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5화

by 오래된 타자기


12장 8
(1872-1873)



드가가 미국에 가있는 동안 르누아르와 시슬레가 저녁마다 카페에서 마네 곁을 지켰다. 항상 밝은 얼굴에다가 너그럽고 관대하기만 한 시슬레답게 일시적이나마 돈 걱정을 안 해도 될 만큼 전혀 얼굴이 낯선 미술품 판매상을 통하여 자그마치 25점이나 되는 그림들을 팔아 치울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행운이 또 찾아온다고? 현금이다 현금, 앞으로도 계속될 거야,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그걸 믿자고. 그러니 함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어느 날엔가는 잘 풀릴 거야. 곧 그날이 온다니까. 확실해…….


견디기조차 힘든 기간이었다. 전쟁은 예술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릴 마음까지도 소멸시키고 말았다. 예술은 기분 전환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정말로 예술작품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와 같이 말할 수 있을까? 요컨대 드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림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나 작품을 봤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수준이 같기는 마찬가지였다.


1872년 1월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어느 날 스테방이 만세를 외치며 마네의 아틀리에 문고리를 힘껏 잡아당기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자기 아틀리에에 들른 한 미술품 판매상이 마네가 위탁 판매를 부탁한 두 점의 작품을 후하게 쳐주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불로뉴 쉬흐 메흐 포구의 달빛 밝은 밤」하고 「연어」가 팔렸어! 얼마에 팔렸는지 한 번 알아맞혀봐? 자그마치 6천 프랑이야! 실감할 수 있겠나?”


“6천 프랑이라고?”


1864, Saumon et crevettes.jpg
1869, Clair de lune sur le port de Boulogn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연어」(1964)와 「불로뉴 포구의 달빛 밝은 밤」(1969).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아틀리에 한가운데에서 펄쩍펄쩍 뛰며 빙글빙글 춤췄다.


내일이면 마네 나이 40이었다! 이제야 가난뱅이 화가란 소리를 면하게 된 것이다!


이튿날이면 실제 이 유명한 미술품 판매상이 직접 찾아와 화실 문을 두드릴 참이었다. 아! 스테방이 미처 판매상이 지속적으로 마네의 아틀리에를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할지라도 마네는 온 가슴을 채우고 넘쳐흐를 만큼 기쁨에 젖어들었다.


다음 날 아틀리에를 찾아온 화상은 마네에게 아주 정중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걸작을 완성하신 분을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라고까지 말했다. 더군다나 어젯밤 마네를 만날 순간을 고대하면서 미칠 듯 기쁜 나머지 밤을 꼬박 새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미술품 판매상은 말을 이어가기를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으니 자신에게 다른 그림들을 보여줄 수 없겠느냐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아니 그가 보관하고 있는 작품 모두를 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완성했건 안 했건 그가 그린 작품 모두를.


미술품 중개상의 아들로 태어난 폴 뒤랑-휘엘(Paul Durand-Ruel)은 부친 곁에서 미술품을 사고파는 일을 지켜보다 이에 반해 미술품 시장에서 내 노라 하는 거상이 되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미술품을 사고 되팔았다. 주로 들라크루아와 코로 그리고 바르비종 화파에 속한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항상 두 개의 이름이 따라붙었다. 미술품 애호가이면서 이를 판매하는 거상이란 칭호가 그것이었다.


Auguste Renoir, Paul Durand-Ruel.jpg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가 그린 「폴 뒤랑 휘엘(Paul Durand-Ruel)」.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해 가있는 동안 폴 뒤랑-휘엘은 모네와 피사로를 만나 서로 맘이 통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두 화가의 작품에 이끌렸다. 그림을 보는 눈 또한 예사롭지 않았던 화상은 두 화가가 그림 그리는 수법이 아주 빨리 진일보해 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두 화가의 작품을 몇 점 사들였다.


