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고통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82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와 에바 곤잘레스



10장 6
(1869-1870)



보들레르가 운명한 뒤로 샹흘뢰리는 마네 커플에 더욱 가까워졌다. 샹흘뢰리는 마침내 마네의 고양이들을 더욱 빛내줄 책을 한 권 펴낼 수 있었다. 책에다 「고양이들의 만남을 위하여」란 제목이 붙은 마네의 석판화를 수록한 책이었다. 샹흘뢰리는 마네의 작품에 더욱 고무되어 자신의 책을 사도록 부추기는 포스터를 제작한 뒤 파리 곳곳에 책을 소개하는 벽보까지 내붙였다.


그러자 마네는 다시금 온 파리 장안을 떠들썩거리게 만들면서 사람들의 입살에 오르내렸다. 그렇잖아도 「올랭피아」때문에 ‘검은 고양이 같은 사내’란 별명이 붙은 상태였다. 말 뜻은 고양이란 짐승에게 붙은 온갖 추잡스럽고 외설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책에 게재된 작품이 아무런 색조마저 없어 그 내포된 의미가 더욱 의뭉하기까지 했던 탓이다.


판화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실려 있다. 한 마리는 검은색이고 다른 한 마리는 흰색이다. 지붕 위의 두 고양이는 네 발로 지붕을 딛고 서서 중산층인 부르주아들을 향해 코를 벌름거리며 “이봐! 이젠 2차나 가자!”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다.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고양잇과 짐승들은 세상의 모든 관능적 쾌락을 상징하는 동물들이다. 더군다나 아주 지독한 음탕함까지도 내포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1870, Affiche pour l'album Les Chats de Jules Champfleury, comprenant une lithographie de Manet.jpg 샹흘뢰리(Chamfleury)가 펴낸 『고양이들(Les Chats)』이란 책에 마네의 「고양이들의 만남을 위하여」란 제목의 판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870.


오로지 단식만을 생각한 듯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아무도 만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있던 베르트가 드디어 언니 에드마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말하는 건 쉬워도 행동하는 건 어렵듯이 온 파리 거리마다 포스터가 나붙은 탓에 길을 걸어 다니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더군다나 헛되이 사랑하는 꿈을 저버려야 했던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를 헐뜯는 소리만을 귀 아프게 들어야만 했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발코니」 이후로 두 사람은 서로 만나는 일 없이 지내다가 마침내 만남을 시도했다. 그러나 사랑의 상처는 깊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가운데 마네는 그녀에게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 하니 다시 한번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는 그녀 혼자만 그림에 담고 싶다는 부탁이었다. 화폭에 그녀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함께 그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비참하게도 그녀를 모델로 하여 그림 그리는 일조차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에드마와 그녀의 모친에 이어 베르트에게까지 샤프롱이 강요된 탓이었다. 그녀는 그녀를 수행하는 사람 없이는 어디건 간에 외출할 수가 없었다. 에드마는 얼마 안 있으면 그녀를 따라다닐 수 없을뿐더러 더 이상 그럴 시간도 없었고 여유도 없었다. 모든 게 끝났다. 에드마가 약혼한 탓이다.


참으로 별난 일이 에드마는 아돌프 퐁티용과 결혼할 참이었다. 이 마네의 동지나 다를 바 없던 인간은 마네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았을 뿐 아니라 마네보다도 더 바다를 사랑한 남자였다.


저 아득한 과거에 마네가 리오를 향해 항해할 때, 곁에서 마네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던 이가 바로 아돌프 퐁티용이었다. 공교롭게도, 아니면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후로도 퐁티용은 마네와 계속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지냈으며, 마네가 17살이었을 때 선상에서 목탄으로 그린 그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퐁티용은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해군으로 선상 생활을 이어오는 중에 계급도 높아져 이제 당당히 모리소 가문의 여자와 결혼에까지 이른 것이다. 정말 뜻밖의 뜨거운 재회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리소 집안과 마네 집안 간의 유대가 더욱 단단히 결속되어 가는 와중에 불행하기만 한 두 남녀의 사랑이 일찌감치 파멸에 이를 함정 또한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베르트의 모친인 꼬흐넬리는 뜨개질을 하거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독서를 하곤 했는데, 이와는 달리 마네의 아틀리에는 수도원 같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녀의 딸은 마네가 그녀와 사랑을 나누듯이 화폭을 채워가는 동안 그로 인하여 점점 쇠잔해져 갈 뿐이었다.


마네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는 자신을 주체하기도 힘들었다. 마음이 산란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산만하게만 여겨졌다. 마네 역시도 귀스타브에게 속내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막내인 귀스타브는 어느새 변호사에다 그가 설립한 정당의 사무총장 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귀스타브는 이런 시대에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늘 주장해 오던 터였다. 정치야말로 마네 집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흥분을 일으키게 만든 요소였지만, 차라리 당시의 프랑스는 도처에서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귀스타브는 그런 마네를 런던이란 상호를 간판으로 단 카페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귀스타브의 단짝인 감베타와 어울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도모하자고 진지하게 논의를 거듭했다. 마네가 그림을 그리는 일처럼 정치는 귀스타브에게 회화와 같은 차원의 것이었다.


