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0화
12장 3
(1872-1873)
마네가 살맛을 잃어버린 것만큼은 확실했다. 적어도 정신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 처한 그만의 사정을 이해한다면 그렇다. 보불전쟁 기간 동안 베르트가 직면한 상황에서 그녀가 처한 상태로 말미암아 마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마저 사라졌다. 그녀가 마네를 그리워했던 것만큼이나 마네 역시도 파리 공습 기간 동안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수완을 발휘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도외시할 수 있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고 만 것이 마네의 가슴을 터질 듯이 비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얼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수잔을 버린다? 어느 날인가 자신이 사랑하듯 그렇듯 격렬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이 유일한 여인과 결혼을 한다? 자꾸 회한만 되풀이될 뿐이다.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멋지고 찬란했던 사랑이었던 만큼 그녀와 함께 지낸 시간 또한 그처럼 순수한 열정에서 꽃 피워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 것조차 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것과 대등한 것이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베르트의 두 팔에 안겨 위로를 받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괴롭고도 비참한 상태에 처한 마네를 위로한 건 오히려 아내 수잔의 널따란 품이었다. 아내의 품은 사랑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커다랗고 널찍하게 부풀어 올랐다.
마네가 더는 수잔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조차 입밖에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그녀에 대해 마네는 더욱 공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견지한 상태에서 더한층 이를 고수해 간 것만 봐도 수잔의 품이 마네에게 얼마나 넉넉한 것이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아내에게 성깔을 부리면서까지 못되게 군 것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할 것인가? 3월부터 8월까지 마네는 수잔을 거칠게 몰아세웠을 뿐 아니라 아내의 심중은 헤아리지 않은 채 아내를 무시하려고만 들었다. 게다가 틈만 나면 아내에게 못되게 굴었다. 그런 자신이 한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트가 온 맘을 차지하고 있는 걸 어쩔 도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서양 바닷가에서 마네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에 빠져들었다. 마네는 베르트와 함께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해 미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기법이나 회화 전반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었다.
베르트, 드가, 팡탱, 프랭, 피사로, 모네와도 마찬가지였다. 바지유가 사망했다는 사실에 또한 눈물지었다. 바지유의 죽음은 펑펑 소리 내어 울어도 시원찮았다. 결국 모든 게 전쟁 탓이었다. 파리 공습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죽음, 상실감, 결핍, 궁핍, 이 모든 것이 전쟁 탓이기만 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타격을 받은 것을 여실히 폭로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이 순간에 그간의 억눌러온 심중을 털어놓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9월 말 마네는 파리로 다시 돌아왔다. 무기력 증세는 어느 정도 치료가 되긴 했지만, 늘 절망감에 빠져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가오는 1월이면 마흔 살이 되는데 무슨 수로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과연 뭘 해야만 좋을 것인가? 앞에 닥친 일은 대체 뭐란 말인가? 모친이 늘어놓는 잔소리는 그의 두개골을 북처럼 두들겨대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