하지만 두 화가의 기법이 상당히 눈에 익었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저러한 연유로 엊그제 느닷없이 벼락 치듯 만사를 제쳐두고 뒤랑-휘엘은 당시 모든 화가들의 선구자 격인 마네를 찾아왔던 것이다!


스테방 아틀리에에서 2점의 마네 그림을 발견한 뒤, 흥분하여 뒤랑-휘엘은 밤을 꼬박 새웠다. 밤새 그림에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마네의 다른 그림들까지 보고 싶어 졌던 것이다.


마네의 그림, 소묘, 수채화 작품들이 하나 둘 팔릴 때마다 매번 생 페테르스부르 가 51번지 아틀리에는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폴 뒤랑 휘엘은 마네의 모든 작품을 한 곳에 모아놓고 숫자를 세어갔다. 하나, 둘, 셋, 넷, 열…… 스물셋! 그리고는 즉시 마네에게 그림 값으로 35,000 프랑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마네에게 다음 주까지 친구들 아틀리에에 흩어져있는 작품을 모두 한 곳으로 모아놓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맘이 안 놓였는지 뒤랑-휘엘은 일주일은 고사하고 단지 3일 만에 다시 마네의 아틀리에를 찾아왔다. 그러고는 마네에게 다른 작품들마저 사들이는 조건으로 16,000 프랑 짜리 수표를 건넸다.


작품이 팔리기 시작하자 그림 가격도 치솟아 소문은 금방 퍼져 파리를 온통 뒤집어놓았다. 그렇게나 많은 돈을 받았다고? 그것도 마네가!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곧바로 새로운 개인 소장가들이 그의 걸작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한 점, 두 점, 세 점. 그들은 닥치는 대로 마네의 작품을 사들였다.


여세를 몰아서 마네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를 보낸 이는 미술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소장가들 사이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에슈 형제였다.


“귀하께서 늘 머물고 계신 곳이 어딥니까? 그곳으로 찾아가 뵙도록 하겠습니다. 언제쯤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앙리와 알베르 에슈는 어떠한 가격이든지 상관없으니 무조건 「비누 방울을 부는 아이」를 사고 싶다고 요청했다.


어떠한 가격이든지 상관없다고?


마네는 그들에게 500프랑을 받고 그림을 넘겨주었다.


1867, Les Bulles de savon.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비누 방울을 부는 아이(Les Bulles de savon)」, 1867.


또 다른 소장가들 역시 마네가 사는 집 문턱을 넘나들고 싶어 안달이 났다. 마침내 마네는 소장가들 사이에서 자신이 꽤나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미술품 소장가인 그들은 마네에 대한 나쁜 평판을 소상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마네를 비방하는 자들에 동조하는 듯한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남의 뒤나 캐고 다니는 자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사귀어서 그렇게 나쁠 건 없다는 판단이 앞섰다. 더군다나 개인 소장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아직 많이 소장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 감각도 작용했다.


아! 이게 행운인가, 운명인가, 아니면 우연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가 부자가 된 것이다!


문지방을 박차고 나온 마네는 숨이 차도록 뛰어서 게르부와 카페로 달려갔다.


“그림을 팔아 1년에 5만 프랑 이상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화가가 대체 누구야?”


그러자 모여 있던 바티뇰 화가 군단들이 모두 나서서 마네를 가리켰다.


“난 아니야! 아니라니까. 아니야. 정말 아냐! 물론 그대들도 아니겠지. 난 방금 그림을 팔아 53,000 프랑을 거머쥐었어! 자 모두를 위해 건배하자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돈 걱정이 사라지자 울적했던 마음도 가시면서 다리 아픈 것마저도 잊어버렸다. 한쪽에 밀쳐두었던 영국 산 날렵하게 생긴 기다란 구두장화를 다시 신게 되었다. 미술품 거상인 뒤랑-휘엘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산다고 작은 집 여러 채를 날려도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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