너무도 피곤한 가운데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던 탓에 마네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른 화제로 바꿀 만한 여력조차 없었다. 오로지 그는 자신의 열정의 힘만을 믿고 있었고, 그 열정만이 자신을 일깨우리라 굳건히 믿고 있었을 따름이다. 아주 불행한 - 사랑.


유일하게 스테방만이 마네와 그의 새로운 뮤즈 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모든 정황을 이해했다. 스테방은 자주 한 사람씩 만나 저녁을 함께 하곤 했던 탓에 너무나도 상세히 두 사람 간에 벌어진 일들을 알고 있었다. 더하여 친구로서의 세심한 배려로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친구의 비위를 맞추려고까지 노력했다.


마네는 스테방이 보들레르에게 한 호의와 따뜻한 배려를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시인의 임종이 마네와 스테방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어준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이젠 스테방이 마네를 위한 행동에 나섰다. 베르트의 고상함에 푹 빠져있는 마네를 기분전환 시켜준답시고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게끔 애쓴 것이다. 스테방은 마네에게 단지 기분전환을 위해 애쓸 거라고만 이야기했다. 스테방은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과장해서 덧붙이지 않았다. 스테방의 말은 그처럼 상냥하면서도 호의에 넘친 말에 불과했다.


스테방은 어느 날 기요 가에 위치한 마네의 아틀리에에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이름이 에바 곤잘레스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를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화가라는 직업을 택하기 위하여 미술실기를 지도해 줄 수 있는 선생을 찾고 있었다.


에바는 문예가협회를 이끌고 있는 삼류문사의 딸이었다. 부친은 상당한 권력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잘나가는 예술가들의 사교 모임에 자주 얼굴을 디밀 수가 있었다. 부친이 집에서 개최한 사교 모임에서는 상당수의 예술가들이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만일 이 영원히 추방당한 친구가 제안한 바가 그런대로 쓸모 있는 것이라면, 불타는 사랑에 빠진 마네로서는 기분전환 삼을 만한 일일 수도 있었다. 마네는 스테방이 자신에게 한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렇기에 다만 오늘 이 순간까지 모든 이를 대상으로 자신이 거부한 것을 제외하고는 친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마네는 스테방이 데려온 에바 곤잘레스를 단지 제자로만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것이다. 오로지 제자로서만.


과연 마네에게 에바는 다른 어떤 존재는 아니었을까? 사랑에 빠지면 자신의 본능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 남자다. 에바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네는? 마네는 베르트에 대한 복수심에 불탔다. 아니 모두가 그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들의 사랑이 불가능할 뿐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찾고 있었다. 당연히 그랬다. 마네는 에바를 끌어안았다. 서로 애정에 빠진 사람들처럼, 울고불고하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에바는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아가씨’였을 뿐만 아니라 예쁘장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를 마네는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녀와 정념을 불태우는 짓도 금방 그만두고 말았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얼굴을 담은 인물화도 질질 끌어 애석하게도 전혀 진척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그녀의 얼굴을 담은 인물화를 다음 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고 작정했다.


당연히 베르트를 앞뒤로 호위하고 아틀리에에 나타난 모리소 집안 여인네들이 에바의 아양 떠는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보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에바를 그린 인물화는 늘 완성되지 않은 채로 한쪽 구석에 놓여있었다.


에바를 담은 화폭은 베르트를 그린 인물화가 중도에서 중단된 것을 암시하지만, 그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베르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갑절로 늘어나면서 화려하게 꽃 피워질 것을 암시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아틀리에에 온 모리소 집안 여자들은 에바를 그린 그림을 보고 가련한 에바를 비웃었을 뿐만 아니라 에바 역시 마네야말로 참으로 부지런하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확신했던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붓질이 참으로 더디다는 인상을 받았다.


에바는 마네를 포기하거나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마네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마네를 마음속으로 좋아해 왔고 존경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마네와의 인연이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신비한 비의를 처음 접한 사람처럼. 마네는 이미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탓으로 또다시 사랑의 정념에 불탔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에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녀만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전히 마네에게 그렇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다. 더하여 그가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여 준 것 또한 진정으로 감사해했다.


에바는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진정한 애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슨 일이 닥쳐도 다 받아들였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녀 스스로 이겨낼 수 있었다.


짐짓 점잔을 떨려 노력하였으나 에바는 그녀가 속한 사회 계층에서조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근본적으로 그 누구와도 비길 데 없이 자유분방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모리소 집안보다 훨씬 세련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던 탓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예술가의 딸이었기에 부친이 너무도 자유분방한 그녀의 품행을 그저 용인해 준 덕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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