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7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의 한 장면



9장 9
(1867-1868)



나이 어린 베를렌느가 쓴 경쾌하기만 한 시구는 마네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켰을까? 혹시 샤르댕이 그러했던 것처럼 경매장 앞을 막 지나쳐간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어린아이를 그리고자 한 생각을 갖게 하지는 않았을까? 마네는 레옹더러 「비눗방울을 부는 아이」의 포즈를 한 번 취해보라고 권했다. 이는 게르부아 계산대 위에 놓인 탓에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시집 책장들 사이로 언뜻 눈에 띈 나이 어린 베를렌느가 쓴 시에 감동받은 결과였다.


시집은 마틸드라 불린 여자와 결혼한다고 초청받은 자리에서 베를렌느가 건넨 시집이었다! 참 이상하기 짝이 없는 아이였다. 서투르기 짝이 없는 시를 쓴다고 열에 들뜬 표정을 짓던 나이 어린 시인.


1867, Les Bulles de savon.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비눗방울을 부는 아이(L’Enfant aux bulles de savon)」, 1867.


즉시로 마네는 그의 걸작 가운데 소품에 해당하는 그림을 한 번 그려보고자 구상했다. 마네는 지나칠 정도로 15살 된 아이를 너무 어리게 표현했다. 그림 속 아이는 그처럼 이제 겨우 10살이 됐을까 말까 한 나이다.


마네는 또한 아주 예쁘장한 얼굴을 한 여자의 초상화를 재빨리 해치웠다. 「분홍빛 옷을 걸친 여인」이 새로이 빛을 본 것이다. 보들레르가 저세상으로 떠난 뒤, 이름도 모르는 한 여인이 새로 태어난 것이다. 그녀는 시인이 없는 자리를 채워준 일시적이고도 덧없는 한 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따뜻한 위로를 준 인물이기도 했다.


1866, La Dame en ros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분홍빛 옷을 걸친 여인(La Dame en rose)」, 1866.


미루고 미루던 「책 읽어주는 남자 또는 독서」를 완성해 가면서 「담배 피우는 사내」 또한 함께 완성했다. 마네가 수잔에게 준 「토끼」란 작품은 확실히 샤흐댕 덕에 그리게 된 그림이다. 마네가 보들레르를 위해 그림을 그린 것 역시 나름대로 보들레르를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1865, La Lecture.jpg 수잔을 모델로 한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책 읽어주는 남자 또는 독서(Le Liseur ou La Lecture)」, 1865.


1866, Fumeur.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담배 피우는 사내(Fumeur)」, 1866.


1866, Un lapin.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토끼(Un lapin)」, 1866.


모든 것이 시인의 죽음에 격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를 빚은 시인의 죽음은 그렇듯 너무 돌발적이면서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애틋하게 형제애를 나누는 동안 서로를 격려하고 부추겨준 따뜻한 우정이 마네의 가슴을 흥건히 적시면서 흘러내린 탓이었다.


화가인 마네와 시인인 보들레르, 이 두 사람의 인간관계가 특별했던 것은 서로 모델이 되어주었다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가지만, 그들 상호 간에 유별나기만 했던 서로에 대한 감성을 여실히 증거해주었기 때문이다.


마네는 브라끄몽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반면 발르루아나 르그로는 각자 브라끄몽의 초상을 제작했다. 브라끄몽은 이 동판화를 샹흘뢰리가 펴내는 잡지에 싣고…….


1856년부터 호쿠사이(Hokusai)는 브라끄몽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브라끄몽은 물건을 담은 상자를 싼 포장지를 펼칠 때마다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호쿠사이의 목판화 작품들을 발견할 때마다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브라끄몽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혼자 삭히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기까지 했다.


Hokusai, La Grande Vague de Kanagawa.jpg 일본 목판화의 대가 호쿠사이(葛飾北齋)의 「카나가와 해안의 집채만 한 파도(神奈川沖浪裏)」, 1830-1831.


특히나 바티뇰 화가 그룹 멤버들에게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바람에 그들 모두가 일본 목판화가 새겨진 포장지를 구하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마네 역시 포장지를 통해 호쿠사이의 목판화를 눈여겨보았다.


마네가 발견한 특이점은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한 새로운 기법이었음은 물론, 색조마저 아주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제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곧은 선의 사용 등 자신의 그림에 적용해 볼 만한 요소들이 흘러넘쳤다. 마네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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