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바닷가에서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99화

by 오래된 타자기


12장 2
(1872-1873)



마네는 또흐또니에서 점심을 들고 난 뒤에 이 카페 저 카페 전전하면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죽치다가 느닷없이 다른 테이블 손님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그들과 말다툼을 벌이기까지 하고는 그것도 부족하여 상대방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어대면서 싸우기 일쑤였다.


앞날이 암담하기만 했다. 어떠한 전망도 없고 계획하고 있는 일조차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마냥 자신이 침몰해 가는 걸 지켜보는 것마저 힘들어졌다. 젊은 베를렌느는 마네가 서글퍼하는 걸 보고는 보들레르의 시에 등장하는 우울에 빗대어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마네의 서글픔은 보들레르의 우울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고 베를렌느는 생각했다.


“슬픔은 크나큰 죄와도 같네.” 위렐 신부는 아우구스트 성인의 말씀까지 꺼내 들었다. 반면 의사인 시르데 박사는 마네의 서글픔을 “유혹에 몸을 맡겨버린 자의 퇴폐적인 타락”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는 반드시 병을 치료해야 한다고 진단을 내렸다.


의사인 그가 내린 처방은 첫째로 파리에서 벗어나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부자들을 위한 정신 건강 요양소’가 노르망디 바닷가에 문을 열었으니 마네가 그곳에 입원할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편지를 써주겠노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둘째로 설사 바닷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요양을 했는데도 완쾌가 안될지라도 그곳에 틀어박혀있어야만이 정신 건강이 다시 회복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오! 내 모든 더러움과 얼룩을 말끔히 씻어주던 바다여…….”


마네에게 그처럼 멋진 시를 보내준 이는 다름 아닌 베를렌느의 친구 랭보였다. 시인 랭보는 상징주의 시인 예술가들 집단에서 나이도 어린 주제에 자신들의 호주머니나 슬쩍 뒤지면서 온갖 상스럽고도 천박한 말투에다가 비열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고 정평이 나있었다. 하지만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시구인가.


베르트는 여전히 파리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여름이 성급히 찾아왔다. 마네는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하여 이번에도 예외 없이 아내와 모친을 동반한 채, 늘 자신의 영혼을 말갛게 씻어주던 불로뉴 쉬흐 메흐 포구를 찾았다.


마네는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몇 주간을 그림도 그리지 않고 소일했다. 8월 말까지는 파리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망슈 해안에서의 명상은 확실히 한때 견습선원이었던 마네의 마음을 가라앉혀주고 다시 쾌활한 기분마저 되찾게 만들어주었다.


마네는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아갔다. 침묵과 나른한 빈둥거림 또한 캔버스 앞에 앉아있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일으켜 다시 붓을 쥐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마네는 카지노 앞 공원에서 「크로켓 공치기 놀이」를 하는 레옹과 에바 곤잘레스 자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때 동창을 묘사한 그림을 그렸다. 가족 간에는 이 그림이 금기시되긴 했지만, 이는 확실히 마네가 건강을 되찾았다는 청신호임에 틀림없었다.


1873, La Partie de croquet.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크로켓 공치기 놀이(La Partie de croquet)」, 1873.


앉아있는 인물은 법률상으로는 마네의 대자이지만 친자식인 레옹이고, 공치기 놀이를 하고 있는 두 여인은 에바 곤잘레스 자매이며, 멀리 보이는 사내는 우연히 만난 마네의 중학교 때 동창이다. 에바 곤잘레스(Eva Gonzalès)는 마네가 그린 인물화 속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멋지고도 근사한 작품이 탄생했는데, 선상에서 유람을 즐기면서 「칼레 포구」 앞바다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1872, Le Port de Calais.jpg
1873, Le Bateau goudronné.jpg
에두아르 마네, 「깔레 포구(Le Port de Calais)」(1872) 및 「배에 역청을 칠하는 장면을 담은 풍경화(Le Bateau goudronné)」(1873).


게다가 설익은 녹색에 음울한 색조를 더한 아몬드 무더기를 묘사한 정물화 소품에까지 손을 댔다. 이는 실상 1864년 이래로 멈춰버린 정물화 제작에 대한 그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가 그린 정물화들은 그의 성향이나 기질과 거의 운각을 맞추듯 서로 리드미컬하게 이어지고 있다. 사물들과 함께 조용한 삶을 추구하고자 한 은둔지에서의 삶과 매번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1872, Le bouquet de violettes.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보라색 꽃다발(Le bouquet de violettes)」, 1872.


정물을 다룬다는 건 온갖 어려운 상황에조차 악전고투함이 없이 그의 예술을 단련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건 없어 보일 정도다. 살아있는 모델을 구할 필요도 없고, 사교계나 들락거리는 속물들한테 포즈를 취해달라고 구걸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정물화들은 그처럼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그의 고통과 고뇌를 역으로 상정하고 있다.


정물화는 마네에게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저주받은 화가로서 마치 감옥에서와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증거 해주기까지 한다. 아틀리에서 사과들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계속 탁자 위에 놓여있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그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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