고 있는 곡을 아직 끝내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가 곡을 다 연주하고 나면 그녀의 남편은 정령의 섬세함으로 아주 조심스레 피아노 건반 덮개를 덮을 것이었다.


위대한 시인은 가장 기막히도록 아름다운 화음 속에 고요히 숨을 거뒀다.


모두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강한 충격에 따른 감정의 동요가 가슴속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은 그들 곁을 떠난 자가 얼마나 비중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수잔은 더욱 그랬다. 그리고 여기 시인의 친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 시인을 위해서도 너무나도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 해 파리의 여름, 8월이 끝나가던 시기는 덥기만 했다. 날씨가 너무 무더운 탓에 시인의 장례식은 미뤄지기만 했다. 스테방과 나다르는 시인의 장례를 한시바삐 치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하에 일을 서둘렀다. 많은 사람들에게 시인의 장례식 기일을 알리기에도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9월 2일 몇몇 시인을 기억하는 이들만 모여 너무 이른 나이에 죽은 시인을 애도했다. 그의 나이 마흔여섯에 네 달을 넘기고 있었다.


겨우 100여 명에 달하는 조문객들만 파시에 위치한 생토노레 장례식장에 있는 시신이 담긴 관을 묘지로 운구했다. 몽파르나스 묘지까지 따라나선 조문객은 이보다 더 적은 숫자였다. 묘지에서 나다르와 아슬리노는 거대한 족적을 남긴 시인을 애도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시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이들이었다.


조문객들은 ‘황망하여 미처 참석하지 못한’ 고티에와 르꽁트 드 리슬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들이야말로 공공연히 시인과의 우정을 과시하고 다닌 사람들이었다.


늦여름의 열기가 장례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구었다. 우레와 같은 천둥벼락 치는 소리가 한여름의 고요한 묘지에 몰아닥쳤다. 마치 살아남은 자들이라도 구원해야 한다는 듯이. 여름의 천둥 치는 비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대면서 시인의 시신을 담은 관위에 우수수 나뭇잎을 떨구었다.


돌풍으로 변한 비바람이 마지막으로 하관식 뒷정리를 하던 일꾼들마저 황망히 흩어지게 만들었다. 그들은 한낮의 열기에 뜨거워진 상태에서 후드득 지상을 두들겨대는 빗줄기를 피해 이리저리 달아났다.


“뭔 놈의 날씨가 이래. 정말 대단한 악의 꽃이군.”


몽파르나스 묘지를 나와 막 바티뇰로 다시 걸어 올라가려던 참에 젊은 사내 한 명이 시인이 펴낸 시집 제목을 빗대어서 중얼거렸다. 마지막까지 하관식을 지켜보던 동료들 중 몇 명은 영구차 주위에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젊은 친구가 마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일단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마네는 그에게 차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몽파르나스에서 바티뇰까지는 상당한 거리였다. 더군다나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오! 전능하신 주님! 이 불쌍한 아이가 머리에 쓰고 있는 벙거지를 벗어던져버리게 하소서. 그는 이미 벗어진 이마에 머리털마저 빠진 대머리를 감추고 있나이다. 모두가 연극배우들처럼 과장하여 예술가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엉터리 시인 폴 베를렌느만이 깊은 슬픔에 잠겨”있을 따름이었다.


함께 바티뇰로 가는 도중 마네는 베를렌느에게 깊은 신뢰감을 느꼈다. 젊은 시인은 추악하고도 비열하며, 불량배 같은 모습이었을 뿐 아니라 사랑에 빠진 가련한 몰골에다가 자신의 모친 앞에서 다시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쩔쩔매는 아이 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레끌뤼즈 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가 고백하기를 애처롭게도 시를 짓는 것 말고는 다른 걸 전혀 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이 없으면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몇 주가 지난 다음 그의 첫 시집 『사투르누스 축제』란 시집을 펴냈다. 마네가 그토록 바라던……. 마네는 그가 시집을 펴내길 무척 바랐다. 또한 흥미진진하게 어린아이 같은 그가 써 내려간 숨 돌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마음의 상처와 허풍으로 가득 찬 시들을 읽어보았다.


그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까운 사이나 된 듯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했다. “단지 당신께서 제 시들을 좋아하신다는 조건하에서” 젊은 시인은 그들의 만남을 규정했다. 마네는 그에게 게르부와 카페로 언제 몇 시에 올 것을 일러주었다. 카페는 그가 살고 있는 곳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베를렌느와 헤어지자마자 마네는 아틀리에로 뛰어갔다. 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하관식 장면을 담은 밑그림을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신중한 태도로 비극적인 죽음의 의미를 더해갔다. 마네는 시인이 사랑했던 파리의 비전을 담은 그림을 자신이 최고로 여긴 친구를 위해 기꺼이 헌정했다.


묘지 위 허공 속에는 나다르가 조종하는 멋진 기구가 떠있었다! 나다르가 조종한 열기구는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발명품인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열기구였다. 항공의 미래를 활짝 열어젖힐 내일에 대한 기대를 표현한 작품이기도 했다. 내친김에 나다르는 지도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파리 사진도 곁들일 참이었다.


마네는 이 작품만큼은 전시를 미뤘다. 그림은 결코 단 한차례도 아틀리에 벽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마네는 그림에 「매장」이란 제목을 붙였다. 그는 정말로 보들레르를 좋아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1867, Enterremen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매장(L’enterrement)」,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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