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물감의 발명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4화

by 오래된 타자기


12장 7
(1872-1873)



극히 미세한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을 통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발명은 마네와 마네 주변의 화가들의 예술과 인접한 분야에 연쇄적인 혁명을 일으키면서 실질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안료와 그와 관련된 제품들을 개발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 놀라운 발명의 근저에는 주석(백랍)이 있었다. 완전히 제조한 물감을 넣은 주석으로 만든 용기와 물감을 만들기 위해 서로 뒤섞어 쓸 수 있는 색소들을 넣은 주석 용기를 도입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도 곧 사용할 준비가 이미 완료된 상태였다!


이제까지 물감은 공방에서 화가가 직접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복잡다단하기만 했다. 여러 번의 준비단계를 거쳐 필요에 따라 색소를 지닌 모든 성분들을 비롯하여 물, 아마인유, 양귀비나 호두에서 추출한 기름, 접착력이 뛰어난 또 다른 요소들까지 다 준비한 가운데 게다가 색소를 띤 미세한 가루가 흩날리지 않도록 케이스 안에 담은 뒤에 이를 혼합해야 하는데, 물감 제조 공정은 화가마다 제각기 다 달라 절대 비밀에 부쳐진 그들 고유의 방법으로 제조했던 탓으로 아주 거추장스러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까다롭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제조한 물감들은 굳어지기 전에 빨리 사용해야만 할 정도로 번거로웠다. 만일 물감이 굳어지면 다시 만들어 사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화가들은 아틀리에에서 그와 같이 번거로운 작업을 통해 일일이 물감을 스스로 제조하여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하지 않고 가루로 된 안료들을 다소 진한 색감을 획득하기 위하여 접착력이 뛰어난 성분에 뒤섞는 방법을 계속해 이어갔다.


하지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실물과 색감에 미묘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빻아 분쇄한 색소를 담아 갖고 다니던 이동식 용기는 돼지 방광주머니였는데, 물감을 제대로 보관할 수 없다는 단점 때문에 주석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요컨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용할 물감을 제조하기 위해 색소를 띤 안료를 빻아 뒤섞고 거기에다가 사용하기 좋게 접착력이 뛰어난 성분을 첨가하여 일일이 물감을 만드는 일은 시간이 남아돌아가지 않는 한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물감을 담는 용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주석으로 만든 용기에 담은 튜브 물감이 바로 그것이었다. 주석 용기 안에 저장된 튜브 물감은 실내에서 사용하기 좋게 만들어진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갑자기 아틀리에에서 멀리 떨어진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릴 경우에도 휴대가 간편해서 여러모로 사용하기 좋았다.


이 자그마하고도 가벼운 발명품은 점차로 이를 신봉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림 그리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갔다. 말 그대로 모든 회화작품에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왠고 하니 혁명의 시기를 관통하면서 예술가들은 그들의 주문에 따라 물감을 준비해 주는 도제들을 더 이상 자신의 휘하에 둘 필요가 없어진 탓이었다. 대신 튜브 물감이 온 아틀리에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실내에서 그림을 그릴 때에도 튜브 물감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긴요한 재료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8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튜브 물감은 아는 이들 사이에서만 아름아름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보불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그림 그리는 새로운 방법들과 이에 관한 정보들이 서로 간에 활발하게 교환되기에 이르렀다. 그건 보다 용이하게 그림을 그리고자 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보다 멋진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튜브 물감에 대한 개량 또한 날이 갈수록 신속히 이뤄졌다. 색감의 미묘한 차이까지도 다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튜브 물감이 선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접착력이 뛰어나면서 안정감 있게 색감을 보다 잘 유지할 수 있는 물감까지 발명되었다.



휴대용 물감이야말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토록 꿈꾸던 것이었으며,
그걸 제일 반긴 화가는
모네였다!



처음으로 휴대용 물감을 사용한 선구자들은 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소개하고자 애썼다. 마네와 드가는 처음에 약간 이를 거부하는 듯했으나, 전쟁 이후로 이를 온전히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뒤를 이어 르누아르와 피사로, 모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화가들, 즉 이를 테면, 바르비종파에 속한 화가들이 이를 채택했다. 더군다나 이젠 튜브 물감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휴대용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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