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포위 공격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93화

by 오래된 타자기



11장 7
(1870-1871)



비록, 파리 공습이 시작된 초기에 동료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모리소 집안에 먹을 것을 대주었다 할지라도 그 해 막바지에는 그조차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제대로 먹지 못해 빼빼 마른 베르트는 점점 쇠약해져만 갔다! 이번에는 그녀의 모친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의식을 잃을 정도였다. 베르트는 멀쩡하던 얼굴이 영양실조로 온통 반점까지 생겼다. 로댕이 광기에 차 제작한 조각품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마네는 오직 어느 날인가 베르트를 또다시 화폭에 담을 것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파리에 대한 포위 공격은 날이 가면 갈수록 도를 더해가면서 점점 더 불안감이 공포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근근이 살아가던 마네조차도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어른들보다 먼저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이었다.


귀스타브는 광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공화국을 건설한답시고 열을 올렸다. 귀스타브가 꿈꾸는 세상은 인민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는 정치 체제였다! 언제? 나다르의 열기구 덕분에 감베타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몸만 돌아온 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너무도 불행한 소식을 안고 왔다.


르 조슨느 대장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휘하부대 소속 병사를 통해 마네에게 알려온 전갈이었다. 그의 애틋한 조카인 바지유가, 장래가 촉망될 뿐만 아니라 마네와 더 없는 우정을 나눈 화가인 바지유가 하필이면 11월 말에 전선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본느 라 홀랑드를 눈앞에 두고 전선에서 사망한 것이다.


베르트의 남동생인 티뷔흐스의 행방은? 티뷔흐스는 죽진 않았다. 단지 포로가 되어 독일로 이송되어 갇혀있다가 바다를 통해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미 군대에 다시 복귀한 지도 꽤 되었다. 에드마는 남편 퐁티용이 전쟁에 뛰어들기 위해 물길을 통해 셰르부르로 떠난 뒤부터 남편으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전해오지 않는 가운데 홀로 지내고 있었다.


남편이나 애인을 둔 여자들 모두가 기도했다. 베르트만을 제외하고. 그녀는 오직 어떻게 하면 마네를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속으로 궁리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하면 단둘이만 있을 수 있을까? 침실에서 바닥에 엎드려 수채화를 그리면서 베르트는 요모조모 궁리만 했다. 그런 와중에 성탄절이 지나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마네를 만난 날을 따져보느라 손가락으로 날짜만 세고 또 세었다.


Le brocus de Paris en décembre 1870.JPG 1870년 12월 10일 파리 포위 공세를 뚫고 탈출하는 해병대 병사들을 다룬 역사화.


파리에 대한 포위 공격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끝나지 않을 것인가? 더군다나 눈마저 펑펑 쏟아졌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파리는 살을 에는 추위와 함께 성에로 뒤덮여가고 굶주림에 신음했다. “낮고 음침한 분위기를 띤 하늘이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다.”고 감기에 걸린 마네는 중얼거렸다. 그의 몸은 대쪽같이 마른 상태였다.


1871년 1월 5일이 되자 프러시아는 파리에 끊임없이 폭격을 가했다. 수플로 가를 비롯하여 생 미셸 광장뿐만 아니라 포부르그 생 제르맹 지역에 포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파리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세느 강 좌안에서 우안으로 넘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암담한 나날들만 이어졌다. 1월 중순, 짙은 안개가 온 거리를 뒤덮은 날 적군을 피해 도망치고자 거대한 엑소더스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실패.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최후의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1871, Explosion.pn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폭발(L’Explosion)」, 1871.


1월 7일 영하의 날씨였지만 햇빛 가득한 청명한 날씨였다! 따뜻한 햇살이 실내로 스며들자 전쟁의 공포마저 가시면서 심지어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일었다. 너무도 무더웠던 여름처럼 겨울 또한 추위가 혹독하기만 했다.


1월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살인자의 달이었다.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매일매일을 오래전에 구워놓은 비스킷에다가 쥐를 잡아 요리한 호사스러운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총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1백여 구에 달하는 시신들을 한 곳에 쌓아놓은 것이 보였다. 하염없이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시체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지상을 하얗게 덮은 눈을 붉게 물들여갔다. 프러시아 군대 역시 폐렴으로 쓰러져가는 이들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쌍방 모두 12만 명 이상이 폐렴으로 사망했다.


다시 모리소 가족이 사는 집에 들른 마네는 포병부대원들이 너무 집 가까이 들이닥쳤음을 실감했다. 담력이 세기로 소문난 꼬흐넬리였지만 마네가 뭔 짓을 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나쁜 짓만 골라하는 사내니까 절대 긴장감을 늦추지 말고 가까이서 지켜봐야 한단다.” 베르트는 마네와 작별을 나누는 것조차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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