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공포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91화

by 오래된 타자기



11장 5
(1870-1871)



에바 곤잘레스는 가족들이 있는 해안가 마을인 디에프로 떠났다. 마네 주위를 맴돌던 모든 여자들이 다 그러했듯이 그녀 또한 한동안 몸을 숨기고 살아야만 할 처지여서 시골로 떠난 것이다.


폴 세잔은 남불에 거처를 정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식인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숨어 지내기 위해서였다. 그때 세잔은 자신의 마음을 읽고 있던 여자에게 사랑에 빠졌다. 어렸을 적 소꿉동무였던 그녀를 에스타끄에 숨기기까지 했다.


에밀 졸라는 전투를 피해 도망쳐 늘 모친과 가브리엘과 더불어 함께 지냈다. 그런 중에 그는 그녀와 결혼했다. 세잔은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한 증인이 되어주었다. 국가 수비대는 시력이 너무 나쁘다는 이유로 졸라를 받아주지 않았다. 군인이 되는 걸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던 졸라는 대신 결혼을 한 것이다. 전쟁이 준 선물이었다!


마네는 귀스타브가 주최한 정치 집회에 늘 함께 동행했다.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마네가 수잔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랬다. 마네는 그때까지도 누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그런 적이 없었다. 또한 그렇게 오랫동안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산 적도, 그처럼 극한 상황에서 가족과 헤어져있었던 적도 없었다.


마네는 편지에서 수잔에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파리를 도망친 인간들을 지켜본 파리 인민의 한 사람으로 진솔한 심정을 피력했다. 도망칠 수 없는 자들은 도망친 자들을 거리마다 벽보를 붙여 이름을 공개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집회는 늘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의 주장에 질질 끌려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그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마네는 또한 형제들과 함께 쥬느빌리에에 위치한 소작에 부치던 땅마저 잡초 무성한 들판으로 내팽개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이런 현실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모두가 떠났다. 나무들은 모두 베이고, 건물들은 불타고 있으며, 들판마다 주인 잃은 감자들을 찾아다니는 도적떼만이 들끓고 있다.”


1870, Effet de neige à Petit-Montroug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눈 내린 몽후쥬 풍경(Effet de neige à Petit Montrouge)」, 1870.


마네는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오직 편지만 썼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였지만, 주로 편지를 보낸 건 베르트였다. 마네는 그녀에게 비밀리에 편지를 보내곤 했는데 읽자마자 태워버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마네는 수잔에게 보낸 편지만큼이나 많은 숫자의 비밀편지를 베르트에게 보냈다. 베르트에 대한 사랑을 결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베르트를 사랑하면 할수록 아내 뒤로 몸을 숨기는 일도 늘어만 갔다. 마네는 모든 걸 원했다. 또한 이제까지와는 정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때는 전쟁 상황이었고 겨울이었다. 기후마저 독기를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뒤집힌 상태였다. 프러시아의 추위마저 파리를 강타했다. 때 이르게 몰아닥친 추위로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당연히 나무를 베어간 탓에 숲에는 더 이상 나무가 남아있질 않았다.


게다가 파리 포위공격의 영향으로 수도에 식량공급마저 끊겨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상황이 속출했다. 마네는 키우던 고양이 세 마리와 레옹이 기르던 개 두 마리를 아내에게 딸려 보낸 일에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전쟁 상황에서 가족을 부양할 틈도 없을 테고 한가로이 반려동물까지 키울 상황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가 직면한 상황에서 가족을 떠나보내면서 그가 취할 수밖에 없었던 건 오직 가족과 함께 반려동물까지도 생명을 보전하고 지키는 일뿐이었다.


불로뉴 숲에서부터 바티뇰 거리에 이르는, 뱅센느 숲에서 뤽상부르 공원에 이르는 파리의 모든 거리의 고양이들, 개들, 쥐들, 백조들, 오리들이 샅샅이 훑듯 붙잡혀 굶주린 이들의 배를 채우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말할 것도 없이 파리 식물원 정원 한쪽에 자리 잡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던 진귀한 동물조차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이들에게 포획되어 잔인하게 살해되는 상황마저 속출했다. 굶주린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동물원의 짐승들을 잡아 이를 공급하겠다는 발상으로 꼬흐셀레 식품점 왕조를 설립한 창시자는 짐승들을 스테이크로 요리하여 판매한답시고 이를 광고하기 위해 난리법석까지 떨었다. 동물원에서 굶주려 죽어가기 일보직전인 짐승들을 인정사정보지 않고 조직적으로 잡아 살해한 이들은 그것도 먹을 거라고 짐승의 사체를 요리하여 판매하는 식품 왕국을 건설하기까지 했다.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호랑이와 곰을 비롯하여 희귀 동물들까지도 가차 없이 닥치는 대로 살육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오늘은 또 뭘 스테이크로 먹을까를 고민했다.


쥐? 아니면 기린? 비둘기는? 아니 사자는? 토끼 혹은 호랑이는? 하마? 아니면 닭? 그런 상황을 빗대어 빅토르 위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걸 먹는다.”라는 표현마저 사용했다.


Zoo.JPG 보불전쟁 당시 프러시아 군대가 파리를 포위하고 있는 동안 파리는 모든 물자 공급이 끊겨 굶주린 이들이 동물원의 짐승들을 잡아먹는 사태마저 초래하였다. 이를 다룬 역사화.


국가 수비대는 한정적으로 파리의 모든 풍차 방앗간을 징발하여 조달한 식량을 각 부대원들에게 공급했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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