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79화
10장 3
(1869-1870)
베르트와 에두아르가 정식으로 만난 건 1868년 가을이었다. 만나자마자 둘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자마자 서로에 대한 진한 감정까지 생겨났다. 두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더는 떨어져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두 사람은 그녀가 꿈꾸고 있는 둘만의 삶을 더는 이어갈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만남조차도 지속될 수 없는 관계였다. 그 무언가는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것이기도 했다. 사랑. 불가능할 뿐인 사랑.
모리소 집안은 마네의 집안과 흡사했다. 모리소 집안은 세 딸과 어린 남동생이 한 명 있었고, 마네 집안은 남자 셋이었으며, 상류층 부르주아지 집안이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사교계에서나 똑같은 신분에다 교육 수준도 비슷해서 세 딸에게는 아주 엄격한 가정인지라 이유를 불문하고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는 샤프롱을 뒤집어쓰지 않은 채 외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베르트 모리소의 모친은 아직도 젊었다. 그런 까닭에 어디를 가든 늘 세 딸을 데리고 다녔다. 집에 있을 때는 자수를 놓거나 책을 읽었지만, 루브르에서 세 딸이 역대 대가들의 작품들을 복사하며 그림 그리는 동안 모친은 이 작품 저 작품 감상하면서 많은 시간을 소일하면서 지냈다. 의심해 버릇하고 기존의 관습에 충실하면서 책임감 또한 대단한 모친을 세 딸은 어머님이라 깎듯이 불렀다.
그녀의 모친은 아주 숭고한 신앙심 탓에 자신의 종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세 딸을 제단에 바칠까도 생각해 볼 정도로 철저히 순종적이고 흠 없는 겸손한 삶을 살고 있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그녀의 본능적 욕구는 세 딸에게로 향해 그녀들이 남부럽지 않게 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녀는 너무도 경건하면서 독실한 믿음에 따라 마치 하느님 앞에 서약한 사람처럼 자신의 딸들이 그 무엇이나 그 누구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를 뜻하는 말을 아예 입 밖에 꺼내지 못하게 하였으나, 어떡해서든 자신을 포함한 세 딸에게 굴레를 씌운 무거운 사슬만큼은 벗겨주고자 노력했다.
장녀에게는 그게 가능했다. 금발의 이브는 아주 우아하고 격조 있는 품격을 지닌 탓에 테오도르 고비야흐의 눈에 금방 띄어 즉시 결혼에 이르렀다. 이브가 벗어던진 샤프롱은 다시 꼬흐넬리에게 주어졌다.
노련한 코로의 눈에는 에드마가 훨씬 장래성이 있어 보였다. 어린 베르트는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한 데다가 너무 말랐으며, 머리카락 또한 너무 검었고 낯빛까지 까무잡잡하면서 강렬하기만 했다. 그의 두 눈에는 베르트야말로 비극을 향해 돌진하는 한 가련한 영혼쯤으로 비쳤다.
그와 같은 불같은 성격이 마네에게 금방 빠져들게 만들었고 그녀 스스로도 적극적이었다. 그녀가 빠져든 화가는 너무도 유명한 탓에 가련하고도 슬픈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처럼 그녀를 버리고 떠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마네를 만나면서부터 베르트 모리소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작품 안에 마네의 그림들에게서 본 주요한 특징들이 마치 그림자처럼 드리워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망막에 고정된 마네의 작품들을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네의 고상한 실루엣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찬 그의 겉모습에 대한 이중 인화와도 같은 이러한 답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지만, 「목욕」이나 「올랭피아」가 증폭시킨 선정적인 도발성이나 스캔들이 마네를 후광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루브르에서, 오페라에서 또는 화실에서 마네는 자신이 고집한 고상한 태도를 단 한차례도 굽힌 적이 없었다. 그건 이제는 전설이 되다시피 한 아주 강력하고도 독한 유황을 품은 자신의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팡이와 실크해트 모자, 프록코트에다가 밝은 색깔의 바지, 금발에다가 정성껏 다듬은 턱수염, 장난기가 가득한 눈매에다가 늘 빈정거림이 서려있는 샐쭉한 입가. 마네가 남의 환심을 사기를 즐겼던 만큼 그만한 매력을 지닌 남자도 드물었다. 여기서 매력적인 모습으로 유혹하다란 말은 이 말이 지닌 어원적 의미에 입각해 볼 때, 멀리 떨어진 곳으로 조용히 이끌다란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보들레르의 친구였던 방빌은 이러한 마네의 모습을 묘사한 짧은 4행절 시를 짓기도 했다.
금발을 한 마네가 웃고 있다네.
그에게서 발산되는 우아함,
쾌활함, 섬세함, 모든 것이 매력적이라네.
아폴로의 턱수염 아래 그처럼
목덜미에서 발뒤꿈치에 이르기까지
군자의 기품마저 서려있다네.
사실이었다. 베르트는 혼자 중얼거렸다. 마네는 시처럼 귀족다웠고, 신사였으며, 군자였다고 말하고 다닐 참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이야기한다 해도 그녀가 마네에게서 느낀 감정에 비하면 너무도 부족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네의 진영을 선택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귀찮을 정도로 마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온갖 적의로 가득 찬 소문과 함께 충분히 마네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네의 작품들이 늘 물의나 일으킨다고 판단하여 전적으로 그의 작품을 거부한 탓에 그를 둘러싼 채 진영을 이룬 많은 화가들에게 있어서는 마네는 하나의 날카로운 송곳과 같은 역할을 하듯이 비쳤다.
베르트 모리소가 마네의 진영을 그녀의 진영으로 선택함으로써 마네는 자신을 에워싼 적의에 찬 시선에 대하여 더욱 적극적이고도 대담한 태도로 맞설 수 있었다. 루브르에서 처음으로 마네가 마치 자신의 어렸을 때 친구를 대하듯이 그녀에게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 베르트는 이에 몹시 당황하여 얼떨떨한 표정만 지었다. 그녀는 마네가 너무나도 정답게 자신을 대해주기만을 갈망했던 탓이다.
마네가 당대의 온갖 치욕을 다 뒤집어쓰고 있다 할지라도 마네야말로 탄탄한 두 어깨로 이를 모두 다 감내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고 베르트는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네에게 집중되고 있는 오명은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될 수 없다는 판단이 들기도 했다. 그러했기에 베르트는 자신을 둘러싼 귀에 익은 온갖 소문들에 대해 적절히 맞설 수 있었다.
베르트 모리소는 그 무엇에도 스스로 얽혀 들거나 이를 해명하려고 나선 것은 물론, 그에 굴복하는 것 역시 강력하게 거부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녀도 나이가 서른 살이 되는 탓에 그녀 스스로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수조차 있었던 까닭에서였다.
마네는 이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침착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화가들의 오만 불손하면서도 무례하기까지 한 태도를 모르는 체할 수는 없었다. 마네는 정반대로 적들을 진심으로 예의 바르게 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소란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기까지 했다.
마네가 들고 있는 팔레트에 오로지 검은 색조만이 가득 찬 것 또한 베르트의 속내에 감춰진 중산 계급에 속한 여자로서의 몹시도 애달픈 우수와 완벽히 일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 말미암아 마네가 앓고 있는 병은 깊어져만 갔고 그 둘의 만남 또한 금방 병을 도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