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77화
[대문 사진] 옛 그림엽서 속의 불로뉴 바닷가의 여름 풍경
10장 1
(1869-1870)
행복은 늘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하고 있었노라.
- 폴 베를렌느
빅토린느와 함께 앵무새가 있는 여인의 초상화를 제작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다시 협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새로운 시도를 해봐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 것은 그처럼 새로이 다가올 황홀하고도 기쁨에 넘치는 순간들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물론 빅토린느는 마네를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났음을 확신할 정도로.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오직 차갑게 식은 잿더미에서 지난 세월에 대한 우울한 감정만 되살아났을 뿐이다.
수잔 역시 남편에게 빅토린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항상 조심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그녀는 늘 까다로운 화제의 대상이기도 했다.
“당신은 그녀를 그리는 것에 별 만족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녀도 변한 거죠. 나이가 들었어요. 이젠 예전의 「올랭피아」 때처럼 그렇게 대단할 수는 없어요.”
수잔은 어떤 대단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마네가 빅토린느에 대해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수잔은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추측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수잔은 마네의 말을 다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런 탓에 부부간의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수잔은 자신이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그걸 강요할 만큼 지나치게 고상한 여자였다.
한 번은 길을 가던 중에 남편이 쌍스럽게 생긴 여자를 빤히 쳐다보는 것에 충격을 받아 가던 길을 멈춰 서서는 단호하게 남편을 질책했다.
“그래요, 이제 당신을 놔줄 테니 맘대로 하세요! 이젠 끝났어요. 마침내 정체를 드러냈군요.”
이런 때일수록 아내에게 강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마네는 수잔을 껴안고 속삭였다.
“내 참! 난 오직 당신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야.”
그 말에 수잔은 웃음부터 나왔다. 그가 그랬다는데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물의를 일으키고 대중을 대경실색하게 만드는 대단함이란 게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 수잔이 내린 판단은 정확하고 옳았다. 빅토린느에게는 영리하면서도 사람의 감정을 격렬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뚫어질 듯 쏘아보는 눈초리나 붉은 머리카락은 도발적이면서 성적인 충동까지 불러일으켰다. 그걸 기막히게 연출한 빅토린느가 대단할 뿐이라고 수잔은 생각했다.
지난해에 에두아르 마네는 미술전람회서와 마찬가지로 가족에게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정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건 수잔의 실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잔은 마네가 모든 면에 있어서 보다 맘 편안히 지내도록 노력했을 따름이다. 절대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시어머니와 함께 가족 내에서 진정으로 화합의 기류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며느리인 수잔이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고부간의 문제는 자연 발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수잔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시어머니를 달래면서 맘을 가라앉혀왔다. 바로 이 순간까지도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인 것도 알고 보면 온전히 화목한 분위기에서 서로 웃음을 나누고자 한 의도에서였을 뿐, 에두아르를 소중하게 여긴 탓에 오로지 다정한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했을 따름이다.
보들레르의 죽음이 부부를 다시 한번 단단히 결속시키게 만들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얼마 안 있으면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한 지도, 함께 살아온 지도 어느덧 20년째 되어가기 때문이다.
비록 마네가 격심한 실패에 따른 절망감 속에 어떠한 인내심이나 그를 이겨낼 만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할지라도 수잔으로서도 남편을 위해 어떻게 할 방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낙담에 빠진 상태에서 모든 것이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그림에만 매달렸다. 이를 증거하는 작품이 바로 막시밀리언이었고, 젊은 나이에 살해당한 황제야말로 금치산자처럼 모든 것을 박탈당한 마네 자신을 표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여름 내내 한적한 불로뉴 바닷가에서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아파트를 빌려서 마네는 자신의 조각난 내면의 삶을 이어 맞추듯 「아틀리에에서의 점심 식사」를 완성해 갔다.
레옹은 이젠 떡 벌어진 어깨만큼이나 제법 큰 키를 자랑하는 씩씩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일말의 일탈한 모습도 찾아볼 수 없는, 이제는 자신의 외모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는 나이에 딱 어울리는 용모에다가 존재마저 불투명한 여느 가정의 자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림 속 안락의자 위에는 어느 시대 때의 것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투구와 칼, 총이 어수선하게 놓여있고, 커피포트를 들고 있는 하녀는 잘못하면 수잔으로 오인받을 법도 하지만, 그녀는 절대 수잔이 아니다. 에두아르 역시 이 순간만큼은 종적을 감췄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는 마네가 아니라 꾸뛰흐 화실에 드나들 때 알게 된 옛 동료다. 오귀스트 루슬랭이 우연찮게도 잠깐 들른 것을 묘사한 것이다.
검은 고양이와 노랗게 익은 레몬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 둘은 모두 마스코트나 화신처럼 마네를 상징하는 요소이자 아바타에 해당한다.
마네는 작품에 「아틀리에에서의 점심 식사」란 제목을 붙였다. 그림 그리는 일이야말로 마네의 삶에 있어서 전부라는 의미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요약한 제목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단지 바로 그와 같은 의미였다. 그림 그리는 일 말고는 다른 어떤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속내의 사정은 달랐다. 그림 그리는 일을 이제 더는 계속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무기력한 자신과 싸우는 것도 이젠 지쳤다. 가족과의 삶은 점점 중산층 부르주아 가정의 삶으로 이행하면서 고요하고 이렇다 할 변화조차 없는 너무나도 권태로운 삶이 이어지고 있을 따름이다. 그림만 그려온 마네가 이제는 아버지와 흡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로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마네에게 빅토린느는 불꽃같은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면서 동시에 불꽃이 타오르듯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가는 것조차 그리 대수로운 것은 못 된다는 것 또한 증명해 주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가족과 떨어지는 일 없이 또한 산만하게 작업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가운데 긴 여름이 흘러갔다. 마네는 단지 자신의 나이에 이런 식의 삶이 어울리지 않는다고만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