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랑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92화

by 오래된 타자기



11장 6
(1870-1871)



추위와 굶주림으로 베르트가 더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마네는 절규했다. 보급부대에서 배급주는 것을 조금씩 모아서 베르트를 위해 먹을 것을 마련한 마네는 그녀를 구하고자 달려갔다.


마네는 점점 더 베르트의 부친과 사이가 틀어졌다. 그녀의 부친은 티에흐를 가까이했을 뿐 아니라 제국의 공무원들에게 줄곧 아첨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오를레앙 태생인 모리소 부친은 예전 공화정 시절에 자신의 공무원 자리를 박탈했다는 이유로 공화정을 경멸했으며 지극히 혐오하기까지 했다. 그는 마네가 다른 예술가들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딸을 아주 불량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아양이나 떨고 비위나 맞추려 한다고 생각했다.


베르트의 부친이 좋아한 이들은 모두 수비대 군복을 걸친 자들이었다. 게다가 모리소 집안에 식량을 대주는 이들도 대부분 그들이었다. 마네, 드가, 훼리 그리고 스테방은 서로 교대하면서 베르트를 먹여 살렸다.


포병부대에 배속되어 포수 복장으로 근사하게 갈아입은 마네는 방어 진지로 거처를 옮긴 뒤부터 포병들과 함께 밀집더미에서 잠을 잤다. 포병 복장이 맘에 들었는지 군복을 입고 자랑스럽게 베르트의 집에까지 갈 정도였다. 그와 같은 애국심을 마네는 다른 화가들과 함께 공유했다.


드가도 마네와 같은 포병으로 마네와 같이 군복을 입고 복무에 임했지만, 마네와는 달리 포병연대에 근무하는 바람에 마네보다도 훨씬 근사한 군복을 갖춰 입을 수 있었다. 이 모두가 다 앙리 꺄트르를 다니던 시절 동료였던 앙리 루아르를 만난 덕분이었다. 그가 포병 연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후로 두 사람은 둘도 없는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지냈다.


전쟁이 선포되었을 때 르누아르는 바로 군에 입대하여 프랑스 최남단 피레네 인근 거점도시인 타흐브에 위치한 제10 수색 사단에 배치되었다. 나이가 어느덧 46세가 되어 병사들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았다. 퓌비 역시 국가 수비대에 자원 입대했다.


홀로 자유롭게 된 저녁에 마네는 베르트 집에서 나와 단숨에 게르부와로 달려갔다. 공방전이 펼쳐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네처럼 홀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는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오인받기 십상이었다. 마네는 군용 배낭에 화구를 넣어 다니곤 했는데, 실상은 그림을 그릴 생각도 없었고 짬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군홧발이 질척이는 진창길을 걸어갈 때는 애국심이건 뭐건, 예술에 대한 열정이건 뭐건 간에 비참한 심정만 들었다. 수잔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로렌 지방에 배치되는 걸 파리로 변경했다. 수잔에게 편지를 띄웠지만, 실상은 베르트에게 보낸 편지가 더 많았다.


11월 말 비둘기가 물어온 1만여 통의 전보가 파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수잔이 보낸 전보는 없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심한 고통이 느껴질 뿐이었다.


몇 번의 전투를 치르자 어떤 중압감도 없었지만, 마네는 신경을 딴 데로 돌릴 수조차 없었다. 베르트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다른 사람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나마 유머 감각마저 잃고 말았다. 어떤 때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가 또 어떤 때는 낙담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빈정거리다가 울적한 심정에 빠지기도 하고, 명철한 의식을 견지하다가도 패배감에 젖어갔다. 하지만 냉소적이면서 빈정거리듯 조롱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12월이 되자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나이가 든 탓에 국가 수비대에 배속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추위를 더 탔다. 마네는 사령부에 근무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렇게 하려면 일단 말 타고 진지를 순찰해야 했기에 여러 정황을 그쪽으로 유리하게 이용하려면 부서장과 선이 닿아야만 했다.


하지만 사령부를 지휘하는 대령이 아카데미를 좌지우지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관계로 마네는 여러 가지로 심적인 부담을 느꼈다. 이 이름깨나 알려진 메쏘니에는 고의로 마네를 미술전람회에서 낙선시키도록 사주한 당사자였다. 이 작자를 가리켜 드가는 난쟁이 왕국의 거인이라고 불렀다.


집안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예절교육 덕분에 마네는 대인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늘 정중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견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간 한 번 제대로 메쏘니에의 엉덩이를 걷어찰 기회만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메쏘니에는 마치 마네와는 전혀 안면이 없다는 듯이 모두가 예술가들인 자신의 주변 사람들 한가운데 마네를 세워놓고 그가 화가라는 것마저 무시하고 들었다.


누구보다도 치열한 기자 정신을 갖춘 꽁스탕탱 기는 파리 포위공격을 스케치했다. 하지만 마네의 「푸줏간 앞의 긴 줄」이야말로 적의 공격에 따른 끔찍한 참상을 있는 그대로 증언한 거의 유일한 작품이었다. 이처럼 박진감 넘치는 묘사도 드물었다. 마네가 묘사한 풍경은 실제 파리의 모습이었다.


