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89화
[대문 사진] 스당에서 나폴레옹 3세의 군대가 포로로 붙잡힌 것을 묘사한 오노레 도미에의 삽화
11장 3
(1870-1871)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아래 나른하게 여름휴가를 즐기는 가운데 7월 19일 빛바랜 문장에 다시 금박을 입히겠다는 꿈에 부풀어 나폴레옹 3세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선포한 지 한 주도되지 않아 전투에서 대패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쯤에서 물러서는 것조차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황제는 9월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스당까지 빼앗긴 상태였다.
그 와중에 파리에 머물러있던 귀스타브는 가족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긴급히 타전했다. 8월 7일이 되어 에두아르는 파리에서 귀스타브와 조인했다. 전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동생인 귀스타브가 누구보다 정치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터라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를 상의하기 위한 조처였다.
아! 슬프기만 하도다. 프랑스가 유럽의 절반에 해당하는 국가들과 전쟁을 벌이자 금방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 어느 나라도 프랑스에 가담하려 들지 않았다. 프러시아 군대에 저항할 군대를 재편성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9월 2일 스당이 무너지면서 황제는 포로로 붙잡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9월 4일이 되자 감베타는 공화정을 선포했다. 다음 날이 되자 프랑스 문 뒤에 웅크리고 숨어있던 빅토르 위고가 스스로 원한 19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의기양양하게 개선했다. 레옹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같은 날 마네는 가족들을 부랴부랴 파리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신시켰다. 숨어 지내기에는 피레네 산맥이 가장 적당해 보였다. 피신한 다음 날, 으제니, 수잔 그리고 레옹은 피레네 산맥 아래 위치한 올로홍 생트 마리로 줄달음쳤다. 레옹은 파리에 머무를 수 있었지만, 아이가 파리에 있는 걸 원치 않았다.
레옹을 떠나보내면서 마네는 청년으로 자란 자식에게 이제야말로 가족을 돌봐야 하는 건 물론 가족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엄숙하게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허송세월 하면서 청년으로 자란 레옹은 아무 생각도 없을뿐더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을 한답시고 레옹이 드 가(de Gas) 집안이 운영하는 은행 일을 때려치운 지도 오래되었다. 레옹의 흥미를 끌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게 지겹고 따분할 뿐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한창때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 대부는 대자인 아이를 절대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도록 말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이의 철없는 짓을 말릴 만한 권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가족들을 피신시킨 뒤, 어느 날 아틀리에를 폐쇄할지 말 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네는 일단 그림들을 어디다 따로 보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아틀리에가 있는 기요 가의 건물 지하실은 확실히 장담할 수가 없었다. 생 페테르스부르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지하창고도 비좁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 끝에 친구 뒤레가 소유하고 있는 지하창고에 그림들을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먼저 그곳에 보관하기 위한 그림들의 가격을 매긴 목록을 작성했다. 「올랭피아」, 「목욕, 또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 「기타 치는 사내」, 「발코니」, 「칼을 찬 아이」, 「롤라 데 발렌시아」, 「달빛 밝은 밤에」, 「독서, 또는 책 읽어주는 사내」, 「토끼」, 「정물」, 「스페인 무용수」, 「과일들」, 「베르트 인물화」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보관하기 전에 리스트를 작성했다.
뒤레가 소유한 지하창고는 작품을 숨기기에 아주 적당한 그리 번잡하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넓고 높은 둥근 천장을 한 탓에 그림 보관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파리에 곧 총격전이 벌어질 것이 뻔한 탓에 작품들을 한 군데 보관할 수 있기에는 그보다 더 적절한 곳이 없을 듯싶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손에 무기를 들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마네는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섭도록 두려운 그 무엇’이 닥쳐오고 있었다. 프러시아 군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마네 형제들은 파리에 남아 죽을힘을 다해 파리를 지키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저 허풍이나 떠는 족속들과는 달리 삼 형제는 군복까지 갖춰 입고 외국으로 도망치기에 바쁜 비열한 인간들에게 사정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훗날 마네는 자신이 비난했던 도망치기 급급했던 화가들이 다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리소 집안은 시집간 두 자매가 베르트와 부모들이 안전한 시골로 내려와 함께 살 것을 종용했다. 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에 티뷔흐스는 황제 군대에 소속되어 동부전선에 배치되었다. 아버님이라 부르는 베르트의 부친은 재산을 지키겠노라고 수도 파리에 남아 부인과 딸을 데리고 두려움에 떨면서 혹시라도 날강도 떼가 들이닥칠까 봐 전전긍긍했다.
절친한 친구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마네를 지지하고 나섰다. 선봉에 선 이는 단연 드가였다. 이웃한 레클뤼즈 거리에 사는 나이 어린 시인 폴 베를렌느도 동참했다. 벨기에 친구였던 아르튀르 스테방은 국경 수비대에 합류하기 위한 허가절차를 획득했다. 으젠과 에두아르는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에 대항하여 함께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을 때처럼 함께 군대에 입대하여 같은 특수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무슨 일이 닥칠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습한 전쟁의 공포와 파리 공습에 따른 참혹한 시련은 허를 찌를 만큼 빨리 닥쳤다.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 상황은 더 참혹했으며 격심했다. 황제의 폐위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공화국에 대한 선포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프러시아 군대가 파리에 먼저 입성했다.
파리에 대한 포위공격은 그처럼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수도를 에워싸고 포위망을 좁혀오면서 공격 신호나팔 소리와 함께 폭격이 이루어졌다. 파리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소극적 저항을 주장하는 이들과 애국심에 불타 전면전을 펼치자는 이들 간에 급격하게 요동쳤다.
명철한 의식으로 상황 판단을 하려 했으나 절망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서 마네는 승리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없었지만, 오직 투쟁하는 것만이 가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파리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베르트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