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나이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2화

by 오래된 타자기


12장 5
(1872-1873)



베르트를 만나고 난 뒤에도 마네는 자신이 가족을 결코 떠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네는 가족을 떠나고 싶었다. 솔직히 그들이 자신 곁을 떠나 주기를 바랐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던 탓에 그들을 미워하기까지 했다.


보다 명철한 의식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너무 솔직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마네는 수잔이 그의 눈에 중요한 존재로 다시 비칠 수 있기를 의도한 듯 점점 몸을 불려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옹 역시 아이에게 너무 부족한 것이 많다 보니 앞으로의 인생에서 낙오자가 될 게 틀림없어 보였다.


이제는 어느 것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네를 포함하여 가족 모두는 서로 간에 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완전히 갇혀버리고 만 상태였다. 결코 자신의 삶을 한탄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너무 세련된 멋쟁이인 마네이긴 하지만, 스스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제까지 하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리라 생각하는 부르주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럴 듯이 행세해 버릇하는 것은 그만의 천성이기도 했다.


나이 마흔이 된 걸 자축하기 전에 마네는 올곧게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이때껏 스캔들이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비쳤을 뿐이지 않은가? 새로 시작한 그림에서조차 진지한 구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지 않았는가?


하지만 마네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만일 그 순간이 다시 도래한다면, 마네는 친구들이 쳐놓은 유쾌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평판이란 그물에서조차 순순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날 그들이 자신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들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그들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갑자기 마네는 이제까지 아파트에서 그저 하는 일 없이 머물러 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이 아틀리에를 구하여 ‘장소를 바꿔’ 생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블랑슈 광장 인근이 새롭게 조성되면서 이 구역 어느 곳엔가 아틀리에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참한 심정으로 그는 이리저리 떠돌기만 했다. 상실감, 박탈감, 곤궁함과 함께 파리 포위 공격으로 인한 내핍 상태를 그로서는 심적으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점잖은 표현으로 이야기해도 그의 기질에 따른 심적인 동요와 불안감은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잖아도 베르트와의 애정 관계가 거의 도발적인 모험에 가까웠기에 그토록 심각한 부담감만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화가로서 새롭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은 과거에 그가 겪었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끈질기게 마네를 괴롭혀댔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늘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예술적으로 무언가에 쉽사리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기 만족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상메달을 거머쥐고 공식적으로 다시 한번 화려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마저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를 짓누르고 있는 이 심적 압박감을 어떻게 떨쳐버려야 하는지 그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 무엇 때문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판들이 그처럼 터무니없이 그를 괴롭혀댄 것일까? 성공에 대한 좌절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쇼크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네는 매번 다시 시작하지 않았던가? 이전투구의 장에서조차 사회 전반을 뒤흔들 만큼 커다란 충격을 던질 작품을 제작하는데 열을 올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설사 부친이 살아서 마네를 지켜보았던들 마네를 신뢰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점이 많다 보니 아들이 사랑하는 이들과 또한 아들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서 부친이 현실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조차 마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지 않았을까?


부친으로서는 아들이 좋아하는 이들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절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면 부친으로서는 그렇다고 자식을 벌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버려 두기에도 전혀 맘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근본적으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이 전무한 상태에서 어머니는 자식을 너무 과대평가하고만 있었다. 모친은 심지어 자식으로 하여금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이 순간까지 자식이 절대 가족을 떠나지 못하도록 지켜봐 온 터였다.


그러나 모든 걸 떠나 홀로 있고 싶은 마네로서는 모자간의 사이에서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양면성이 오히려 모두에게 고통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수잔을 비롯하여 레옹 그리고 자신의 형제들에게 이르기까지 그들이 이 때문에 고통받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자신들이 좋아라 따라야만 할 존재였기에 마네는 가족이 상처를 받거나 고통을 당하는 걸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런 이유에서 또한 어머님이라 부르는 모친과의 관계마저 단절할 수 없었다. 모친을 무시하고 그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그녀를 피해 벗어나고자 멀리 떠난 적도 없었다.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건 간에 모친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시도하고자 했던 적은 없었다.


마네는 또한 어떤 때는 의기소침하여 집에 틀어박혀 무슨 생각인가에 골몰하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자만심에 빠져 무언가를 도모하고자 들뜬 모습을 보일 정도로 오락가락했다. 모친이나 가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이 한심하여 몹시 괴로웠지만 귀스타브처럼 훨훨 날아오를 능력이 에두아르에겐 없었다. 귀스타브의 눈에도 에두아르는 어린애 같은 상태에 머물러있듯이 비쳤다.


수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어린애 같은 마네를 지켜보면서 시어머니가 하듯 남편을 돌봐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기에 수잔은 마네가 레옹의 자리마저 강탈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면서 남편이 아직도 미숙한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단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베르트는 길고 캄캄한 애정의 터널에서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할 듯이 전전긍긍하고만 있었다. 마네에게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외칠만한 배짱마저 없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탓에 마네는 더 괴로워했다.


도저히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꿔볼 자신감마저 상실한 탓에 멀리서 전해오는 불길한 소식들로 말미암아 바깥에 나가 누굴 만나는 일조차 꺼려졌다. 아니면 처음 사랑을 알게 해 준 예쁘장하게 생긴 흑백혼혈 여자애들로 인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뱀에게 물려 독이 온몸에 퍼져 이제는 정신마저 흐려진 탓일까? 이 순간만큼은 모든 걸 부인하는 것만이 그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었다. 또한 비통해하는 것만이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최악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