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해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1화

by 오래된 타자기


12장 4
(1872-1873)



1871년은 마네에게 있어서 최악의 해였다.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 생각한 스테방마저 그림을 팔아 십만 프랑에 조금 못 미치는 수입을 올렸다. 마네는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매일 그림을 그린다고 어머니로부터 돈을 얻어 타 쓰는 신세가 한없이 부끄러워지면서 처량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마저 다 탕진해 버렸으니…….


마네는 오직 스테방에게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스테방은 순교자의 거리 65번지에 들어선 개인 사저에 해당하는 으리으리한 저택을 매입하여 아틀리에로 꾸몄다. 연못이 딸린 커다란 정원을 갖춘 건물이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비춰보기를 좋아하던 모네는 으리으리한 스테방 집에 들를 때마다 연못에서 물빛 그림자놀이에 빠져들었다.


스테방은 친구들이 그린 그림 가운데 예쁘장한 그림들을 사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또한 오로지 투기를 목적으로 다른 이들의 이쁘장한 그림들도 사 모았다. 이름에 걸맞은 아틀리에 하나 없는 마네는 솔직히 자신이 그린 그림 가운데 몇 작품만이라도 스테방이 위탁 판매해줬으면 하는 바람 또한 없지 않았다.


온 아틀리에를 중국산 가구로 도배한 스테방은 매일 저녁마다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을 불러 모아 차담을 열었다. 혹시 마네는 그 가운데 어느 한 명이라도 자신의 작품을 사주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미술품 판매상이나 예술 애호가 또는 개인 소장가 중에 어느 한 사람이?


더는 충동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은 탓에 그 해 가을에 시작한 그림은 극히 드물었다. 생 페테르스부르 가 51번지 아파트는 그림 그리기에 썩 좋은 곳이 못되었다. 그저 빈둥빈둥 놀고 있는 레옹이나, 바로 붙어있는 옆 건물 아파트에 기거하고 있는 아내나, 인근에 사는 모친이나, 그들 모두가 시도 때도 없이 제각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해 말 마네는 엄청난 사건을 그림으로 다루고자 시도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3명의 처형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사토리에까지 찾아갔다. 세 사람에게 사형이 언도된 이유는 파리 코뮌에 가담했다는 죄였다. 마치 고야의 그림에서나 느낄 수 있는 아찔한 공포감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짧은 대낮의 잔인하고도 끔찍한 처형을 마네는 생생히 지켜볼 수가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치솟는 증오와 분노로 말미암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마네는 그리다 만 「아르카숑에서의 가정」을 다시 손봤다. 세 번씩이나 아내를 고쳐 그렸지만, 결정적으로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림도 마찬가지로 맘에 들지 않았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아르카숑에서의 가정생활(Intérieur à l'Arcachon)」, 1873.


그림 속의 수잔은 창 밖 너머 바다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내아이는 마네와 수잔 사이에서 태어난 레옹 코엘라 린호프다. 보르도 인근의 아르카숑 바닷가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6점에 달하는 그림 가운데 한 작품이다.


그림에서 제일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레옹이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채, 그림 속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수잔은 거대한 정적만이 흐르는 꿈결 같은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마네는 그림 속에 자리하지 않는다. 가장이 자신의 가정을 그린 그림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화가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낯설 뿐인 이 그림은 그처럼 마네의 부재를 강렬하게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다.


마네는 아내가 자신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걸 조심스레 거절한 것을 모르는 체하지만은 않는다. 그녀는 마네의 욕망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그가 보살펴야만 하는 존재다. 레옹도 마찬가지다. 아이에 대한 무관심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은 모든 게 덧없다고 생각한 마네의 심중에 레옹 역시 부재했기 때문이다.


마네가 모든 걸 탓해야만 한다면, 바로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마네가 수잔이나 레옹을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있는 끈적끈적한 존재로밖에 여기지 않은 탓이다. 그건 마치 고양이들이나 개들과 같은 존재로밖에 여기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잔이나 레옹은 환언하면,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과도 같은 존재였을 따름이다. 마네 역시도 그들에게 구속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보살펴야만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마네는 어느 날 바닷가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아내를 화폭에 담았다. 「발코니에 선 마네 부인(Madame Manet au balcon)」, 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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