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78화
[대문 사진] 화가인 언니 에드마가 그린 베르트
10장 2
(1869-1870)
이런 상황에서 베르트 모리소가 느닷없이 나타나 마네의 온 마음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마네가 모리소와 함께 극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것도 그러한 사정에서 연유한다.
마네는 베르트 모리소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는 상태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작품이 맘에 와닿았다. 모리소가 그린 그림들은 대단히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여성이 그린 그림으로써는 최고의 수준이라고까지 극찬했다!
동료들이 그녀의 작품을 혼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네 역시도 모리소 두 자매가 그린 작품을 각기 누구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두 자매의 스승이자 당시 가장 탁월한 성공을 거두고 있던 코로조차도 베르트가 그린 그림들을 에드마가 그린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마네가 베르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루브르나 미술전람회서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때까지 두 사람이 정식으로 만난 것은 아니다.
마네가 여름휴가에서 돌아오자 팡탱은 두 사람의 만남을 적극 밀어붙였다. 루브르에서는 매일 젊은 여성 화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티치아노의 전원의 합주를 복사하기 위한 모임을 개최하고 있었다. 모임을 이끄는 이가 바로 코로와 카롤루스-뒤랑이었다.
사교계의 활량이기도 했던 카롤루스-뒤랑은 부유한 중산층 여인네들 초상화만 그린 탓에 마네를 중심으로 한 젊은 화가 집단이 노골적으로 기피한 인물이었기는 하나 그 역시 부유했으며, 나름대로 ‘현대’ 회화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었고 이들 작품을 사들이는 주 고객이었다. 그는 모리소 자매에게 몹시 반했다.
에드가 드가 역시 모임에 드나들었다. 드가는 이미 모리소 자매들을 알고 있었고 그녀들의 작품에서 탁월한 점을 발견한 탓에 그녀들을 나쁘게 평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네가 모리소 두 자매를 만나기 이전에 브라끄몽이나 팡탱, 스테방은 이미 그녀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 역시 카롤루스만큼이나 활량들이었지만, 스테방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창의성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주목을 끌 정도로 예술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스테방은 정말 누구보다도 마네의 훌륭한 동지였다.
그러한 스테방이 주변 사람들에게 두 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귀 아프도록 되풀이하는 것마저 싫증 났는지 이번에는 마네를 붙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빈번하게 언니나 동생 할 것 없이 재능이 뛰어나다는 둥, 진짜 놀랍다는 둥, 모리소 두 자매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모리소 자매의 모친인 꼬흐넬리 모리소는 프랭클린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마네를 맞이하였다. 목요일이었다. 거실에는 늘 이 집을 드나드는 로씨니, 훼리 형제, 베르트에게 혹독한 실기수업을 시키고 있는 쥘르 형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쩌다가 밀레와 우디노가 들르기도 했다. 아마도 두 자매가 그들로부터 실기지도를 받기를 원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줄여 이야기하자면, 모두가 모리소 자매들을 한가운데 두고 팔락팔락 날아다니는 나비들이었다. 5월 중순 보리수나무가 한창 꽃을 피울 때 꽃향기를 맡고 벌떼가 윙윙거리며 나는 꼴이 마네로서는 영 못마땅했다.
베르트 모리소가 관전에 해당하는 미술전람회를 처음 통과한 건 1864년의 일이다.[1] 그녀는 꺄다흐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녀의 자질이 마네 동료들의 수준에 버금가는 것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그녀 역시 작품을 전시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전시를 한다 해도 작품이 팔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런 까닭에 모리소 두 자매 역시 그림 그리며 먹고 살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비평가도 두 자매에게 주목하는 일조차 없었다. 하지만 베르트가 주변의 화가들의 사정에 주목하기 위하여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자신의 위상을 비교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처럼 동시대 작가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길 원하였으며, 그들로부터 평가받기를 원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베르트와 언니인 에드마를 위해 정원 한쪽에 아틀리에를 지어주었다. 에드마는 너무도 유순한 탓에 부모의 권유에 따라 중도에 화업을 접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딸이라서 너무 오랫동안 집에 붙박여있어서는 안 되겠다 작정한 탓이었다.
에드마는 부모가 신중하게 고른 신랑감 사내와 약혼하기에 이르렀다. 장녀였던 이브는 이미 집을 떠난 지 오래였고, 남편을 따라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프로뱅[2]에 거처를 정했다. 세 딸 가운데 막내인 베르트만이 여전히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들이 연이어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남에 따라 자신은 홀로 화가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홀로 집을 지키면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베르트는 결혼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그림 그리는 일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녀 스스로 그림 그리는 것 말고도 그녀가 애호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1] 이때 모리소 두 자매는 미술전람회에 함께 그림을 전시했지만, 이후 에드마(Edma)는 결혼과 함께 붓을 접었다.
[2]프로뱅(Provins)은 파리 남동쪽 77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중세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