1870, La queue devant la boucheri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푸줏간 앞의 긴 줄(La Queue devant la boucherie)」, 1870.


파리에서는 개고기와 고양이, 쥐, 노새, 당나귀뿐 아니라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들을 파는 정육점이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말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등장한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군인들의 보급품에 눈독을 들일 정도였다. 마네 역시 잠들었을 때 도둑맞지 않으려고 보급품을 끌어안고 잠을 청해야만 했다.


가스 공급도 끊겨 마실 물조차 끓일 수가 없었음은 물론 거무튀튀한 빵조차 떨어진 상황에서 하루 왼 종일 폭격소리만 들렸다. 모두가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베르트는 한 가지 그럴싸한 꾀를 생각해 냈다. 그녀 스스로 부상자들의 상처에 붕대 감는 일을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베르트의 모친은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두었다. 왜냐면 이미 많은 여성들이 비참한 상황에서 자원봉사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여인네들은 헌 침대시트로 옷가지들을 만들었다. 집안 살림을 하는 여자들 다운 작품이었다!


창이나 막대기를 들고 무장한 채 특공대가 된 한 무리의 여성들은 몽마르트르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그녀들은 징집을 피해 숨어있는 남자들을 집에서 내쫓거나 그들을 파리의 옛 보루가 있는 ‘성터’를 지키는 돌격부대로 보내기도 했다.


“만일 유럽이 두 나라 간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오로지 죽음과 재앙과 약탈과 살해만이 난무할 뿐”이라고 마네는 예언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파리 시민들인 파리지앵들은 용감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 온 힘을 다해 파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도시를 사랑한 장본인들이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11월 어느 날 대낮 베르트는 아주 그럴듯하게 가족들을 속이고 집을 빠져나와 생 페테르스부르 가 49번지의 계단을 네 계단씩 건너 뛰어올라갔다. 그녀는 귀스타브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 시간 귀스타브는 앞으로 공표할 꿈에 부풀어 헌법을 막 고치던 참이었다!


“에두아르는요?”


숨이 넘어갈 듯하여 베르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던 탓이었다.


“형이요? 아!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걱정 말고 여기 데리고 올 때까지 가만 계세요.”


귀스타브가 에두아르를 찾으러 나간 뒤 15분이나 지났는데도 뛰는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그녀 혼자서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다시 그를 만난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모든 게 그녀 탓이었다.


마침내 에두아르가 집에 도착했다. 만나는 것조차 금지된 상황을 마네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베르트는 너무도 마네를 사랑했기에 참으로 용감하게 그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뿐이다. 베르트는 “물감을 구하기 위해서 왔노라고. 그건 그가 이미 그녀에게 약속한 사항이었다고. 더는 어디서 물감을 구할 데가 없어서 작업을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파리 공습 때문에 아무것도 구할 수가 없고 이미 물감을 주겠다 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애원했다.


어떻게 귀스타브하고, 게다가 어떻게 아무 남자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다고 느낀 에두아르는 비로소 예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녀에게 한 약속을.


“하지만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모든 게 다 기요 가의 아틀리에에 있는데.”


“아! 그래요.”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럼 빨리 아틀리에로 가요. 엄마가 걱정하고 있으니.”


누가 베르트가 그렇게 꾀 바른 생각을 할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꼬흐넬리가 걱정한 건 사실이었다. 에두아르와 베르트는 말 그대로 아틀리에를 향해 훨훨 날아갔다. 여름이 되어 이미 떠날 사람들은 다 도시를 떠나 파리는 오직 황량함만이 감도는 황무지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런 간섭이나 방해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둘은 오후 내내 서로 껴안은 채 두 팔을 풀지 않았다. 밤이 시작되자 천둥 번개가 치면서 끊임없이 쏘아대는 대포 소리 또한 요란하게 들렸다. 밤이야말로 두 사람에게는 공포의 도가니였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했다. 사랑을 나눈 뒤에도 또 사랑을 나눴다.


그 둘은 서로 사랑할 수 없었던 그간의 모든 시간을, 주말과 달과 해를 다 불 태울 듯이 사랑만 나누었다. 오직 눈으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로 끌어안은 채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있었던 모든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서로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 서로의 심정까지 헤아렸다. 서로에게 감격하여 눈물만 흐르는 심정임에도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처럼 그들은 다시 또 시작할 수 없는 사랑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 사랑을 나눈 채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놀라우리만치 이보다 더 멋진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새벽이 되자 마네는 한 보따리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방어 진지에 갔다가 다시 아틀리에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돈 주고 두 여자를 구한 다음 베르트를 안전하게 그녀의 부모가 있는 집까지 데려다주도록 당부했다.


그들의 사랑은 장장 열아홉 시간 동안 활활 불타올랐다! 그간의 못다 한 사랑을 다 채워준 것이었음에도 늘 그렇듯이 서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아픔을 나눈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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