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의 임신과 유산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94화

by 오래된 타자기



11장 8
(1870-1871)



마침내 1월 28일 파리 포위 공격을 종식시키는 휴전 조약이 체결되었다.


한밤중에 모두를 놀라게 만든 사건이었다. 더 이상 대포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휴전 조약이 체결되자마자 티에흐가 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이 집권을 한 탓에 모리소 집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과 가까이 지내는 퓌비 드 샤반느도 권력에 대한 욕망이 되살아났다. 티에흐는 베르트의 언니들의 결혼식 증인이었다.


베르트는 그렇잖아도 야윈 몸에 영양실조마저 겹쳐 몸이 더욱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졌다. 애당초에 그리 뚱뚱한 몸이 아니었던 그녀는 걱정이 될 정도로 야위어만 갔다. 뭔가 의도한 게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몸이 야윌 수 있는가? 몇 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틴다는 건 그녀가 자살을 의도했을 수도 있을 법한 일이었다.


드가가 한술 더 떠 마네에게 베르트의 심각성을 이야기하자 마네는 결국 화마저 치밀어 올랐다. 아무래도 그녀의 모친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베르트가 조금이라도 뭔가를 섭취해야 한다고 모두가 나섰지만, 여전히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를 아끼는 남자의 눈에도 뭔가 심상치 않을 정도로 바싹 여위어있었다.


베르트는 스스로 자신을 질책하고자 굶어 죽으려고 작정한 탓에 파리 포위 공격이 있던 기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틴 것일까? 베르트의 못난 생각이 마네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베르트에게는 스스로 학대하고 괴롭히는 버릇이 있었다. 아직은 젊었기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듯 오랫동안 버틸 수가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참고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음 직전의 상태에 이르도록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녀가 너무나 젊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죽음 직전에까지 이를 참을 수 있었던 것이며, 사랑하고 괴로워하면서 온 마음으로 굶어 죽기로 작정한 것이다.


베르트는?


베르트는 실신하고 말았다. 이번에야말로 말 그대로 서있을 수조차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일어나자마자 도로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단지 배고픔 때문에 생긴 병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사랑이었다. 마침내 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신 초기였다. 아직 어느 한 사람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걸 알 도리도 없었다. 전혀. 그때까지도 공식적으론 그녀는 결혼할 적령기에 이른 처녀였을 따름이다. 아이를 가졌을 거라곤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가졌다. 벌써 두 달째 생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그녀는 문득 떠올렸다.


먹은 걸 토하는 건 물론이고 심한 헛구역질까지 일으켰다. 온몸이 마르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가슴만큼은 자꾸만 부풀어 올랐다. 모친에게는 모든 걸 감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녀 스스로 몸의 이상증세를 통해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며칠이 지난 다음 모리소 가족은 한정적으로나마 비스킷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파리 공습으로 인해 도시가 둘로 나뉘는 바람에 다른 한쪽에서 독극물을 넣은 탓에 몹시 썩은 내가 나는 빵이었다. 2월 4일 그녀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모두가 비스킷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만 추측했다.


한시바삐 의사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는 하혈까지 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을 뿐만 아니라 심한 복통으로 그녀는 괴로워했다. 그녀에게 질 나쁜 빵을 먹인 게 화근이었다. 얼굴은 수척해져 몰라볼 정도였다. 오직 두 눈만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의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모든 걸 파악하고는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절대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단, 그녀가 하루빨리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여 몸이 원래대로 회복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단서로 붙였다. 파리에 대한 포위 공격은 끝났다. 천천히 저장된 식료품들이 다시 공급될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한시바삐 도래해야만 했다. 그래야만이 그녀가 다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을 것이었다.


베르트는 결국 마네의 아이를 낙태하고 말았다. 어차피 굶주린 뱃속에서 태아가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그녀는 심적으로 상당한 압박까지 받았다.


화급을 다투는 상황에서 의사가 베르트의 집을 다녀갔다는 소식을 스테방으로부터 전해 들은 마네는 드가를 동반한 채 거리마다 군대가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뚫고 베르트의 집을 찾아갔다. 프랭클린 가에 있는 그녀의 집에 당도하자 이번에는 모친이 막고 나섰다. 이에 화가 난 드가가 거실에서 보수주의자적 태도로 일관하는 모리소 부모와 언쟁을 벌이는 동안 마네는 베르트의 침실로 뛰어올라가 머리맡에서 무릎 꿇고 애걸했다. 베르트는 너무 야윈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마네를 바라보는 눈만큼은 불길에 타올랐다. “난 절대로 당신 애를 갖지 않을 거예요.”


베르트는 마네를 돌려보냈다. 아연실색한 마네는 거실에 있던 그녀의 부모와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파리는 다시 자유의 물결로 뒤덮여가고 있었다. 베르트 또한 자유를 실감했다. 모든 것이 질서를 되찾아가는 중이었다. 아무도 그걸 딱 꼬집어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파리가 어떤 형태로든지 질서를 되찾아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소대장으로 계급이 승진되었으나 마네는 근심 걱정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파리 포위 공습이 끝났음을 망연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베르트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가학적 취미를 지닌 메쏘니에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마네는 그와 같은 자유로운 상황에서조차 이제야말로 다시 그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질 못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마네는 몸에 난 부스럼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심한 통증을 느꼈다. 옆구리에 난 부스럼이 뾰족한 크기로 부풀어 올라 고름이 맺힌 탓이었다. 고열에 온몸이 덜덜 떨려오기까지 했다. 얼어붙은 진창길을 오래 걷다 보니 발바닥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화농균이 침투한 게 분명했다.


마네는 더 이상 버틸 기력조차 상실하고 몸져누웠다. 더군다나 지독한 감기까지 걸렸다. 귀스타브는 그런 마네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초토화된 파리에서 의사를 부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마네를 살리는 일은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마네는 베르트가 자신을 보러 올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낙태한 여인이 환자와 접촉했다가 병균에 감염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앞으로 임신 불능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왜냐면 수잔이…….


아이구 하느님! 수잔! 그녀가 그의 건강을 몹시 염려하고 있다고 이야기한 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2월 12일 드가가 전갈을 전해왔다. 베르트가 이제 건강을 회복하였으니 마네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파리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네는 가족들과 재회하기 위해 올로홍으로 달려갔다. 사전에 미리 뒤레가 살고 있는 곳을 들러 창고에 보관된 작품들이 제대로 잘 보관되고 있는지 확인하고는 돈을 빌리는 일이 지긋지긋했지만, 결국 그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파리 포위 공습이 시작된 뒤로 돈을 빌린 것이 벌써 세 차례나 되었다. 마네는 단 한 번도 무일푼으로 지낸 적이 없었다. 파리 공습은 돈의 흐름을 모두 다 차단했다. 뒤레는 그에게 일단 3백 프랑을 빌려주고는 파리를 떠나기 전에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네가 파리를 떠나자 상심한 베르트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젠 혼자 남게 되었다. 그것도 완전히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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