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85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 베르트 모리소, 1873



10장 9
(1869-1870)



마음을 딴 곳으로 돌릴 목적으로 마네는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이때 유난히 검은색 사용이 눈에 띌 정도로 늘었다. 바지유와 함께 게르부아 카페에서 저녁을 함께 하는 동안 마네는 바지유에게 드디어 속내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가 단지 기분 전환을 위해 에바 곤잘레스와 놀아났다는 가증스럽고도 역겨운 이야기였다.


바지유는 마네의 그림과 그와의 우정에 열광하고 있던 참이라 마네가 다시는 그와 같은 절망적인 사랑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따뜻한 위로만 건넸다.


팡탱은 누구나가 익히 알고 있는 화가 집단을 담은 그림을 완성하는데 골몰해 있는 중이었다. 마네를 둘러싼 화가들이 또다시 팡탱의 붓질로 탄생한 그림 속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Henri Fantin Latour, Ecole de Batignols, 1870.jpg 앙리 팡탱-라투흐, 「바티뇰 아틀리에에 모인 화가들을 위하여」, 1870. 그림 왼쪽부터 쇨데레, 르누아르, 졸라, 매트르, 바지유, 모네, 아스트뤼크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 속의 얼굴들은 그처럼 여전히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화가들의 모습을 생생히 담은 것이며, 우정을 과시하고 있는 모양새다. 팡탱이 그린 이 그림은 화가가 좋아하는 음악가 모두를 묘사한 것이면서 동시에 테이블을 둘러싸고 모여있는 시인들 모두를 표현한 것이고, 당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가들 모두를 한자리에 결집시킨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앙리 팡탱 라투흐의 붓질은 그 스스로가 당대의 역사가가 되기 위한 방법이었다.


저 바티뇰의 화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그곳, 꽁다민느 거리에 위치한 커다란 화실에서 마네는 이젤에 올려진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마네의 등 뒤로 모네와 르누아르의 모습도 보인다. 팡탱은 일종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그들을 묘사했다.


마네는 이들의 수장으로 묘사되었다. 그 자리에 누벨 아텐느의 사회자인 자샤리 아스트뤼크도 얼굴을 내밀고 있으며, 마네를 위하여 정색하고는 포즈를 취했다. 마네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뾰족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이젤 앞에 앉아 한 손에는 붓을 쥔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료 화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반면 마네가 앉아있는 곳을 중심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동료들이 공손하면서도 엄숙한 태도를 취한 채 서있다. 쿠르베에 필적할 만한 이들을 찾아 프랑스에 온 독일 화가인 오토 쇨데레, 공증인처럼 잘 차려입은 연미복에다 모자까지 눌러쓰고 다니길 좋아하던 오귀스트 르누아르, 또다시 스캔들을 일으킨 『내가 증오하는 것들(Mes Haines)』을 펴내면서 회화예술의 대변자로 거듭나기를 꿈꾸던 에밀 졸라, 시청 공무원이자 르누아르와 관계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참견하고 달려드는 에드몽 매트르, 성소의 주인이자 아주 젊은 모습으로 다른 이들보다 키가 훨씬 큰 프레데릭 바지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클로드 모네.


요약하면 마네는 안뜰 방향에 위치해 있고, 모네는 복도 쪽에 서있는데, 기묘하게도 새로운 회화의 장을 펼쳐갈 주인공들을 묘사한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자들은? 이 역시 기막히게도 그림 속에 여자들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게르부아 카페에서 이들은 마네가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가는 걸 지켜보면서 마네를 돌본다고 서로 교대할 정도였다. 브라끄몽과 바지유는 마네를 절대로 혼자 놔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강구하기 위한 방안까지 논의했다. 마네가 막다른 골목에 처한 것이 분명해 보였던 탓이다.


마네는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사 같기만 했던 수잔은 그가 위중하니 건강을 해칠 만한 어떠한 것도 자신의 아들에게 요구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시어머니의 말을 납득하고 그대로 따랐다.


현대 미술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마네의 명성을 위해서나, 또한 한 여인에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방법으로서나 그에 관한 모든 일을 비밀에 부치는 것만이 절실했으며, 이 불행한 남자를 무거운 정적 속에 가둬놓는 것만이 자신이 저지른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모두가 생각했다.


미술전람회 측은 온갖 치사하고도 우매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마네의 작품을 거부하고자 작정했지만, 그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네를 심사에서 떨어뜨리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마네는 다시 한번 당당히 관전을 통과했다. 그런 까닭에 화가들 사이에 끼어있는 베르트 모리소를 만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가들은 각자 베르트 주위를 팔락거리며 날아다니는 꼴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꾀어보겠다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꼬락서니가 영 맘에 차지 않았다. 하기는 그녀가 그들 대부분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난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성 잘 내고 여자를 싫어하던 드가까지도 “예쁘고, 착하며 실력까지 갖췄네.” 말할 정도였다. 과연 플라토닉 한 사랑 다운 표현이었다!


그녀를 보지 않으면 고통스러웠고 그녀를 봐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네가 앓고 있는 병은 약도 없었다. 오직 베르트를 홀로 만나야 할 판이었다.


마네가 항상 에바 곤잘레스를 그린 인물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인물화는 에바에게 약속한 것이자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에바에게 더욱 진중해진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에바를 잠시 껴안고 난 뒤부터 그녀와는 잘 아는 사이가 되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좋은 친구가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에바는 마네를 좋아했기에 마네가 자신의 첫 애인이 되긴 했지만, 그가 결혼한 남자라는 걸 잊지 않았고, 그가 그녀를 위해 절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마네는 에바에게 오직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존재였을 따름이다. 에바 역시 다른 어떤 친구보다 마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사실이다. 그녀는 그의 제자였을 뿐 아니라 친구이기도 했다. 그 둘은 서로 합의하에 포즈를 취하다가도 서로 끌어안고 나뒹굴면서 성적 쾌락에 젖어들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마침내 그녀의 모습을 담은 인물화가 완성되었다.


1869-1870, Portrait d'Eva Gonzalès.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에바 곤잘레스(Eva Gonzalès)」, 1869-1870.


늘 그렇듯이 마네는 불로뉴 쉬흐 메흐에서 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호텔에서 지냈다. 엄밀한 의미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야만 하는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호텔에서조차 홀로 지내기가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는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에두아르 마네, 「불로뉴 쉬흐 메흐 항구의 달빛 밝은 밤(Clair de lune sur le port de Boulogne Sur Mer)」, 1869.


1869, 1872-73, Bateaux en mer, le soleil couchan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해 지는 바다에 떠있는 배들(Bateaux en mer, le soleil couchant)」, 1869.


1869, Le Départ du vapeur de Folkeston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폴크스톤 증기선의 출항(Le Départ du vapeur de Folkestone)」, 1869.


1869, Sur la plage de Boulogn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불로뉴 쉬흐 메흐 백사장(Sur la plage de Boulogne Sur Mer)」, 1869.


1869, La jetée de Boulogne 2.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불로뉴 쉬흐 메흐 포구 풍경(La jetée de Boulogne Sur Mer)」, 1869.


1869, Marine 1.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돛배(Marine)」, 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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