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87화
11장 1
(1870-1871)
오! 내 사랑했던 그대여, 오! 그걸 알고 있었던 그대여!
- 샤를 보들레르
에바 곤잘레스를 그린 인물화가 이젤 위에 놓인 채로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즈음 에두아르 마네는 또다시 베르트 모리소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인물 초상과 토시를 신은 인물화에다 몇 점의 석판화까지 제작했다. 전과 같이 이번에도 마술을 부리고자 시도했으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네는 끊임없이 베르트 모리소의 내면을 파고드는 그만의 사랑의 열정으로 그녀를 꼼짝 못 하게 가둬놓고자 시도했지만, 그녀에게 애정을 고백할 기회조차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고해성사와 같은 사랑의 고백이야말로 마네와 베르트 이 두 사람 모두를 위해서는 끔찍한 일이기만 했다.
포즈를 취해야만 하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오직 서로를 바라보면서 서로의 속내만 살폈다. 휑한 아틀리에에는 베르트가 어머님이라 깍듯이 부르는 모친이 달가닥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수다를 늘어놓았을 뿐,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감마저 감돌면서 팽팽한 기류 또한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금지된 사랑에 대한 혹독한 대가이기만 했다.
때 이른 봄이 찾아왔다. 마네와 모리소 양쪽 집안에서는 저녁 음악회 모임이 자주 열린 탓에 두 사람은 양쪽 집안을 두고 이리저리 오갔다. 음악회가 열릴 때마다 가족들은 당연히 마네가 아내인 수잔을 대동하고 나타나리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피아니스트로 새로이 저녁 모임에 등장한 수잔은 홀로 음악회를 이끌어나갔다. 매번 멋진 연주 솜씨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실력 또한 이제 어디 나무랄 데가 없이 완벽하기만 했다. 수잔은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가를 위해 이런 기회를 통하여서나마 감동적인 연주를 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속내에 자리한 심정은 남편을 거느리고 저녁 모임에 참석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처지를 대신한 것에 가까웠다.
베르트는 항상 저녁 모임에 모습을 나타냈다. 봄날의 음악 축제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을 정도였다. 몇 번 두 사람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단 둘이서만이 애타는 사랑의 괴로움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모든 면에서 그들의 예술을 북돋아주는 활력소였다.
1870년 미술전람회에서 마네는 일생일대의 대결을 펼친다. 마네는 심사위원들의 비위나 맞추려고 시도한 적도 없거니와 일반 대중 역시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 적도 없었다. 관전 개막식 날 마네는 두 눈으로 베르트의 작품을 확인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자신의 작업과 그녀가 작업한 내용이 어떤 관점에서 차이가 나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한 걸음이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그녀의 작업에 자신이 몰입당하지는 않을까 조바심쳤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예전의 보들레르의 작품에 대한 선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녀야말로 새로운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화가라는 사실이 마네를 움직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던 베르트는 전시장 문을 닫을 때쯤에서야 겨우 모습을 나타냈다.
자샤리 아스트뤼크를 그린 「음악 수업」은 심심풀이로 그린 그림이긴 하나 마침내 드가와 화해에 이른 마네의 우정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그림이다.
비록 「에바를 그린 인물화」가 무미건조한 작품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그걸 위해 마네는 고생깨나 하면서 작품을 완성하느라 진땀마저 흘렸다. 미술전람회 출품 마감 시일을 8일 앞둔 시점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과연 출품해야 하나 마나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그림을 출품하자마자 관전 심사위원회는 대뜸 아무런 이의 없이 작품을 통과시켰다.
그림이 전시장에 걸린 날 「발코니」의 주인공이 홀연히 나타나 마네는 깜짝 놀란 모습으로 두 눈을 치켜뜬 채 베르트 모리소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를 그녀는 본체만체하면서 지나쳤다. 그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맘이 상한 마네는 전시가 끝나자마자 에바에게 그녀를 담은 그림을 기증했다.
“내 두 눈으로 더는 그 사람을 지켜볼 일은 없을 것이다.” 베르트는 독한 마음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비록 뒤레가 마네를 상탄하긴 했어도 뒤랑티는 그에 대해 혹평을 하지 않았던가?
“미술전람회를 통틀어 주목을 요하는 작품은 오로지 한 사람 마네가 그린 그림뿐이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마네의 작품만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다른 작품들과는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을뿐더러 심지어는 상궤에서 벗어난 탓에 실소마저 금할 수가 없다.”
“자! 보라구! 그들의 비위에 거슬린 게 틀림없어. 아마도 혹독한 시련이 따를 것이야.” 베르트가 덧붙였다.
프라고나의 후예답게 베르트는 가끔은 작품의 새로운 독창성 앞에서 판단이 흐려지기도 했다.
“오 그래요. 드가가 표명했듯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간혹 그가 바라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법도 있겠지요. 몇 해가 지난 뒤에는 현대 화가들도 과잉현상을 초래할 테고 그 덕분에 심사위원회도 그와 같은 현상에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겠지요. 대중은 그들 마음대로 작가들을 향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가 없어요. 오직 완성된 작품에 보조를 맞춰가며 이해를 증진시켜 갈 뿐이지요. 미술전람회에 선발되는 작품 수가 점점 증가하면 자연 우리 예술가들 또한 그에 고무되어 선발에 따른 심적 부담감도 줄어들 것은 분명해요.”
마네에게 이처럼 살갑게 끼어들어 참견하고 나선다는 건 앞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까? 교만한 태도로 위장할 수밖에 없는 드가의 생각은 결국 옳았다.
“대중은 아무것도 듣지를 못해. 볼 수도 없고. 그럼에도 자네는 대중에게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일러주려 하지 않는 게 문제야. 심사위원들은 우리에게 총질을 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있나 하고 우리 뒤를 샅샅이 뒤지기까지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