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질 수 없는 사랑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86화

by 오래된 타자기


10장 10
(1869-1870)



불로뉴 쉬흐 메흐에서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마네는 또다시 친구들과 어울렸다. 동료 화가들과 어울려 다시 한번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싶었던 탓이다. 가능하면 많은 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자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왕이면 자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기까지 했다.


그런 연유로 게르부와 카페는 마네를 위한 제2의 아틀리에로 자리 잡아갔다. 기요 가에 위치한 아틀리에서는 좀처럼 분위기가 달구어지기가 어려웠기에 게르부와 카페처럼 친구들을 만나기에 좋은 곳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적한 심정이 그렇잖아도 심약해 질대로 심약해진 그를 다시 엄습했다. 그에게는 오직 동지애만이 필요했다.


매일마다 카페에 하루 종일 죽치고만 있을 순 없었다. 두 차례 아니면 어쩌다가 세 차례 정도 친구들이 카페로 찾아온 걸 제외하면 늘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울적한 심사도 쉽사리 가라앉질 않았다.


매번 베르트를 볼 수 있었던 탓에 언제든지 그녀를 향한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만일 그가 다시 그녀에게 작품의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그녀 또한 제의를 받아들일 정도로 그처럼 열렬히 마네에게 빠진 상태라면?


대신에 그녀는 지난번처럼 그녀가 취했던 포즈와 같은 자세로 여전히 상대방을 쏘아보는 듯한 눈길로 포즈를 취하겠다고 그에게 고집 피울 수도 있었다. 아틀리에까지 찾아온 마네의 모친과 아내인 수잔이 미술전람회에 관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기 때문이다. 마네와 베르트는 서로에게서 고통만을 느낄 뿐인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제어할 수 없는 충동적 욕구에 못 이겨 마네는 베르트의 모습을 담은 화폭을 다시 손질하기만 했다. 원래대로 다시 그림을 그렸다가 고치고 또 고치고 그녀에게 어떤 포즈를 취해달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심정을 대변하듯이 붓을 쥔 손은 갈팡질팡 심하게 떨렸다.


그가 멈출 때마다 그녀는 소리 지르고 그가 그림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녀는 그를 측은하게 여겼지만,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에서 오직 그녀를 껴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더욱이 두 사람을 가로막고 나선 또 다른 강력한 요인이 발생했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그림은 원상태로 미술전람회에 출품해야 할 판이었다.


그 와중에 뒤랑티가 기고한 걸로 보이는 <파리 저널>에 실린 기사를 접한 마네는 극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를 단 게 비위에 거슬렸다.


“마네 씨는 굴 껍데기에 발이 찔려도 꾹 참아야만 할 정도로 고달픈 철학자마냥 자신의 그림을 전시한 것 같다. 천사들의 부축을 받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 그림조차도 수채화로 그린 그림에다가 덧칠을 한 것 같은 인상을 줄 뿐이다.”


아주 거칠기 짝이 없었다. 뒤랑티가 자주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한 이야기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친구인 그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그렇게 모진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뒤랑티가 게르부와에 모습을 나타내자 마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에게 거칠게 달려들었다. 반갑다는 인사도, 이렇다는 말도 없이 느닷없이 따귀를 후려쳤다. 한 번 덤벼보라는 뜻이었을까?


그게 확실했다. 한 번 대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뒤랑티는 마네에게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듯이 마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벨라스케즈나 고야를 너무 좋아했던 탓에 몸에 너무 헐렁한 옷차림처럼 그의 발걸음에 족쇄를 채울 정도로 ‘스페인의 탁월한 작품’에 대한 괴벽까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 또한 보들레르의 거대한 바다갈매기인 알바트로스를 꿈꾼 탓일까?


따귀를 후려친 것은 그와 대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컨대 쌍방 간에 누군가 피를 봐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다음 날 오전 11시에 생제르맹 숲에서 둘은 또다시 격돌했다.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먼저 칼을 휘두르려고 하지는 않았다. 뽑아 든 칼은 도로 칼집에 넣고 그들은 단지 서로를 노려볼 뿐이었다!


마네가 뽑아 든 칼이 뒤랑티의 오른쪽 가슴을 살짝 스쳤다. 아주 가벼운 상처였다. 뒤랑티가 겨눈 칼은 마네의 왼쪽 가슴을 스쳤다. 체면을 구길 만큼 싸움은 계속되지 않았다. 그들은 금방 서로 화해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지 않았던 탓일까?


마네는 뒤랑티가 발에 잘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무 낡아 해진 신발을 신은 탓에 발이 아파 실성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신발을 주고는 맨발인 채로 파리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전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카페에서 서로 얼싸안고 축배를 들었다. 결국 뒤랑티가 문제 삼은 것은 마네의 작품 스타일이었고, 그들 동료들 모두가 마치 한통속인 것처럼 마네와 동일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갑작스러운 언쟁으로 뒤랑티는 성격이 과민할 정도로 성 잘 내는 사람을 거꾸로 불신하고 경계하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마네의 작업에 대해 보다 주의를 기울여 면밀한 접근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만일 그들이 만사를 제쳐두고 서로 화해하지 않았다면, 정치와 마찬가지로 역사마저도 그들을 다시 한번 결집시키게 만들었을 것이다. 동일한 노선을 띤 진영에서 각자가 저항의 수단으로 완벽히 무장한 채 말이다.


이 바꿔 신은 신발은 그들이 예견하고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었다. 그들은 저 멀리로부터 군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처럼 오로지 나폴레옹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전쟁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심각하게 고민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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