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84화
[대문 사진] 마리 자프레도(Marie Jaffredo)의 일러스트레이션
10장 8
(1869-1870)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9년에 개최된 미술전람회는 마네의 회화적 논리와 주장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덕분에 관람객들은 작품을 보면 볼수록 마네의 그림과 점점 친숙해져 갔다. 반감이나 어리석음 또한 편견 같은 것이 사라진 대신 마네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분위기마저 조성되었다. 마네의 작품들이 자주 내걸리게 되면서 그와 같은 분위기 또한 점점 더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마네의 작품을 이제까지와는 달리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 시도를 반영했다.
새로운 시선으로 마네의 작품을 바라보고자 한 것은 결국 마네의 작품에 길들여감을 의미했다. 마네의 그림은 관람자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더욱이 드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독자가 작가에게 항상 동일한 수법으로 제작된 작품만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짓일뿐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드가 역시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만 마네의 회화 논리를 수용했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마네는 실의에 빠졌다. 베르트는 마네가 최근에 그린 그림들 가운데에서 「졸라의 초상」을 선호했을 뿐만 아니라, 오직 이 작품만이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베르트를 빛나게 한 작품은 다름 아닌 「발코니」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트 모리소는 자신이 마네의 작품 속에 한 인물로 등장한 작품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점이 마네가 실망한 주 요인이었다.
이해에 개최된 미술전람회에 피사로와 르누아르를 비롯하여 퓌비 드 샤반느와 귀스타브 모로와 카롤루스 뒤랑 역시 모습을 나타냈다. 늘 그렇듯이 세잔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모네와 시슬레 역시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이번 전람회만큼은 그들에게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던 조직위원회가 엄격하기 이를 데 없는 전람회 심사 규정을 까다롭게 적용해 온 것과는 달리 심사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한 일련의 조처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마네는 조직위원회가 개최한 회의에 동생은 물론 감베타와 동행했다. 그들은 열렬히 투쟁했다. 마네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조형예술부서 행정기관을 향한 마네의 태도는 격렬하기만 했다. 그들은 과연 그들이 목표한 바를 성취할 수 있을까?
마네가 판화로 제작한 「고양이들의 만남」이 거둔 성공은 확실히 마네가 이전에 제작한 상궤를 벗어난 작품들까지도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올랭피아」를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마네가 제작한 고양이 판화 그림을 수록한 책은 계속 발간을 거듭했으며, 호화 장정으로까지 제작되었다. 마네 역시 화려한 조명을 받았을 뿐 아니라, 책 표지를 장식한 지붕 위를 어슬렁거리던 검은 고양이가 이제는 지상으로 내려서기까지 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올랭피아」 역시 화려한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마네가 애써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작품들까지도 주목을 받기에 이르러 발코니를 장식하고 있는 녹색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일석이조였던 셈이다. 모든 게 스캔들 덕분이었다.
마네에게 있어서 베르트를 향한 연정은 아직 식지 않았지만, 그녀를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는 단지 화가들 모임에 우르르 몰려든 동료들 가운데 그녀가 끼어있음을 발견하였을 따름이다. 마네의 가슴은 점점 타 들어가기만 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 가슴은 방망이질 쳤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를 흠모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끌어안고 싶어 몸부림쳤다.
하지만 두 사람 간에 얽혀있는 우정 관계는 오히려 둘이 결합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제2제정 하의 살롱을 중심으로 한 퇴폐적이면서도 달콤한 사교 모임에 젖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정상적인 행동에서 벗어나는 즉시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인간관계마저도 완전히 붕괴되고 말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그저 화가로서의 직업에 관한 대화만 주고받았다. 그녀는 모여 있는 이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를 화제로 삼을 때마다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카페에 모여 있던 이들은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베르트에게 진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카페에 드나드는 이들 가운데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내건 사람은 아주 드물었던 이유도 작용했다. 물론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베르트 역시 카페에 드나드는 건 관례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문제이기는 했다. 마네조차도 아내에게 그와 같은 일을 문제 삼았던 적이 있었다.
마네는 여전히 으젠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아우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으젠이 수잔과 너무 가깝게 지낸 탓이었다. 마네는 늘 으젠의 판단을 의심했다. 그는 또한 프루스트가 비난하는 것마저 두려워했다. 뒤레 또한 확실치가 않았다. 팡탱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팡탱은 결혼에만 꽂혀있을 뿐이어서 수잔을 너무도 좋아했다. 피에르 프랭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었지만, 지나칠 정도로 수잔의 동료인 화니에게 빠져있는 상태였다. 드가만이 남았다.
드가는 그렇다. 그에게는 신앙도 윤리도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게 화가 난 상태였다. 그 와중에 드가가 마네와 어울려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드가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수잔을 스케치했다.
마네는 소파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수잔의 피아노 소리만 듣고 있었다. 그들 저녁의 평범함. 집에 돌아온 드가는 분주히 친구에게 줄 그림을 그린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림이 완성되자 드가는 그걸 마네에게 전해주었다.
그림을 본 마네는 마치 정물화처럼 달콤한 분위기를 묘사한 그림이라고 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마네의 초대를 받은 드가는 친구뿐만 아니라 친구의 여자친구인 여류화가를 발견하고는 몹시 놀라 자신의 그림을 찢어발겼다! 찢어발긴 것만 아니라 아예 산산조각 냈다. 그는 마네의 아내가 집에 없는 것에 화가 나서 갑자기 돌발적인 행동까지 벌인 것이다.
드가는 그림 속에서 아내의 화가를 지워버린 건 물론이고 자신의 친구마저도 없애버렸다. 그것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다른 화가가 그런 짓을 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 역시도 미친 짓이라 했을 게 뻔했다!
성질을 못 참은 드가는 엉망진창이 된 그림을 손에 들고는 저녁도 들지 않은 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몇 날 며칠 걸려 그림을 다시 복원한 드가는 마네와의 우정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림을 다시 마네에게로 들고 갔다.
마음으로 진 빚 탓도 있었고, 또 마냥 마네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드가는 그처럼 자신의 헛된 꿈을 담은 그림을 들고 간 것이다. 자신이 성질을 못 참고 화를 낸 것마저 무익해지고 말았다. 이후로 두 사람은 스스로를 변명하려고만 들었다.
마네는 더는 드가 집을 찾지 않았다. 자꾸만 드가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건 불행을 자초할 뿐이라고 들먹이곤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드가는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여인의 특징까지 열거하면서 그녀가 너무 추하고 상스럽다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드가의 말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애달픈 것은 드가가 마네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마네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체 드가는 마네로 하여금 무얼 주지시키려 한 것일까? 마네는 단지 그가 결혼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한 여인을 사랑했을 뿐이다. 그녀를 연정에 불타 맹목적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남몰래 은밀히 사랑을 즐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했을 따름이다.
상황은 분명하다. 끔찍하고 불가능한 사랑이긴 하지만,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했다. 그는 수없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노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그녀는 더 마음을 차지하고 들어앉기만 했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때마다 마네는 아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내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이로써 탄생하기 시작한 비열하기 짝이 없는 심정으로 그린 그림들이 1869년부터 1870년까지 계속되었다. 마네는 그처럼 드가를 꼴 보기 싫어한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아내를 화폭에 담아 갔던 것이다. 고통이 마네를 단련시켰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