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7화
12장 10
(1872-1873)
네덜란드로 출발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가족 간의 화목을 그나마 뒤흔들어버릴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이제 레옹은 병역 의무를 준수해야 할 나이가 된 탓으로 벨포흐에 주둔한 부대로 이동하라는 징집영장을 발부받았다. 가족 모두는 충격에 빠졌다. 병무청이 레옹을 소환할 때 영장에다가 레옹 린호프(Léon Leenhoff)라 표기하지 않고 이와는 약간 다른 이름을 기입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레옹을 호명할 때 늘 그렇듯 불렀다. 모친인 수잔도 레옹을 그렇게 호명했다. 자기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슬프고 애처로운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잔은 레옹을 자기 어린 형제들과 대등하게 간주하고자 그렇게 부른 것이다.
하지만 레옹 코엘라(Léon Koëlla)가 문제였다. 대체 이 이름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어떤 이유에서 코엘라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인가? 코엘라는 대체 누굴 가리키고 있는가? 왜 아무도 이야기해주질 않는 것인가? 레옹이 따르는 모친도 ‘대부’도 레옹이 묻는 말에 속 시원히 대답해 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레옹은 급기야 성깔을 부리기 시작했다.
“대체 코엘라가 뭐야? 누구냐고? 내가 코엘라라고? 어떻게? 무슨 까닭에? 성령의 힘으로 그렇게 된 거라고?”
마네와 마찬가지로 수잔 역시 그 이름이 옛날에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 자신을 수치스러움에서 구하고자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지만 레옹과 너무도 친하게 지내고 있던 수잔의 남동생인 페리디낭 린호프까지도 레옹의 이름이 그와 같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페르디낭과 레옹은 열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페르디낭은 레옹의 이름이 그와 같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페르디낭은 레옹을 그냥 가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레옹의 이름에 어떤 비밀이 담겨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이름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했다. 레옹이 태어났을 때 페르디낭이 너무 어려서였을까? 으젠과 마찬가지로 페르디낭 역시 조카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어르고 달래고 장난쳤을 뿐이다.
“코엘라를 뭐라 설명한다지?”
“누가 그걸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준다지?”
누구보다도 고집 센 레옹은 자신의 모친에게까지 성깔을 부리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레옹이 물으면 물을수록 난처할 뿐이었다. 갈수록 모두가 거북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레옹은 점점 얼빠진 표정을 지어갔다. 모두가 더도 덜도 아닌 거짓말이나 둘러대는 상황에서 이름에 대한 의혹의 실타래는 점차 얽혀가기만 하고 레옹은 결국 어느 누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걸 안 순간 코엘라란 이름은 그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충분히 어떤 변화를 줄 수도 있었다. 왜냐면 모두가 여전히 그를 아끼고 이름에 대한 의혹으로부터 그가 순순히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면 애당초 이런 일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부모인 그들이 자식이 꿈꾸고 있는 모든 것과 함께 자식의 존재까지도 매장한 꼴이 된 셈이었다.
레옹은 네덜란드로 가는 내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모를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했다. 아이가 린호프란 성 때문에 간신히 할아버지 할머니라 인정한 조부모 집에서는 가짜일 뿐인 부모 행세를 하는 두 사람과 함께 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그를 따뜻한 사랑으로 반기는 사람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결국 레옹이란 존재는 부모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제단에 바친 희생물에 불과했다. 레옹은 그 같은 사실에 늘 그렇지 뭐 하는 식으로 어깨를 한 번 들썩였을 뿐이다. 만사 끝장이란 걸 레옹은 마음속 깊이 새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미래 역시 자신의 태생과도 같이 험난하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망가지고 뒤틀어지고 파괴될 것이 분명했다.
레옹은 모든 걸 잊기 위해 혼자 스스로 군대에 갈 작정이었다. 만일 그곳에서 자신이 죽는다 해도 어느 누구 한 사람 서러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