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81화

by 오래된 타자기


10장 5
(1869-1870)



과부로 홀로 살고 있던 마네 부인의 적극적인 배려 하에 팡탱은 두 집안사람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첫 저녁 모임이 있고 나서부터 두 집안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으제니 마네와 꼬흐넬리 모리소는 속물이란 점에서 서로 공통점을 지니기까지 했다. 베르트 모리소 아버지는 직업상 오귀스탱 마네와 같은 부류였으나 에두아르 마네가 피워 올린 불꽃보다도 훨씬 찬란하고 화려한 이력을 과시했다.


두 집안은 서로 가깝게 지내기를 바랐다. 두 집안을 이끌고 있는 여자들은 이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더군다나 어느 날인가를 목마르게 고대하고 있었다. 꼬흐넬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세 아들 가운데 두 명이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좋은 집안에 좋은 혼처였다. 두 딸을 시집보냈으나 아직 시집 안 간 딸이 늘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마네 집안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어머니, 세 아들들 그리고 장남 며느리 등 모든 가족 구성원들을 다 초대했지만, 레옹은 초대받질 못했다. 레옹은 사회적으로 어떤 신분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사교 모임에 드나들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더군다나 레옹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베르트를 싫어했다.


명백한 것은 두 집안사람들은 이제 완벽하게 한 집안 식구처럼 되었으며, 그들의 지인들도 그렇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두 집안이 서로 더욱 가깝게 지내기 위해서는 두 집안을 연결하는 고리가 있어야 하며, 이 고리가 되는 존재는 상대방과 사랑에 불타야 할 뿐만 아니라 한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고통스러울 정도로 두 존재들 간의 사랑이 두 집안을 굳건히 결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들 있었다.


맨 처음으로 시작된 마네와 베르트 간에 주고받은 감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던 관계로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감정은 점점 뜨거워져만 갔다. 너무도 강렬한 것이기조차 했다. 그들의 사랑은 실질적으로 두 집안 간의 사활이 걸린 문제나 다를 바가 없었다.


몇 주가 지난 뒤에 베르트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정점에 달하자 마네는 비로소 그녀가 화가란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동류의 화가. 당연히 서로 간에 물감에 대해, 작품을 어떻게 제작할지에 관해, 심지어는 액자를 무엇으로 할 건지, 또한 원근법에 관한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자연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마네는 베르트가 처음 아틀리에로 들어섰을 때부터 그녀에게 반한 상태였다. 또한 그녀가 자신이 이제까지 어떤 그림을 그려왔는지 훤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들의 만남이 절대 우연한 사건이 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녀의 미술에 관한 해박한 논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탁월한 화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신의 논리를 펼쳐가면서 그에 적합한 기준을 제시한 화가가 마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그러한 그녀에게서 마네는 자신보다 더 독창적인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봐온 화가들과는 너무나 다른 그녀의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녀는 수많은 섬광들 가운데 찬란하게 떠오르는 빛이었다! 그녀가 그린 그림들조차 그에게는 그처럼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그린 그림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그녀를 바라볼 때나 그녀가 포즈를 취하고 있을 때마다 사랑의 감정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녀의 모친이 날카롭게 그것도 신경질적으로 잔소리를 쏟아놓을 때마저도 마치 갑옷을 씌운 말처럼 두툼한 보호대를 착용한 듯이 온순한 태도만을 보이는 그녀에게서 마네는 자신과 같은 심장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녀를 껴안을 수 없는 덧없는 시간들만 흘러갔다. 몇 주, 몇 달 동안을 그는 오직 그녀를 끌어안을 수 있기만을 꿈꿨다.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랑조차도 어떤 형태로 변형되기에 이를 것인가? 마네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딴 데로 돌려야만 했다. 더 미치기 전에, 더 고통받기 전에 외출을 하고 맑은 공기를 쐬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베르트 모리소는 마네의 정맥을 막히게 하고 심지어는 폐로 흐르는 혈관조차 틀어막고 있는 납 덩어리와도 같은 존재였다. 오염된 공기가, 불순한 공기가 또한 마네의 숨을 틀어막고 있었다.


졸라는 마네에게 자신이 펴낸 ‘마네’에게 헌정한 『마들렌느 훼라(Madeleine Férat)』라는 소설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소설은 마네의 영광을 기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더욱 빛나는 존재로 만든 작품이었다. 마네는 책장을 펼쳤다. 읽기도 전에 하품만 나왔다. 그녀가 없는 상태에서는 모든 게 지겨울 따름이었다. 그는 그녀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였으나, 그녀 없이 홀로 있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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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를 위해 에밀 졸라(Émile Zola)가 펴낸 소설 『마들렌느 훼라(Madeleine Férat)』.


그녀 또한 상황이 호전되리란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네와 함께 하지 못할 때마다 기분은 하강곡선을 타고 곤두박질쳤다. 그녀는 자신의 모친에게 언니에게 닥치는 대로 화풀이를 했다. 집에서는 오직 결혼 이야기만 나왔다. 결혼식 때 입을 옷과 임신에 관한 이야기, 약혼식, 혼수에 관한 이야기들로 법석을 떨었다.


이런 지겹고도 허무할 뿐인 소란스러움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절대로 뚱뚱한 수잔이라 부르는 여자를 버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내는 자신의 가족에게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 사내였으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에게도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줄 의무가 있는 남자였다.


그처럼 주위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한 아버지를 거느린 자식들 마냥 남매끼리의 있을 수 없는 이율배반적 행동에 가까운 것이라 규정했을 뿐 아니라, 같은 혈통끼리의 사랑은 오직 그들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며, 예술가란 한 집안에서의 사랑조차도 그들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삶을 유린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그들의 삶, 그렇다! 그들의 삶은 명백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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